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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n 21. 2024

Nate Ruess|낭만에 대하여

뜨겁고도 로맨틱한 여름밤의 취기가 채 깨지 않은 그와 마주 앉았다.


2년 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무대에서 한국 관객의 ‘떼창’에 울먹이던 밴드 펀(Fun.)의 프런트맨 네이트 루스(Nate Ruess)가 “새 앨범이 나오면 반드시 한국을 다시 찾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Jdz Chung



Fun. 'We Are Young' (ft. Janelle Monáe)




밴드 펀이 누구인진 몰라도, ‘투나아아~잇, 위이~ 아아~ 여엉’ 한 소절만 흥얼거리면 ‘아! 그 노래!’ 하고 무릎을 치는 이들이 여럿이다. 그야말로 ‘노래 한 곡으로 세상을 뒤엎어버린’ 펀은 ‘We Are Young’으로 2013년 그래미 어워즈 ‘최고의 신인’과 ‘올해의 노래’ 2관왕을 석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펀은 공식 데뷔 4년 만에 두 번째 앨범에서야 빛을 본 ‘신인 아닌 신인’이었고, 네이트 루스는 펀 이전에도 포맷(The Forman)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밴드 음악을 해왔다. 


오아시스(Oasis)와 블러(Blur),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노래들에 붙여졌던 ‘청춘에 바치는 송가’ 타이틀을 이어받은 펀은 곧장 월드투어에 나섰다. 같은 해 여름, 아시아의 가장 큰 음악 시장 일본을 목표로 하는 대부분의 해외 뮤지션들처럼 펀에게도 한국은 그저 ‘온 김에 들르는’ 나라였을 것이다. 하지만 늘 현장에서 상황은 역전된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펀의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는 관객들을 보고 누구보다 놀란 건 펀의 프런트맨 네이트 루스였다. 펀의 셋 리스트 대부분의 곡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부르며 열광하는 이들을 보고 결국 눈물까지 글썽이던 그였으니까. 



[2013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Fun. 'We are young'


두 해가 지나 또다시 여름, 네이트 루스가 한국에 돌아왔다. 거대한 성공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스튜디오로 돌아간 그가 펀의 세 번째 앨범을 기대하는 세상에 아랑곳 않고, 작정하고 사랑의 위대함을 담은 솔로 앨범으로 컴백한 것이다. 지난 7월 28일 서울에서 열린 그의 단독 공연은 두 해 전 여름의 열기보다 더 뜨거웠다. 관객들은 더 큰 목소리로 그의 새 노래를 따라 불렀고, 그의 이름을 외치며 발을 굴렀다. 유독 그의 노래만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있다. 가사를 들여다보고 곡을 쓴 의도를 뜯어보면 시니컬하기 그지없는데도 노래로 연주되고 불리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고 에너제틱해진다. 이런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서울에서의 뜨겁고도 로맨틱한 여름밤의 취기가 채 깨지 않은 그와 마주 앉아 물었다.







어제 내한 공연에서 왼쪽 가슴에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달고 나왔더라.

어제 한국 팬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중 노란 리본이 든 상자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와 더불어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는 편지와 함께.


2015 네이트 루스 Live in Seoul 'We are young'



어제 공연을 본 팬들이 그에 대해 고맙단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했다.

예의를 표하는 건 당연한 거라 생각한다. 미국에 있을 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소식을 많이 들었고,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캠페인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한다. 한국이라는 멋진 나라에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감사 표시였다. 


(그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2년 전 한국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서서 관객들의 호응에 감동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 영상이 한국 팬들 사이에서 바이럴 된 걸 알고 있나?

오, 그런가? 전혀 몰랐다. (영상을 보며) 이거 오늘 아침 운동할 때 입었던 옷과 똑같네.(웃음) 이 영상이 퍼졌다니 기분 좋다. 수많은 나라에서 공연해 봤지만 한국은 ‘베스트’로 꼽히는 나라다. 이번 공연 티켓이 오픈한 지 5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들었다. 이번 공연은 2년 전 첫 내한 공연을 훨씬 뛰어넘은, 상상 그 이상의 공연이었다. 


펀 활동 전에도 포맷이라는 밴드로 활동했다.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왜 한 번도 솔로로 활동할 생각은 하지 않았나?

사실 솔로 활동에 자신이 없었다. 밴드로 시작해 활동해 왔고 밴드만의 매력에 매료되어 있었지. 펀의 두 번째 앨범을 통해 큰 성공을 이룰 때까지만 해도 솔로 활동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 의식이 생기더라.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방향이 아닌, 음악이 나를 이끄는 방향을 따라가려 했고, 결국 솔로 활동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어렸을 땐 ‘세계 정복’ 같은 꿈을 꿨다던데?(웃음)

어렸을 때 사람들이 내 꿈에 대해 물으면 그렇게 대답했지.(웃음) 포맷으로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을 맺었을 당시 내 나이는 19살이었다. 그때는 뮤직 비즈니스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잘 몰랐다. 우리 동네 애리조나 차트에서 1위를 하면 미국 전역에서 1위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현실은 전혀 그런 시스템이 아니란 걸 깨달아가며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포맷을 하며 절대 자만해선 안 된다는 걸, 최대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밴드의 공연을 보여주려 노력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지금도 무대 위에서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그럼 관객들도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되지. 밴드를 처음 시작할 때의 내 꿈은 그저 많은 관객들의 우리 공연에 와서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것뿐이었으니까. 


펀의 두 번째 앨범이 크게 성공했을 때 미국 매체들 대부분이 ‘오랜 시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해 온 밴드’라고 소개하더라.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나?

사실 펀으로 성공하는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메이저 음반사와 다시 계약하게 된 건 그저 최대한 안정적으로 음악을 하기 위해서였고, 그것 말고는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펀이 떠버린 거다. 그전까지 펀은 분명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인디 밴드였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없겠지만.) 하지만 그 시기가 절대 나쁜 건 아니었다. 압박감도 지금보다 덜 했고,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으니까. 


한국에서는 인디 씬 활동이 녹록지 않은 편인데, 미국 인디 씬에서의 활동은 어땠나?

인디 씬에서 활동할 때도 여러 도시에서 지속적으로 공연을 해왔다. 심지어 포맷이 해체된 뒤에도 2천여 명의 관객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정도였지. 펀이 결성되었을 땐 한 발짝 물러서서 재정비를 하긴 했지만 ‘We Are Young’과 <Some Nights>의 성공 전에도 우린 1천~2천 명의 관객들 앞에서 꾸준히 공연해 왔다. 미국에서는 미디어에서 노래가 홍보되지 않아도, 공연만으로도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다. 성공하기 전에도 지금 나이가 될 때까지 계속 공연할 생각이기도 했고.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 보려고 했다.


2년 전 한국 록 페스티벌에 오기 전에 진행한 한 매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10년 동안 계속 투어를 해서 괜찮은데, 올해 유난히 힘들다”라고 답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웃음) 아마 그랬을 것이다. 투어를 하다 보면 금방 지치게 된다. 하루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고. 하지만 집에 오면 바로 다시 투어를 가고 싶어 진다. 내가 성인이 된 뒤 매일 해왔던 게 투어다. 아마 5개월 이상 집에 있었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 어딘가에 소속감을 느끼기엔 굉장히 부족한 시간이지. 그래서 난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 속해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펀의 2집 수록곡이 한국 CF에 쓰였고, 미국에서는 인기 드라마 <글리>나 ‘슈퍼볼’ 행사를 통해 부각되었는데, 이런 음악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좋은 홍보 포맷이라고 생각한다. 다방면에서 음악 홍보를 해야 하는 시대니까. 특히 광고라는 플랫폼이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미국 자동차 광고에 ‘We Are Young’이 쓰였는데, 광고가 나가자마자 다음날 차트 1위에 올랐으니까. 이번 솔로 앨범 트랙 ‘Nothing Without Love’도 미국에서 3개의 광고에 쓰인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글리>나 ‘슈퍼볼’이 아니었다면 ‘We Are Young’이 그만큼 히트할 수 있었을까?

이 정도로 히트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본다. TV에 음악이 나오기 전까지 펀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밴드였다. 라디오에서 조금 나오기는 했지만, TV에서 방송된 뒤로 하룻밤 사이에 차트 1위를 기록했고 앨범 <Some Nights>도 몇 주 동안 차트에서 2위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외부 요소들이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큰 성공을 겪은 후 이어서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는 시기가 가장 부담일 것 같다.

곡을 쓸 땐 음악 외적인 부분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으려고 한다. ‘음악’ 그 자체에만 신경 쓰지. 보통 앨범을 만들 때 머릿속에 있는 생각에만 집중하게 되고 그것들을 정리하느라 심각한 고민에 빠지곤 한다. 그런 면에서 ‘We Are Young’이라는 노래가 굉장히 신기한 곡이다. 이 곡을 만들었을 때 이 정도로 세상에 알려지게 될지 상상도 못 했다. 그런 마인드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밴드 앨범이나 솔로 앨범을 위해 곡을 쓸 때나 혹은 다른 아티스트들과 곡 작업을 할 때 “자, 우리 지금 히트곡을 만들자!”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저 좋은 곡을 만들려고 했을 뿐이다. 


“밴드 멤버들이 더 이상 ‘Young’ 하지 않은데 ‘We Are Young’이라는 노래로 상을 받았다”는 ‘그래미 어워즈’ 수상 소감이 재밌었다.

‘We Are Young’이라는 문장이 어쩌다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어느 날 운전하다 무심코 흘러나왔거든. 정확히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솔직히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평소엔 오히려 내가 ‘Young’ 하기보단 ‘Old’ 하고 ‘Tired’ 하다고 느낄 때가 더 많다.


나이가 들어가는 가운데 여전히 젊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편인가, 반대로 체념하는 편인가?

나는 억지로 젊어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Old’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드는 데에 거부감 같은 건 없다. 20대엔 성공을 얻기 전이었고, 하루하루 보장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느라 조금 불안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30대가 된 뒤로는 앞으로 다가올 매 해가 기대된다. 나이가 드는 걸 즐기고 있다고 해야 할까. 


‘We Are Young’이 21세기 젊은이들의 새로운 송가가 될 것 같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처음 이 곡을 썼을 때는 꽤 슬픈 노래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세상에 들려지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담은 긍정적인 곡으로 재해석되어버렸다. 그게 바로 음악의 묘미인 것 같다. 곡을 쓴 사람들은 물론, 그 곡을 듣는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는 것. 그래서 곡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잘 안 하는 편이다. 듣는 이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슬픈 노래가 누군가에게 행복하게 들린다면, 그걸로 된 거다. ‘We Are Young’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전 세계 사람들과 이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이다.


큰 성공이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본인에게 영향을 미쳤을 텐데.

‘We Are Young’, <Some Nights>, 그리고 핑크(P!NK)와 함께 작업한 ‘Just Give Me a Reason’이 성공할 때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서 내가 쓴 노래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다. 그리고 공연장에서 내가 10년 전에 했던 공연에서는 볼 수도 없었던 나이대의 관객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내 음악을 듣는지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오히려 나 자신의 모습에 더 편해질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혹은 다른 누군가가 되어 곡을 쓸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 자신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한다. 내가 그렇게 매력적이거나 멋진 사람도 아닌데 사람들이 나만의 표현법을 받아들였고, 그걸 새롭게 해석해 자신에 삶에 반영하는 걸 봤다. 그런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또 감사했다. 결국 성공이 나에게 끼친 가장 큰 변화는, 나 자신의 모습에 더 당당해져도 괜찮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다.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밴드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뮤지션들이 “성공을 거둔 직후 밴드 외부의 세계가 미쳐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 “밴드 멤버들만이 현실처럼 느껴지고 이외의 것은 모두 비현실처럼 느껴진다”라고. 성공했을 때가 어쩌면 가장 힘든 시기라는 말도 많이 한다.

우리 역시 성공 직후에는 그랬던 것 같다. 멤버들과 가까웠고, 오직 서로만을 믿으려고 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들이 사라졌다. 나는 성공을 쫓는 사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이고, 많은 사람들이 펀의 음악을 듣고 보러 와주길 바랐을 뿐이다. 등산에 비유하자면, 높이 올라갈수록 산소가 적어지고 숨을 쉬기 힘들어지는 것과도 같다. 어떤 사람들은 정상에서 더 높은 곳을 찾아 오르려 하겠지만, 분명 숨쉬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나는 조금 내려오더라도 편하게 숨을 쉬고 싶다. 만약 내 앨범이 덜 팔리고 미디어 노출이 적어지더라도 나 자신의 모습이 편해질 수 있다면, 그걸 택하고 싶다. 


오랜 시간 언더그라운드에서 보낸 시간 동안의 경험과 지혜가 도움이 되는 건가?

그렇다. 처음 19살 때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했을 때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너무 일찍 성공했다면 이런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심지어 ‘We Are Young’이 성공했을 때조차 모든 걸 알게 되었다고 느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물론 성공이란 걸 경험하게 된 것 자체가 매우 중요했다. 그 모든 게 한 순간에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한테 좋은 점을 많이 배웠다. 10대 때는 말을 잘 안 들었지만, 20대 때부터 부모님의 말씀이 와닿기 시작했고, 30대가 되면서 내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느꼈다. 성공이 좀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시간을 돌리더라도 지금처럼 천천히 조금씩 걷는 길을 원했을 것이다. 







이번 투어는 밴드가 아닌 연주자들과 함께 하기에 색다를 것 같은데.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지금 함께 하는 연주자들 대부분이 펀 투어 때부터 함께 했던 멤버들이다. 물론 펀의 나머지 두 멤버의 공백이 있긴 하지만 음악적으로 너무나도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에 투어를 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다. 모두들 정말 순수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서로를 존중하는 투어 멤버들과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2집이 성공한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펀의 다음 앨범은 언제 나오나?’ 하는 질문이었을 텐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솔로 앨범을 냈다.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을 이루고 싶었다고나 할까? 나 자신에게 개인적인 목표를 세울 시기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펀에서 잠시 벗어나 솔로 앨범을 시도하게 된 거다. 더 나이가 들면 솔로 활동이 제한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자신과 완벽하게 일치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던 건가?

솔로 앨범을 만들게 된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거다. 예전부터 가사는 많이 써왔지만, 이번에는 ‘우리’보다 ‘나’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그쪽으로 더 치우치게 된 것도 있다.


‘사랑에 대해 직접적으로 노래하는 건 쿨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시대이다. 개인적으로 <Grand Romantic>이라는 앨범 타이틀을 본 순간, ‘언제부터 우리가 사랑에 대한 찬미를 멈췄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너무 감사하다. 요즘 사랑에 대한 노래가 적은 건 사실이다. 오히려 이별과 상실에 대한 노래가 더 많지. 나도 그런 노래를 즐겨 쓴 적이 있었고. 이번 앨범에서는 의도적으로 직접적인 사랑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보통 앨범을 만들 때 두 가지 단어를 조합해서 제목을 짓고, 그 문장이 뜻하는 콘셉트의 곡을 쓰려고 한다. <Some Nights>도 그렇게 작업했다. 이번 앨범 <Grand Romantic> 역시 앨범 제목이 먼저 나왔는데, 당시에는 이 문구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그 이후 진정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러브송을 많이 듣게 되더라. 평소에도 사랑 노래를 즐겨 들었고 그 음악이 주는 가슴 뭉클해지는 감정을 좋아했는데, 지금까지 내가 직접 써본 적은 없었다. 원래 나는 우울한 남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행복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어서, 이런 부분을 세상과 공유하고 싶었다. 다른 주제로 곡을 써보려고도 했지만, 사랑이란 감정을 속일 수는 없겠더라. 분명 나도 사랑 노래가 쿨하지 않다고 느꼈던 시기가 있었다. 확실한 건 지금은 아니라는 거다. 사랑 노래가 쿨해 보이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



Nate Ruess 'Nothing Without Love'



자신이 사랑에 빠진 감정들로 앨범을 만들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정도에 대한 고민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지만 너무 깊이 표현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끔은 포괄적이고 애매한 표현법이 더 좋을 때가 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감정들을 최대한 공통적인 느낌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잘 이해가 안 가다가도 단 한 소절에 공감이 갈 때가 있지 않나. 그런 곡을 쓰려고 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만든 음악이 세상과의 적정한 공유 지점을 찾기 위해 필요한 건 바로 ‘사운드’였을 거다.

제대로 잘 짚어줬다. 물론 억지로 그런 사운드를 구현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예전부터 나는 행복한 느낌의 사운드는 잘 만들어 왔던 것 같다. 이번 앨범에서는 가사까지 밝아져 더 행복하게 들리는 것 같다. 지금까지 해온 ‘Happy’한 사운드에 ‘Happy’한 가사를 더한 거지.


사운드 적으로도 밝고 예쁜 이미지를 표현하는 소리들이 많이 쓰인 것 같다.

그렇다. 이번 앨범은 작업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Some Nights> 앨범, 에미넴(Eminem)과 함께 한 ‘Headlights’, 핑크와 함께 한 ‘Just Give Me a Reason’을 만든 프로듀서들과 작업했다. 워낙 엄청난 프로듀서들이고, 또 나를 성공하게 만든 음악을 같이 해 온 사람들이어서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사랑에 대한 음악을 만든다고 했을 때, ‘예쁜 소리’를 강조하려고 했던 것 같다.







많은 뮤지션들과 작업하면서 장르의 영역이나 음악적인 세계관이 넓어졌을 것 같다.

어렸을 때 나는 펑크 록(Punk Rock)을 듣는 아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음악적인 가치관은 계속해서 변화했다. 마치 아이팟(iPod)처럼. CD로는 한정된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는 반면 아이팟에서는 여러 가지의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처럼 언젠가부터 곡을 쓸 때 장르에 상관없이 ‘음악’ 자체만을 보기 시작한 것 같다. 가끔은 많은 현악기 사운드를 넣을 때도 있고, 헤비한 일렉트로닉 기타를 쓸 때도 있다. 음악에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에미넴, 핑크와 작업할 때도 나는 그들을 송라이터로 생각했다. 그저 우리는 가장 멋진 곡을 만들려고만 했다.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쏟아부어 만든 앨범이기에 애착도 클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할 텐데, 그럴 때 상처받진 않나?

그런 부분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게 편하다. 그래서 SNS도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나만의 벽을 만들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의견과 취향이 있다. 그래서 별로 상처받지 않는다. 내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괜찮다. 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보다 훨씬 많을 거라 믿는다. 


본인이 직접 써서 앨범에 담은 노래를 투어를 통해 계속 부르다 보면 노래에 대한 감정이 달라지기도 하나?

그렇다. 음악은 ‘고요 속에 외침’ 게임 같은 거다. ‘컵’이라는 단어로 시작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녹음테이프’로 변경될 수 있는 것처럼, 음악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특히 공연을 할 때마다 부르는 곡들은 매일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그날의 공연 당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대변할 수도 있고, 다른 공연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똑같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공연을 시작했을 때와 끝났을 때 완전히 다른 의미가 부여될 수도 있다. 정말 멋진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정신과 상담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음악을 통해 자연스럽게 심리 상담을 해온 거나 다름없으니까. 


어떤 뮤지션들은 개인적인 부분을 공개하는 걸 극히 꺼리는 경우가 있는데, 네이트는 이번 앨범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공개적으로 노래했다. 이 앨범이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인지도 밝혀졌는데 이에 대해 부담을 느끼진 않나?

사실 내가 직접적으로 미디어에 이야기한 적은 없다. 친구 중에 기자가 있는데, 나와 샬롯 론슨(Charlotte Ronson)의 열애설에 대해 써도 되는지 물어봐서 괜찮다고 말한 적은 있었지. 내가 먼저 우리 둘의 사이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이런 부분에 대해선 우리 둘 다 조심스러워하는 편이다. 하지만 앨범이 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의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 말해야 될 때가 있다. 나는 SNS 대신에 노래를 한다. 평상시 나는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고, 사진 찍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 집엔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 심지어 ‘그래미 어워즈’에서 받은 트로피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른다.(웃음) 나는 최대한 음악으로만 나 자신을 표현하려고 한다.


사랑에 가장 깊게 빠졌을 때가 황홀하기도 하겠지만 혹시라도 이어질 상처에 두려워지고 불안해지는 시기이기도 한 것 같다.

맞다. 지난 10년간을 돌이켜보면 나는 감정 표현을 자제하려고만 했다. 밴드로 크게 성공했을 때도 최대한 침착하고 담담하려고 했다. 전혀 감정기복이 없었지. 이번 <Grand Romantic> 앨범을 통해 나의 그런 부분을 바꿔보려고 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삶을 만나면서 지붕 위로 올라가 내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소리 내어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붕 위에 올라가면 이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해야 한다. 앨범 후반부에 그런 불안함과 두려움, 슬픔에 대한 감정이 담겨 있다. 인생에서의 지난 슬픈 경험을 통해 배운 점도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굉장히 행복하지만 그만큼 앞으로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겠지. 그리고 그런 순간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음악 할 때 말고는 항상 골프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던데.(웃음)

요즘 거의 매일 골프를 친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한 뒤 바로 골프장으로 향한다. 한국 호텔에 다행히 스크린 골프장이 있어서, 하루 종일 거기에만 있었다. 집에 있을 땐 필드에 나가기도 한다. 보통 투어를 다니다 보면 낮에 시간이 빌 때가 있는데, 그 시간에 주로 골프를 친다. 나는 경쟁심이 강한 편인데, 요즘 들어서는 남들과 경쟁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더 자극시키려 한다. 자신과 경쟁하는 골프처럼 이번 솔로 앨범도 그렇게 만든 것 같다.


한국 팬들이 앞으로도 자주 내한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라.

이런 황홀한 공연을 마치고 어떻게 다시 안 올 수 있겠나? 정말 멋진 공연이었다! 어제 공연을 마치고 오늘 아침 일어나서 든 생각이 ‘다시 한국 관객들 앞에서 공연하고 싶다’였으니까. 매년, 아니 1년에 두 번씩은 와야겠다. 장시간 비행이긴 하지만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ARENA HOMME+, September 2015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아레나 옴므 플러스와 조하나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Behind Story

네이트 루스의 울먹이는 영상은 여전히 유튜브에서 한국의 떼창을 소개하는 컨텐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10년 전의 청춘은 지금의 청춘과 다르지 않았다. 앞은 캄캄하고 현실은 녹록지 않았던 방황하는 젊음들이 모여 역시 갈 곳 없는 뜨거운 열정을 분출하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시간. 그 시간을 가득 담은 88만 원 세대의 앤썸, ‘We are young’. 나는 뜨거운 여름밤의 열기가 찾아올 때면 목 놓아 소리치며 뜨겁게 마음을 나눴던 그때 우리를 떠올린다. 




2015 네이트 루스 Live in Seoul ⓒ 조하나
2015 네이트 루스 Live in Seoul ⓒ 조하나
2015 네이트 루스 Live in Seoul ⓒ 조하나
2015 네이트 루스 Live in Seoul ⓒ 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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