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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l 12. 2024

당신은 ‘좌파’입니까?

우리는 왜 절망을 반복하는가.

 

대한민국이 어질어질했던 2012년,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 방영된 TV시리즈 <뉴스룸>이 화제였다. 미국 현실 정치 드라마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아론 소킨이 제작하고 각본을 쓴 <뉴스룸>의 첫 시즌, 첫 에피소드 오프닝(미국의 대표적인 채널 뉴스룸 앵커인 윌 맥어보이(제프 다니엘스)가 대학생들과 함께 하는 포럼에서 ‘미국은 더 이상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한 독설)은 당시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으로 초토화된 대한민국 언론계엔 그저 부럽기만 한 사치였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 '미국은 더 이상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가 아니다'






‘좌’와 ‘우’로 나누어 서로 물어뜯고 싸우라는 정치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꽤 괜찮은 정부와 지도자, 언론 지형을 가져본 적이 없는 건 당연한 결과다. 대한민국 정치와 언론은 여전히 ‘좌파’와 ‘우파’를 근본적인 개념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편을 가르기 위한 도구로만 쓴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AI가 등장하고 민간인이 우주로 관광을 떠나는 세상에도 여전히 낡은 이념으로 대중을 편 가르는 건 바로, 그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바쁘단 이유로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라는 명목 아래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너무 함부로 준다. 또 같은 이유로 그들에 대한 감시에도 소홀하다. 어리석고 무능한 정부일수록 ‘좌파’ ‘우파’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데, 결국 그 실정은 경제 위기로 이어지고, 또 그 실정을 가리고 속이기 위해 언론을 길들인다. 그리고 가려도 가릴 수 없는 실정이 차고도 넘치면 마침내 서민과 거리가 가까운 문화계를 오염시킨다.      


이명박에서 박근혜 정부로 권력이 이어지는 동안 “모든 것은 ‘이명박의 형’으로 통한다”는 만사‘형’통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경험했고, 각종 부정부패한 사업으로 정부와 기업, 경찰, 검찰, 군, 사법부가 유착되는 것을 목격했다. 국정원과 군을 동원한 대대적인 댓글 공작과 여론 조작이 이뤄졌고, 눈치조차 보지 않는 언론 탄압이 이뤄졌다. 그때 지금의 TV조선, 채널A, MBN, JTBC 등 종편 채널이 탄생했고, 정권의 언론장악에 맞서는 MBC의 장기파업으로 <무한도전>까지 결방됐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그린 영화 <변호인>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배우 송강호가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사회 고발 소재를 다룬 영화 <도가니>를 감독했다는 이유로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수많은 코미디언, 배우, MC, 그리고 프로그램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것도 청와대, 문체부, 국정원의 공조로 이뤄진 작전이었다. (그에 일조한 박형준은 현재 부산시장이다.) 파업에 실패한 수많은 MBC 기자들이 화장실 옆 벽 앞에 덩그러니 놓인 책상으로 대기발령을 받거나 해고되었고, 결국 MBC는 이명박과 박근혜를 추앙하는 스피커로 변신했다.                






‘우파’의 자격이 없는 자가 ‘좌파’를 규정짓는 희대의 코미디

    

지금, 10년 전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일이 대한민국 언론계의 가장 어두운 역사가 아닐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얼마 전 MBC가 보도한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 이진숙이 2022년 12월에 했던 강연 내용이다.      



ⓒ MBC



그는 <베테랑> <택시운전사> <암살> <변호인> <설국열차> <기생충> <JSA> <웰컴투동막골> <괴물>이 좌파 영화이고, <국제시장> <태극기 휘날리며> <인천상륙작전> <연평해전>이 우파 영화라고 했다. 또한 김제동, 김미화, 강성범, 노정렬, 정우성, 권해효, 안치환, 김규리, 문소리는 좌파 연예인이고 나훈아, 김흥국, 강원래, 소유진, 설운도는 우파 연예인이란다.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연예인이 좌파’ 목록에 있으니 나는 그럼, ‘좌파인 건가? 갑자기 사상검증을 당한 기분이다. 나의 정치적 성향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데(대한민국엔 진정한 보수와 진보는 없다. 국민의힘은 그저 수구 세력일 뿐이고 민주당이 잘해봐야 중도 보수 정도 되겠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정권의 부정에 비판적이면 저절로 ‘좌파’가 되는 건가? 이렇게 ‘좌파’ ‘우파’라는 말을 개념도 제대로 모르면서 정치와 언론이 제 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 하니 요즘 초등학생들이 서로 “넌 좌파니, 우파니?” 하고 묻는다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진정한 ‘우파’는 멋있는 거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가치와 국가 안보, 경제적 자유를 중시한다. 이들은 변화를 천천히 수용하고 기존의 질서와 전통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지금의 국민의힘이 과연 ‘우파’의 타이틀을 내세울 수 있을까? 그들은 변화나 개혁 자체를 거부하고, 과거의 방식과 질서를 철저히 고수하려는 ‘수구(守舊)’ 세력일 뿐 전통을 중시하지만 변화의 필요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신중하고 점진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우파’가 절대 아니다.      


10년 전 MBC 민영화와 박근혜 당선을 위해 정수장학회(박정희의 ‘정’, 육영수의 ‘수’를 딴 이름)와 긴밀히 소통했던, ‘부끄러운 기자’라며 기자회에서까지 제명당한 수구 세력(자신을 ‘애국 보수’라 착각하고 있지만 이들에겐 ‘보수’라는 단어조차 아깝다) 이진숙. 


그는 MBC 홍보국장으로 재직하며 ‘세월호 탑승객 전원 구조’라는 MBC 희대의 오보 책임자이기도 하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의 이 장면은 언제나 MBC가 ‘바닥’이었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 '언론인의 책임감'




그리고 그는 2024년에 다시 나타나 자신이 방송통신위원장이 되면 곧바로 MBC 사장을 수구 세력으로 교체할 거라 호언장담하고 있다. 그렇게 바뀐 MBC 사장은 최근 YTN과 KBS가 그랬듯 “지금까지 공정하지 못한 편향적 보도에 사죄한다”라며 대국민 사과를 할 것이다.       


              




손석희가 돌아온다

      

손석희가 오는 주말 MBC <질문들앵커로 돌아온다물론 그는 더 이상 MBC 내부 사람도 아니고 <질문들>이 장기 편성된 프로그램도 아니지만, 이진숙의 방통위원장 내정으로 MBC 방문진 이사진과 사장 교체가 예상되는 ‘폭풍전야’의 시점에 MBC에 다시 등장하는 건 분명 유의미하다. 이진숙은 손석희의 11년 만의 컴백에 (자격지심인지 피해의식인지 열등감인지 모를 이유로) 더 자극받아 MBC의 영혼마저 갈아 마시려 할 것이다. 손석희가 이걸 모르고 뛰어들었을 리도 없다.      


손석희 <질문들> ⓒ MBC



MBC가 정권에 장악되고 파업하는 기자와 앵커의 빈자리에 외부 인력을 들여와 이진숙의 지휘 아래 가장 낯 뜨거운 친정부 성향의 뉴스를 내보낼 때 손석희는 종편 JTBC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중엔 아예 대놓고 보도 프로그램 이름을 <뉴스룸>으로 짓고 CNN을 따라 하기에 그 역시 미드 <뉴스룸>을 동경하는 듯 보였다. 그가 MBC에서 JTBC로 자리를 옮긴다고 했을 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론 자유를 외쳐야 하는 공영방송사 언론인으로서의 피곤함과 대한민국에도 꽤 괜찮은 언론을 만들 수 있다는 중견 언론인으로서의 야망이 뒤섞인 결정일 거라 짐작했다.      


결과적으로 손석희는 “광고 수익으로 먹고사는 미디어 조직은 언론의 순기능을 이행할 수 없다”라는 한계를 넘지 못했다. 뉴스와 수익이 항상 경쟁하는 한국의 미디어 지형에서 그가 시도한 다양한 실험은 동력을 잃었다. 메시지를 공격하지 못할 때 ‘수구’ 세력은 메신저를 공격한다. 메시지보다 메신저의 존재가 거대해지면 메신저가 공격을 받는 즉시 메시지마저 소멸한다. 


‘합리적 진보’라는 정론을 바탕으로 진영을 가리지 않고 비판하겠다던 손석희는 스스로 대한민국의 메시지가 되려 했다. 자의식 과잉이었다. 손석희의 이상적인 미디어 실험이 사측의 이익(그러려면 광고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종편 JTBC에서 시도되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지만, 결국 손석희는 ‘오염된 메신저’로 JTBC를 떠났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라는 그럴듯한 타이밍 속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진영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스스로 진영 속에서 서성였다. 




손석희 <뉴스룸> ⓒ JTBC




JTBC는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렸지만, 윤석열 정보를 세우는 데 크게 일조하기도 했다. (대선 전 중앙일보와 JTBC를 가진 홍석현 회장이 관상가를 대동하고 윤석열을 만났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언론 보도로 밝혀진 바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역시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려하고 있다. JTBC는 이념도 신념도 아닌 철저히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언론사이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미국회사라 천만다행

     

미국 드라마 <뉴스룸>이 시작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가 결국 초라하게 마지막 시즌을 끝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언론의 순기능을 정립하기 위한 대안은 없다. 여전히 대한민국 언론사는 대기업 광고주에 의지하는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시청률을 위해 사건을 고의적으로 과대해석하거나 광고주를 위해 사건을 축소하거나 ‘아젠다키핑’을 마치 게임처럼 한다.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가 헌법에(만) 보장된 2024년의 대한민국 권력은 여전히 정부의 이익에 반하는 보도를 하는 기자들을 강압적으로 압수수색하고 가족을 괴롭히며 “밥줄을 끊어버리겠다”라고 협박한다. 우리는 그걸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다가 “기레기” 한마디 하고는 나 듣고 싶은 소리만 하는 유튜브로 달려간다.      


언론정보학을 전공한 내 주변엔 방송사 기자, 아나운서들이 많았는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보도 윤리와 직업적 사명감을 가진 언론인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쓰는 기사마다 ‘명예 훼손’에 ‘허위 정보 유포’라는 명목으로 경·검찰에 시달리면 자연스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말 안 듣는 언론인 몇 명만 본보기로 삼으면 나머지는 알아서 몸을 사린다. 길고 긴 재판 끝에 무고로 밝혀져도 결국 남는 건 엄청난 소송 비용으로 인한 경제적 파탄과 피폐해진 몸과 마음뿐이다.      


언론인 처우가 열악한 환경에서 오롯이 그들에게 책임과 희생만을 강요할 수도 없다. 내가 투사가 아닌데 정작 다른 이에게 성스러운 싸움을 계속 이어가라고 할 수 없다결국 좋은 기자들은 떠나고 뉴스의 질은 낮아지며 정권의 쉬운 먹잇감이 된다. 악순환이다.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 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들, 특히 노르웨이와 핀란드, 스웨덴의 사례를 보면 헌법으로 언론의 독립성을 철저히 보호하며 독립적인 미디어 감독 기구를 두고 있고, 미디어 소유 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법적 규제가 강력하다. 대한민국처럼 대통령 바뀌었다고 공영방송사 프로그램과 MC를 하루아침에 없애고 사장을 바꾸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를 위해 현재 국회에서 ‘언론 정상화 4법’이 상정되었지만 윤 정부는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또한, 언론인의 윤리 강령 또한 엄격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엄중한 제재를 받는다. 동시에 언론인들이 정치적, 경제적 압력으로부터 보호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의 합의된 시민 의식과 문화적 기반이 탄탄하다는 것이다.      


10년 전 벌어진 일들이 토씨 하나 안 바뀌고 그대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 앞에서 수구 세력의 후안무치가 개탄스럽지만, 그래도 10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우리에겐 전통적인 미디어 권력인 TV와 신문이 아닌 ‘뉴 미디어’가 있다는 것이다.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플랫폼에 약간의 창의력만 발휘한다면, 여전히 한 나라의 운명을 쥐고 흔들고 있는 전통 미디어에 맞설 수 있다.


이 와중에 유튜브가 미국회사라 천만다행이다. 안 그랬다면 유튜브 사장이 청문회에 끌려 나와 수구 세력 앞에서 ‘좌파’냐 ‘우파’냐 사상검증을 받는 희대의 코미디가 펼쳐졌을 것이다. 


더 이상 아무도 언론인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정치뿐 아니라 언론 스스로 민낯을 가감 없이 들추고,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한다.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도 계속되어야 한다. 좋은 기자는 지키고, 부패하고 무능력한 기자는 내쫓아야 한다. 시민의 의식이 곧 그 나라 언론의 수준을 결정한다. 시민이 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으러 용감하게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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