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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l 17. 2024

The 1975|농담과 무의식 그리고 The 1975

여름 끝 무렵,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Super Sonic'을 통해 처음으로 내한한 영국 밴드 The 1975의 프런트맨 매튜 힐리(Matthew Healy)와 단독으로 인터뷰를 가졌다. 정식 앨범 한 장 없이 영국 라이브 클럽을 중심으로 투어를 시작한 게 불과 2년 전이다. 그 사이 롤링스톤즈와 뮤즈와 한 무대에 섰고 4장의 EP 발매 이후 발표한 첫 번째 정규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UK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이 인터뷰를 통해 세계적인 신드롬에 가까운 이 밴드의 인기가 운 섞인 우연인지, 시대의 필연인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이상엽 공연사진 제공 슈퍼소닉코리아



The 1975 'Chocolate'



영국 밴드 음악 씬에서 The 1975의 등장은 흥미롭고 재미있다. ‘록의 종주국’으로서 내세워 온 영국의 자존심이 자본주의 경제에 최적화된 미국의 팝 시장에 서서히 구겨지고, 영국 출신의 록 스타들 역시 최후의 목표로 미국 시장에 눈길을 돌릴 때 즈음, 여전히 다양한 빛깔의 감성으로 소구하는 젊은 신인 밴드들이 등장은 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한 방’이 없다 싶을 때 즈음, The 1975는 새로운 스타에 목말라하던 영국 밴드음악 신에 오아시스처럼 등장했다. 이들은 밴드 포맷으로 곡을 쓰고 연주하면서도 밴드에서 살짝 어긋나 있다. 다시 말해, The 1975는 밴드이면서 동시에 밴드가 아니다. 


1970년대 복고풍 무드와 펑크 록, 1980년대의 신스 팝, 1990년대의 R&B/소울, 2000년대의 일렉트로닉까지 ‘장르’로 나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체득해 앨범 한 장에 버무려 녹인 밴드 The 1975. 프런트맨 매튜 힐리의 창법이나 제스처는 마이클 잭슨이나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팝에 가까이 닿아 있다. 이들은 ‘밴드라는 포맷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놀랍고도 능수능란하게 이용한다. 공식 데뷔 2년이 채 안된 이 시점에서 The 1975는 세계 곳곳의 대형 페스티벌에서 세계적인 톱 밴드들과 같은 무대에 오른다. ‘팝’과 ‘록’의 단어 사이에서 더 이상 혼란스러워하지 마시길. 이들은 영국의 튼튼한 음악적 뿌리를 바탕으로 미국의 다양한 팝 콘텐츠를 자양분 삼아 21세기 새로운 밴드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니. 


원디렉션에 이은 또 다른 ‘팝 아이돌’이라는 비아냥 섞인 비난은 이들의 라이브 무대를 보는 순간 사라질 것이다. 멤버들의 잘 생긴 외모 덕분에 덤으로 얻은 시선과 거품 섞인 인기가 있다고 해도 밴드 결성 10년이 넘는, 언더그라운드 시절로 다져진 탄탄한 연주력과 송라이팅, 밴드 자체의 아우라로 끝까지 팬들을 그들 곁에 잡아둘 테니. 



The 1975 @ 슈퍼소닉 코리아 2014



밴드 결성(2002) 이후, 공식적으로 데뷔하는 데에 10여 년이 흘렀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음악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나? 아니면 신중한 성격인가?

데뷔 앨범이 오래 걸린 이유? 되레 내가 되묻고 싶다.(웃음) 2002년 밴드를 시작할 때 우린 14살 아이들이었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살았고, 특히 우리 부모님은 정치적으로 누군가에게 잘 보여가면서 우리에게 음악을 시킬 생각은 없는 분들이었다. 19살까진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살았지. 음악을 커리어로 삼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음악하는 걸 즐기기만 했다. 그러다 19살에 처음으로 밴드 매니저가 생긴 거다. 그가 우리 음악을 잘 이해하고, 우리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덕분에 힘을 얻었다. 밴드 활동이 진지해지기 시작한 건 이때쯤부터였는데 이후 3년 간 음악에 집중하고 가능한 한 많은 곡을 썼다. 


곡을 쓰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인가 보다.

맞다. 곡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마 내가 그동안 단 한 번도 시간에 쫓겨 곡 작업을 한 적이 없어서일 거다. 어떤 뮤지션들은 레이블과 계약을 하고 나면 언제까지 몇 곡을 완성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고 쫓기듯 음악을 만드니까. 사실 지금 우리도 상황은 좀 비슷하다. 이제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한다. 하지만 전처럼 3~4년에 걸쳐 앨범을 만들 순 없고, 다행히 이번엔 그렇게 오래 걸리게 하고 싶지도 않다. 사실 음악을 만들 때 어디서 영감이 오는 진 모르겠다. 아니, 사실 영감은 음악, 그 자체에서 받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나 누가 한 말에서 영감을 받은 적은 없다.   


언더그라운드 활동 시절부터 각종 매체들이 The 1975를 ‘인디계의 원디렉션’이라 소개했다. 외모가 밴드의 음악 활동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나?

내가 잘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냐고? 당연하지.(웃음) 사실 밴드 결성 전까지 우린 그런 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특히 여자들이 우릴 좋아하리라곤 조금도 예상 못했지. The 1975 이전에 이 밴드, 저 밴드로 활동할 땐 얼굴을 가리기도 했다. The 1975 활동을 하면서 가죽 재킷을 입었더니 갑자기 여자들이 ‘오 마이 갓’ 하면서 좋아하기 시작했다. 다른 밴드들도 외모로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단 소리다. 우린 음악적으로 차별화되는 것 같다. 뻔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여자들은 록 밴드를 좋아하고 밴드맨을 좋아하잖나. 우리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 인기와 무관하다고 하면 또 거짓말이겠지.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매력을 가졌다는 건 좋은 거 아닌가.  


The 1975가 생각하는 ‘록 스타의 조건’이 있다면?

멋진 헤어스타일?(웃음) 결국 사고방식에 달려있다. 록 스타가 되고 싶어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환경이 안 되는 사람은 아마 힘들 수도 있다. 나는 맨체스터 중산층 동네에서 자유로운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두 분 모두 배우여서 그런지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창의적인 일을 지지하셨다. 금전적으로, 감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를 인정하고 지지해 줬다. 아버지는 내가 12살 때부터 “넌 록 스타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아버지 친구들 중엔 실제로 록 스타들도 많았고. 이미 어려서부터 ‘나도 뮤지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뉴 캐슬 북부나 글라스고 같은 지방에서, 경제적으로 풍부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는 록 스타가 될 수 있을 거란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갖기는 힘들 거다. 물론 가끔 그런 환경에서도 모리세이(Morrissey) 같은 진정한 록 스타가 나오기도 하지만. 본인의 환경에 반작용하는 록 스타 말이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이 음악적으로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에겐 뮤지션이 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일한 기회가 오디션 프로그램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성공하기도 하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절대 비난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좋은 환경과 기회가 그들에겐 없었던 것뿐이잖나. 



The 1975 @ 슈퍼소닉 코리아 2014




밴드 사진이나 영상 등이 대부분 흑백이나 모노톤으로 유지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리 첫 번째 앨범 콘셉트는 ‘1980년대 영화’였다.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콘셉트였다. 당시 만들었던 곡들이 결과적으로 모두 1980년대 영화 같은 분위기였던 거다. 음악이 우선이다. 음악으로 나온 결과물들이 자연스럽게 콘셉트를 정하게 해야 한다. 반대로 콘셉트에 의해 음악을 만들면 안 되지. 음악을 만들 때 꼭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아마 좋은 결과가 안 나올 거다.  


‘영국 출신 밴드’라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스타일이 있다. ‘브리티시 록’ ‘브릿 팝’이라고 불리는. The 1975는 이에 얽매이는 것 자체를 경계하려는 것 같아 보인다. 맞나? 

우리는 정해진 길을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러 그걸 피하려는 의도도 없다. 그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뿐이다. 우리는 런던 출신도 아니고, 사실 맨체스터 출신이라고도 할 수 없다. 런던이나 맨체스터, 리버풀 출신이라고 하면 그 지역의 음악적 취향을 따르게 되는 것 같은데 우리는 그런 걸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팝 음악을 좋아해서 팝 음악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 앨범 안에 수록된 곡들이 각각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고 하는데, 그것 자체가 결국 우리만의 스타일이 된 거다. 앨범의 모든 곡들이 다른 스타일이라 전체적인 일관성이 없다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의 일관성이지.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장르나 스타일의 음악도 피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팝 음악을 만드는 거지. 사람들은 우리의 이런 솔직한 모습에 끌리는 것 같고. 


데뷔 정규 앨범 <The 1975>의 사운드 질감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스타일리시하게 빠졌다. 악틱 몽키스와 폴스, 킨의 앨범을 작업했던 프로듀서 마이크 크로시의 영향이 있었을까?

그럼. 정규 앨범 발매 전의 EP들은 모두 우리가 직접 작업한 거라 정규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앨범 프로듀서를 구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마이크가 우릴 보고 한 첫마디는 “당신들과 함께 하고 싶다”였다. 다른 이들은 자신이 이것도 할 줄 알고 저것도 할 줄 안다고 우쭐대기 바빴거든. 마이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잘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유능하고 유명한 프로듀서가 그렇게 말하는데 거절한다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었겠지. 마이크와 함께 한 작업은 최적의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관계에서 진행됐다.  





매튜가 그동안 인터뷰에서 밝힌 ‘영향받은 아티스트’를 보면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 보이즈 투 맨 등이 있다. 팝 뮤지션을 동경했다면 싱어송라이터나 싱어로서 솔로 활동으로 음악을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굳이 밴드 포맷으로 음악을 하는 걸 고집한 이유가 궁금하다. 

…… (매튜는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입을 떼지 못했다.) 아… 그거 정말 좋은 질문이다. 이제껏 이런 질문은 한 번도 받아본 적도 없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사실 “The 1975라는 밴드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라는 질문이나 할 줄 알았는데.(웃음) 좋은 질문이다. 정말 고맙다.  


밴드 이름이 왜 The 1975인지는 전 세계 투어 돌면서 수백 번은 넘게 받았을 질문일 텐데 구글링하면 나오는걸 굳이 왜 묻겠나.(웃음)

고맙다, 정말 고맙다.(웃음) 어렸을 때 작은 동네에 살았는데 그때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모두 담당하고 있는 제임스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을 다 거기에서 만났다. 그때 음악에 빠지게 된 건 그게 멋져 보이거나 섹시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게 즐거워서였다. 내가 7살 때 기타를 치면 내 친구는 옆에서 드럼을 쳤지. 어려서부터 늘 친구와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 그리고 16살 때까지 나는 드럼을 연주했다. (매튜는 The 1975에서 드럼을 맡았다가 보컬이 그만두는 바람에 포지션을 옮겼다.) 그때도 마이클 잭슨을 좋아하긴 했는데 당시엔 내가 노래를 하거나 내 위주의 음악을 만드는 건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밴드와 동떨어진 존재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거다. 친구들과 함께 할 때 나는 안정감을 느낀다. 또 그들을 믿고. 솔로로서의 커리어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음악적인 재능이 충분하지 않다. 나에겐 조지(The 1975 드러머)가 필요하다. 혼자선 절대로 못한다. 


청량감과 공간감 넘치는 비트에 멜로딕한 기타 리프 등 귀에 감기는 사운드 느낌은 밝다. 그런데 밴드 자체가 풍기는 분위기는 일관된 흑백 톤에 퇴폐적 낭만이 넘친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활기 없는 도시, 생기 없이 연약하고 외로워 보이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이 매튜가 바라보는 세상인가?

아…… 글쎄… 이것도 참 좋은 질문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기도 하고. 우리가 세상이나 인류에 어떤 철학적인 견해가 있는 건 아니다. 사실 뮤직비디오를 흑백으로 만든 것도 좀 더 음악에 집중시키려는 의도였고. 우린 애초부터 음악적인 정체성뿐 아니라 비주얼적인 이미지나 정체성도 매우 중요하단 걸 깨달았다. 밴드 결성 초창기에 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밴드에게는 드물게도 우리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획득된 비주얼적인 요소가 음악적 정체성만큼이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배웠지. 우리의 이미지는 흑백이지만 음악과 사운드는 다채롭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음악과 삶, 관계, 사랑을 다룬다. 우리는 흑백 영상과 사진들을 통해 음악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들을 나열하고 싶은 거다. 이런 비주얼적인 요소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이고 심지어 우울해 보이고 억압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 음악은 그렇지 않잖나. 우리는 음악과 비주얼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고 사람들은 우리의 그런 면에 공감하는 것 같다.   


말한 대로 The 1975의 뮤직비디오 대부분이 흑백 톤인데 유독 ‘Girls’ 뮤직비디오에서만 팝적인 톤과 컬러를 강조했다. 뮤직비디오 인트로에서 “우리는 팝 밴드가 아니다. 흑백으로 찍어야 한다”라고 해놓고 형형색색 컬러 톤으로 바뀌는 것도 재밌었고. 

솔직히 말하면 그 비디오는 ‘조크’ 같은 거였다. 그전까지 우리 뮤직비디오는 늘 심각했거든. 우리는 음악에 있어선 굉장히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대하지만 멤버들 자체는 전혀 그렇게 진지한 성격들이 아니라서 ‘이번엔 좀 재밌고 가볍게 가보자’ 했던 거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쟤네들이 대형 음반사와 계약하더니 저렇게 컬러풀한 뮤직비디오를 만드는구나. 밴드의 정체성을 타협했다’고 말하더라. 우린 그런 게 좀 웃겼다. 전혀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어떤 밴드가 자기들이 하기 싫은 걸 억지로 만들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뮤직비디오를 만든 거다. 우리에겐 ‘농담’이었는데 사람들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더라. 그래서 더 재밌었다. 


팝과 록의 긴장 관계, 예를 들면 노엘 갤러거가 원디렉션을 밴드가 아니라고 비꼬는 스탠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록은 록다워야 한다” “밴드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같은 생각들 말이다. 

그런 건 너~무 따분하다. 음악계에서 우리는 찬사를 받은 만큼 질타도 많이 받았다. 나는 ‘신뢰’라는 것에 대해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신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나 의견을 갖고 있겠지만 나는 보수적인 사람들과는 생각이 좀 다르다. 사실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다. 음악을 장르로 구분하지도 않고. 나에게 음악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또 음악은 내 성격의 연장선상에 있지도 않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는지 아닌지 신경 안 쓴다. 물론 내가 ‘만드는’ 음악을 좋아하는지는 신경 쓰지. 하지만 그건 다른 주제다. 지금 우리 세대는 음악을 그런 식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 음악이 바로 그런 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드러내고 있다. 세상에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너무 많은데 정해진 장르의 음악만 좋아하고 듣는다는 건 좀 어리석은 것 같다. 더 이상 소용도 없는 것 같고.  


투어를 다니면 현실 감각이 좀 떨어질 것 같다. 밴드에게 ‘현실’이라는 건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를 것 같은데?

좋은 질문이다. 지금은 The 1975로 사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건 내가 만든 세상이고 이 안에 있을 때 안전하다 느껴진다. 내 앞에 카메라가 있거나 질문을 받거나 무대 위에 있을 때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지금 이 모든 걸 이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생이라는 실제의 삶과 그 삶에서 느끼는 불확실성이 더 불안하고 두렵다. 내가 만든 현실보다 그 외의 현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는 무대나 비주얼적인 면에서 비현실적인 면이 많고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지만 우리 음악이 우리에겐 오히려 현실적이다. 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고, 음악에 가려진 나일 뿐이라는 사실에 가끔씩은 안도감을 느낄 때도 있다. 이게 실제 내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도. 그래서 투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힘들지. 집에 앉아서 “자, 이제 난 뭘 해야 하지?” 하면서 말이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The 1975와 연관되어 있는 거니까 분명 멈춰야 할 때가 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멈출 때가 아니다.  


연말을 지나 내년 상반기까지 이미 투어 스케줄로 꽉 찼더라. 꿈꿔왔던 순간이긴 할 테지만 그래도 바쁜 일정에 힘들거나 권태롭진 않나?

우리 새 앨범에 들어갈 곡으로 ‘This Must Be My Dream’이라는 곡이 있는데 ‘이게 정말 내가 예상한 것인가?’ 하고 묻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답은 ‘No’다. 내가 15살이었을 때 ‘네 앨범이 넘버원이 된다면 어떻겠니?’ 하고 묻는다면 너무 신나 팔짝팔짝 뛰어다녔겠지.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그런 일은 갑자기 어느 날 생기는 게 아니거든. 우린 그런 걸 예상하지 않았다. 정규 앨범이 나오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앨범이 분명 넘버원이 될 거라고 하도 말해서 막상 앨범이 실제로 성공했을 때는 그 감동이 희석됐다. 우리 자체가 느끼는 감동이 그다지 크질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런 큰 성공이 나를 바꿀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바뀐 건 하나도 없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철학적이고 정신적인 면에서 말하자면 나는 행복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수치나 통계적인 일이 아닌 것에서 말이다. 결국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나 자신을 믿는 게 가장 중요하다.  


롤링스톤즈, 뮤즈의 서포트 밴드 활동을 했다. 신인 시절, 빅 밴드의 무대를 함께 하면서 자신들의 미래를 점쳐보기도 했을 텐데, 지금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앞으로도 그러길 바란다. 2년 전에 비하면 많이 온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다른 이들의 성공과 비교하지 않는다. 모든 밴드는 자신만의 인생과 커리어가 있다. 성공을 목표로 뭔가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3년 전 누군가가 우리에게 ‘월드투어를 2번이나 하고 롤링스톤즈, 퀸, 뮤즈와 같은 무대에 서게 될 거’라 말했다면 아마 “미쳤다”라고 했을 거다. 그런데 열심히 하다 보면 희망하는 바가 현실이 되고 자신감이 생기지. 자신감 없이는 롤링스톤즈의 서포트 밴드를 할 순 없잖나. 

 

다음 앨범에서 무엇에 더 집중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나?

많은 걸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얘기는 멤버들과 늘 먼저 한다. 내가 가끔은 실없는 소리도 하고, 내가 믿는 것들에 대해서는 매우 감성적이지만, 음악 작업에 있어선 진지하고 신중하다. 그리고 완벽해야 하지. 내가 그동안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후회한 적은 있어도 지금껏 내 음악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ARENA HOMME+, September 2014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아레나 옴므 플러스와 조하나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Behind Story

여름 록 페스티벌 시즌을 맞아 한국에 온 해외 뮤지션들의 스케줄은 아시아를 한번 훑고 지나가는 루트 중 일부이기 때문에 굉장히 타이트하다. 물리적 거리가 먼 서양권 뮤지션들은 한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태국 등을 돌며 공연할 때 대부분 하루는 비행하고 다음날 공연 후 다음날 또다시 비행기를 탄다. 어떨 땐 지금 서있는 무대가 어느 나라인지 모를 정도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쳐있다. 


The 1975는 2014년 당시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밴드였지만, 이미 영국과 미국 음악 씬에선 밴드 음악에 팝적인 스프링클을 끼얹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었다. 단독 공연 내한이 아닌 투어 중 한국을 잠시 들른 해외 뮤지션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다. 특히 뮤지션 측에서 시간 상의 제약으로 인터뷰를 꺼려할 때는 더더욱. The 1975가 음반사를 통해 한국 첫 내한에 인터뷰를 아예 안 할 수는 없으니 매체 한 곳만 인터뷰하겠다고 했고, 내가 인터뷰어로 꼽혔다. 평소 음악 전문 에디터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라이브 공연이란 공연은 모두 다니며 신보에 예민했던 덕이었다. 


해외 뮤지션은 인터뷰 시간에 정말 짠데, 내가 The 1975를 처음 만났을 때 허락받은 시간은 단 10분 정도였다. 예상대로 지구 한 바퀴를 돌며 투어 중인 프런트맨 매튜의 얼굴엔 피곤함이 역력했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줄담배를 피웠다. 감정적이고 예민한 아티스트의 무대 뒤에서 인터뷰 도중 "그거 정말 좋은 질문이네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질문이네요!"라는 말이 나오면 절반은 성공한 인터뷰다. 나와의 인터뷰가 그저 시간 낭비가 아니란 걸 아는 순간, 그들은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태어나 처음 본 지구 반대편 낯선 이와 마주 앉아 나누는 10분 간의 이야기에도 의미를 담을 수 있다. 결국, 10분만 허락됐던 매튜와의 인터뷰는 그가 마음을 열면서 30분으로 늘었다. 


이후, The 1975는 자주는 아니지만, 밀도 있게 잘 만들어진 앨범을 꾸준히 발표하며 여전히 퇴폐미를 뿜어내고 있다. 그리고 10년 전 나와 나눈 대화의 의미가 진심이었음을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영국은 이게 멋있다. 잘하는 밴드들은 꾸준히, 오래 음악 할 수 있는 생태계가 있다. 



The 1975 'Ab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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