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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웃기고, 시끄럽고, 아름답고, 가슴 아픈

날 위해 울어주오. 영화 <아노라>

by 조하나 Feb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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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제7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영화 <아노라>입니다. 다가오는 2025년 3월 2일에 열리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션 베이커), 각본상(션 베이커), 편집상(션 베이커), 여우주연상(마이키 매디슨), 남우조연상(유리 보리소프) 부문에 오른 화제작인데요.  

    

감독, 각본, 편집의 션 베이커도 션 베이커지만, 제78회 영국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마이키 매디슨, 제임스 매커보이의 젊은 눈빛을 가진 유리 보리소프의 연기가 일품입니다. 이들뿐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앙상블 캐스팅 자체가 훌륭해요. 배우들은 친근하고 자연스러우며 생동감이 넘칩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션 베이커는 미국의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의 삶을 신선하고 다채롭고 깊게 파헤치는 감독입니다. 사랑과 유머와 혼돈으로 가득한 션 베이커의 유니버스는 네온사인 불빛이 반짝이는 낭만적인 도시 밤거리의 후미진 뒷골목을 비추는 사회적 리얼리즘과 같죠.     






그의 영화에는 똑똑하고 강인한, 만약 이번 생에 다른 카드를 쥐고 태어났더라면 분명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사회의 담론에서 철저히 소외된 사람들, 그중에서도 성 노동자들이 바로 베이커의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성 노동자는 주로 범죄 현장의 피해자로 등장합니다. 또는 계층 사회나 권력 구조에서 가장 낮고, 약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로 묘사되죠. 하지만 베이커의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엉망진창인 삶이 자신의 결정으로부터 빚어진 결과라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베이커는 이들에게 올바른 삶의 잣대를 함부로 들이대지도이들을 향한 관객의 맹목적인 동정심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그는 사회의 주변부를 맴도는 사람들도 충분히 존경과 관심그리고 공감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그저 자신만의 스타일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통해 말합니다그래서 저는 그의 영화를 참 좋아합니다.          




영화 <아노라> 예고편

          




      





기브 앤 테이크

     

아노라(마이키 매디슨)는 뉴욕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젊은 성 노동자 여성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노라 대신 ‘애니’라 불리길 원하죠. 그녀의 삶은 성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비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성 노동자로 일하는 삶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도, 피치 못할 사정이나 절박함 때문에 이런 삶을 살게 되었다고 정당화하지도 않습니다. 그녀는 일터에서 기계적으로, 능숙하게, 영혼을 너무 갈아 넣지 않으며 적당히 일하고, 쉬는 시간엔 동료들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눕니다.   


   



영화는 <프리티우먼> 같은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닙니다. 성 노동을 미화하지도 않죠. 술에 취해 흥분한 남자들은 그녀에게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습니다. 애니에겐 과 이 노동과 거래의 수단일 뿐입니다그녀는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보통의 직업인으로 담백하게 일합니다     






어느 날, 애니는 클럽에 찾아온 러시아 재벌 집 철부지 아들 바냐(마르크 예이델시테인)를 만납니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아가씨를 찾는 그의 특별한 요청 때문이죠. 애니는 반야의 러시아어를 이해하지만, 영어로 말하는 걸 선호합니다. 애니는 이반을 VIP실로 안내한 후 이반자신이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게끔 하며 주도권을 잡습니다애니는 이반의 미국적 환상이 되고, 아름답고 성숙하고 똑똑한 애니의 매력에 이반은 금세 빠져듭니다.      





바냐는 다정다감하지만 십 대(애니에게 이십 대 초반이라고 했지만, 바냐가 나이를 속였을 수도 있어요)의 뻔뻔함과 이기적인 탐욕이 넘치는 나약한 아이입니다. 그는 <프리티우먼>의 리처드 기어처럼 애니를 일주일 동안 독점하기 위해 1만 5천 달러를 제안하죠. 애니는 1만 달러에도 받아들였을 거라 하지만, 바냐는 3만 달러라도 줬을 거라고 합니다. 1만 달러에서 3만 달러 사이이것이 바로 두 사람의 사랑의 척도입니다     





바냐는 애니의 삶에 백마를 타고 나타난 왕자님이 아닙니다그녀 삶 속의 다른 남자들과 바냐가 다른 점은 바냐가 더 젊고, 잘생기고, 부유하며,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것뿐이죠. 애니는 때때로 엉망진창이고갈등하고또 타협하는 아주 보통의 인간입니다그녀를 둘러싼 세상도 마찬가지죠가진 건 아버지의 돈 뿐인 어린애 같은 이반이 헛된 희망이란 걸 알면서도, 그녀를 돌보기는커녕 자신조차 돌볼 수 없는 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애니는 바냐와의 충동적인 결혼을 선택합니다. 누구도 그녀에게 도덕적 양심을 물으며 비난할 수 없습니다.   




                  





        

이토록 웃기고시끄럽고아름답고가슴 아픈

     

뉴욕 브라이턴 비치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호화 주택에서 달콤한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는 애니와 바냐에게 불청객이 들이닥칩니다. 바냐가 매춘부와 결혼했다며 길길이 날뛰는 러시아의 부모가 보낸 하수인 이고르(유리 보리소프)와 토로스, 가닉입니다.      




곧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영화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변화구를 줍니다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멀리서 보면 희극입니다. 바냐가 저 혼자 살겠다고 잽싸게 도망쳐 버린 후애니는 지금껏 그랬듯 혼자서 자신을 지킵니다그녀는 물러서지 않고앙칼지게 소리 지르며부당함을 따지고자신의 권리를 주장합니다     





이제 영화는 코미디 범죄 소동극으로 장르를 바꾸며 우리를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태웁니다토로스는 이 즉흥 결혼을 바냐의 부모가 러시아에서 전세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무효화하려 하고, 애니는 바냐가 준 다이아몬드 반지를 부적처럼 흔들며 그들의 관계가 진짜라고 따집니다. 그렇게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갑자기 차를 타고 바냐를 잡으러 밤새도록 뉴욕을 뒤집니다. 그들은 서로 덜컥거리고 삐걱거리며 맨해튼 도심에서 눈 덮인 코니아일랜드로, 저속한 판타지에서 가혹하고 냉혹한 현실로 좌충우돌합니다. 이 단 하룻밤 동안 저는 이들의 여정을 함께 하며 소리 지르고손뼉을 치다울고 웃으며결국 애니는 물론 이고르와 토로스가닉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바냐와 애니의 관계는 정직한 거래에 가깝습니다. 바냐는 구매자이고, 애니는 판매자입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이 잠시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업 파트너 맺은 조작된 로맨스가 잠시라도 더 유지되길 바라게 됩니다한편으론 그리 오래가지 않을 동화 같은 이야기라는 것도, 이 관계의 몰락은 잔혹할 거라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애니에게 더 가혹할 걸 잘 알면서도 말이죠. 철부지 이반에게 애니는 그저 하루이틀의 숙취 같은 사람이니까요.    

  




이제 우리는 동지 의식을 가지고 그들의 비극적인 여행에 기꺼이 함께하기로 합니다. 적어도 우리에겐 애니는 하루이틀 앓다 지나갈 숙취 같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결국 애니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우리가 영화 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구출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하지만 그녀는 애초에 누군가로부터 구출되기를 바라지 않아요자신의 헛된 희망이나 어리석은 선택을 후회하거나 자책하지도 않죠. 그저 그녀는 자신이 직면한 어려움에 집중하며 스스로 일어섭니다. 그녀에게 구원 따윈 필요 없어요     





애니가 반야와의 계산적인 관계에서 당연히 피해자일 거란 생각은 우리의 오만함일 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관계에서 소외된 사람은 애니뿐만이 아니니까요. 미국과 러시아의 거리만큼이나 멀고 차가운 재벌 부모와 반야의 관계보다 반야와 애니의 결혼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달려온 이고르와 토로스, 가닉과의 관계가 더 인간적이고 가족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들 역시 돈 많은 바냐의 부모에 고용되어 누군지도 잘 모르는 애니를 괴롭히는 거니까요. 바냐를 찾으러 뉴욕 이곳저곳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다니는 혼돈 속에서 조용히은근하게 애니와 이고르토로스가닉 사이에 침묵의 연대가 일어나는 걸 목격하고또 그들과 한편이 되는 건 관객으로서 정말 감동적인 일입니다     






이들의 한밤의 뉴욕 소동극 여정 내내 함께하는 빨간색 스카프는 억압과 해방, 권력을 상징합니다. 저항하는 애니의 입에 물린 재갈은 칼바람이 부는 코니아일랜드에서 애니의 체온을 덥히는 회복력이 되기도 하죠.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제트기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대항해 보는 애니는 계단 아래에서 바냐의 엄마를 올려다봅니다. 바냐의 엄마는 그녀를 내려다보죠. 그리고 바로 이때, 애니는 자신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권력을 실감합니다. 애니가 혼인 무효 서류에 서명한 후 사무실을 나설 때 전 시어머니에게 던지는 스카프는 권력, 그리고 해방입니다. 애니는 상처만 받은 피해자가 아닙니다. 이반은 앞으로도 꿈도 꾸지 못할 자유를 그녀는 얻습니다.    


       




       





낯선 자여함께 울어주오

          

때때로 수면으로 떠오르는 잔인한 슬픔도 찾아옵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모든 흥분과 혼란과 소음이 잦아들자 내내 씩씩하게 잘 참아온 애니는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차 안의 고요 속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자신의 상처를 마주합니다그녀는 자신의 취약한 면을 사람들에게 숨기는 걸 꽤 잘하지만, 이고르와 우리에겐 그렇지 않아요.     





돌아보니 그래요. 첫 만남에서 이고르는 자신의 이름을 정중히 소개하고, 애니에게 똑같이 이름을 물었습니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인사지만, 애니에게는 생소한 일이었죠. 잔뜩 꼬인 애니가 자신을 ‘바냐의 아내’라 소개하며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이고르에게 보여줬을 때 그는 둘의 관계를 의심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축하한다”라고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고르의 눈빛은 정말 순수하고 진실해 보여요. 대화의 시작을 끈적한 농담과 눈빛으로 시작하는 대신속으로 바라는 꿍꿍이나 아무 대가 없이 이제껏 그녀를 그렇게 대하는 사람은 이고르가 유일합니다애니의 진짜 이름 아노라의 의미에 관심을 두고 그 이름이 애니보다 더 좋다고 한 사람도 이고르가 처음이었습니다    


 



이고르는 애니가 강제로 포기해야 했던 그 약혼반지를 몰래 빼돌려 그녀에게 되돌려줍니다그 반지의 의미가 애니에게 단지 ‘돈’이 아니라는 걸 이고르는 잘 알고 있거든요. 애니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방법, 몸의 언어로 그에게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려 합니다. 여태 그녀가 가장 잘해온, 익숙한 방식으로요. 그녀의 삶에서는 모든 것이 거래였으니까요.    




애니의 가족과 배경이 영화에 자세히 나오진 않아요. 애니가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건 우즈베키스탄인 할머니 때문인데, 애니의 본명인 ‘아노라’의 ‘Anor’가 우즈벡어로 ‘석류’더군요. ‘아노라’라는 이름을 피하고, 러시아어로 말하길 꺼리는 건 우리가 알지 못해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소외된 이민자 가족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여전히 진정한 관계보다 익숙한 거래의 방식을 선택합니다. 어쩌면 ‘애니’의 권력을 되찾으려는 시도일 수도 있죠. 하지만 마침내 그런 자신을 깨달은 ‘애니’는 ‘아노라’가 되어 이고르의 품에 안겨 혼란스럽고 두려운 감정을 울음으로 토해냅니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고요하고 약한 장면이지만, 그 어느 장면보다 강인합니다.      





영화의 엔딩에서 애니의 마음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우리를 감정적으로 이끄는 음악도 없고대사도 없고에필로그도 없습니다베이커 감독은 아노라에게 모든 것을 맡깁니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것이니까요. 함부로 그녀의 삶을 평가하지 않고, 그녀의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오만하게 그녀의 미래를 감히 규정짓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베이커 감독이 아노라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인 것처럼 말이죠.      

어쩌면 베이커가 도전하고 싶었던 건 우리가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낭만적인 피날레를 기대하도록 영화가 우리를 길들여 온 방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션 베이커는 어떤 사람에게서든 따뜻한 인간미를 발견해 내는 감독이에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는 사람이죠. ‘아메리칸드림’이라는 거대한 허상 아래 어둡고 소란스러운 골목길을 메운 소외된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베이커의 시선은 혹독한 현실을 냉소하지도, 억지로 포장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을 건넬 뿐이죠.      


그렇게 영화 내내 함께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아노라’라는 사람이 보입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잠깐, 함께 침묵을 지켜주고 울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꽤 괜찮은 거 아닐까요?      



                              




영화포스터 및 이미지 ⓒ <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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