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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보리 Sep 20. 2022

제주도 뚜벅이 여행 - 협재 해변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느긋하게 9시 반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나오니 어느덧 10시 반. 점심 겸 아침을 먹으러 곰탕집을 가게 되었다. 어제는 분명 멀게만 느껴졌던 해수욕장까지의 거리가 아침이 되니 생각보다 걸을만하다고 느껴지는 상쾌한 아침이었다.


 깔끔한 제주스러운 시골집 외관의 곰탕집에서는 흑돼지 맑은 곰탕 한 가지만 판매했다. 창 밖으로 돌담이 보이는 풍경을 보며, 제주도에 와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갑자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따뜻한 곰탕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낸 후, 우산을 피려니까 다시 맑아진 날씨. 제주도는 변화무쌍하다.

상가들이 하나씩 문을 열고 있었고, 제주스런 돌담길을 걸으며 바닷가로 향했다.


바다 수영을 하려고 돗자리에, 스노클링에 짐을 넣은 백팩이 꽤 무거웠는데 햇볕까지 더하니 얼른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래도 맥주는 사가야지.

뚜벅이의 장점은 낮이고 저녁이고 술을 마실 수 있으니까, 바닷가 앞에서 자유롭게 시원한 낮맥 한잔 하고 싶었다.


마침, 협재해변 인근에는 수제 맥주를 파는 가게가 있다. <기영 상회>는 오래된 동네 작은 상회 같은 공간에 맥주와 설명서가 진열되어 있어 신선했다. 한참을 고르다가, 에일 하나씩 집어왔다.


날이 금세 뜨거워졌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얼른 끼고, 반팔을 걷었다. 이 더위에 우리처럼 백팩을 메고 걸어 다니는 외국인 커플이 반대편에서 오고 있었다. 친근감과 왠지 모를 동조감에 가까이 다가와 눈이 마주치면 "하이"라며 인사하려 했는데, 한국 생활이 익숙해진 건지 눈을 아래로 피하거나 다른 곳을 응시하며 지나쳤다.


'아참, 여기 한국이지'

외국에 가면 보통 눈을 마주치면 먼저 인사해준다. 우리나라는 눈을 피하지 않으면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눈을 요리조리 피하기 바쁘다. 한국 문화를 존중하는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제주도에 외국인이 이렇게 많았나? 그러고보니 어제도 분명 흑돼지 먹을 때 남자 외국인 두 명이 사진 찍고 먹고 있었다.


해변가에도 비키니를 입고 수영하는 외국인들이 자주 보였다. 왠지 모르게 동년배로 보이는 외국인 친구들이 옆에 돗자리를 펴고, 우리를 한번 힐끔 보더니 (놀러 온 걸로 보여서인지) 안심하다는 듯이 짐을 두고 바닷가에 들어가는 모습이 좋게 보였다.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훔쳐가지 않으니까, 도난당할 일이 없다. 해변에 파라솔마다 짐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들에, 왠지 모르게 자부심이 느껴졌다. 우리 또한 역시 그들을 의심하지 않은 채 핸드폰과 지갑이 든 가방을 모래사장에 두고 바다에 풍덩 들어갔으니까.



"앗 차거-" 시원하면서 기분 좋은 파도가 철썩거린다.

낮에 보는 제주의 바다 색이 너무 예뻤다.

하얀 백사장 위에 투명한 바다, 검은색 현무암. 멀리 보이는 비양도 에메랄드 빛에 잔잔한 파도.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하는 표정으로 놀고 있다.


나는 수영을 못하지만 물은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짧게 놀고 금방 나오는 데도 말이다. 가져온 튜브를 불어서 허리까지 오는 곳에서 튜브를 타고 놀았고 수영을 좋아하는 남편은 물안경을 끼고 수영을 신나게 즐겼다.

수영을 하고 나와서 바라보는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다.


'이래서 제주, 제주 하는구나'

여름휴가 때마다 왜 올 생각을 안 했을까   


비교적 한적한 곳으로 짐을 옮겼다. 스노클링 하기에 아무래도 사람이 없어야 잘 보인다. 물고기가 제법 보인다. 해변가라 거의 조그만 물고기만 보였지만 그럼에도 재밌게 스노클링을 즐겼다. 물놀이를 30분 정도 했나. 벌써 지쳤다. 돗자리에 반쯤 누워, 아까 샀던 맥주 한 캔을 따서 홀짝였다.


"크 이맛이지"

잠깐 이어폰을 꽂고 누워있다가 한숨 잤다. 뜨거운 백사장 아래에서, 나는 래시가드로 긴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남편은 수영복 반바지 밑으로 다리가 시뻘겋게 탔다.




한낮에 기온이 뜨거운 데다, 벌써 4시 반이 다 됐다.

"아니, 나 오늘 뭐 한 것도 없는데?"

슬슬 배가 고픈데, 카페라도 가야지.


바로 인근에 스타벅스에 갔다. 스타벅스에 가면 평소에 자주 갔던 스타벅스 특유의 느낌과 협재점이 주는 여행지에 외딴곳에 있는 특유의 느낌이 좋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프티콘도 쓸겸)

맞다. 사실 케이크 세트가 있었는데 마침 보여서 쓰러 갔는데, 역시나 제주도의 스타벅스에서도 스벅이 주는 감성과 바다 뷰가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아무튼 거기서 커피 수혈과 당 충전을 하면서 잠시나마 리디북으로 책을 읽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각이 되었다.

항구 쪽으로 걸어가면서 아기자기한 돌담집들을 지나쳤다.

'바닷가에 살면 이런 느낌일까. 관광지 주변이라 사람들이 많이 와서 시끄럽고 단점도 많겠지. 그럼에도 매일 이런 풍경을 마주할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협재포구에 다다르자, 멀리서 바다 밑에 줄무늬 돔 같은 물고기들과 자리돔이 보였다.

역시나 멀리서 낚시를 하는 어르신이 몇 분 계셨다.

여름 한적한 평일에, 해가 지는 비양도를 보며 낚시하며 살면 너무 행복할 것만 같다. 퇴근하고 오신 아저씨는 매일 저녁마다 낚시하러 오신다고.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제주에 살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바닷가 앞이라 그런지, 제법 여유 있고 느긋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인생 별거 없구나..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던 날이었다.  

그냥 해지는 풍경을 보고 살며,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 가고 매일 맛있는 음식을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것. '또..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아직 30대 초반과 중반의 창창한 우리가 앞으로 더 할 수 있는 게 많을 텐데 말이야.

남편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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