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숨을 쉰다는 것
숨 쉬기
오전 여섯 시 삼십 분. 요란한 알람 소리에 마음속으로 ‘오 분만 더’를 외치며 감은 눈에 힘을 줬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힘들게 잠이 든 난 오늘도 숨을 쉬고 있기에 살아 있고,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내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두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 가만히, 삼십 초 아니 십 초라도 나의 몸을 느껴야지. 오늘 하루를 버텨야할 나의 호흡에 귀를 기울여야지.’
잠들기 전에 종종 그런 계획을 세워둔다. 나를 조금 돌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하지만 오늘도 ‘오 분만 더’ 하는 마음이 이겼다. 오 분 미룬 일상. 결국 조바심이 나서 기지개조차 켜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생리적인 일을 해결해버렸다. 낭만이 없는 시작. 바쁨이 붙은 시작.
하루 시작은 늘 이렇다. 이런 시작에는 나를 위한 배려가 없다. 시간과 삶을 지탱해주는 내 숨쉬기는 나를 위한다기보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위해 존재한다. 인생에서 내가 나를 가장 앞에 둬본 적은 언제였지. 그런 생각을 문득 하다가도 바쁜 일들에 마음이 밀려난다. 내 숨쉬기는 바쁜 삶이 당연하다는 듯이 열심히 진행 중에 있다.
폐에 들어찼다가 또 쉬이 빠져나가는 공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이 공기를 통해, 각 신체 기능을 통해, 호흡하는 지금 이 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그런데 삶도 그런가? 모두의 삶이 공평해지려면 어떤 형태여야 하는 걸까?
아이. 나와 얼굴 모르는 아주 많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다가 기억이 아이들의 모습으로 넘어갔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갓난아기를 두고 천사 같다고 하는 마음을, 그 표현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첫 아이를 낳은 후에야 그 말이 어떤 감동에서 우러나는 표현인지 알 수 있었다.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곤히 잠든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에게 천사들이 내려왔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집 밖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 마음을 상하게 한 일들, 노동의 무게로 지쳐 있어도 내 천사의 모습은 마음을 노곤하게 풀어줬고 굳은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다.
첫 아이는 스물두 살에 낳았다. 이제 스물여덟이 된 나의 맏이는 딸이다. 첫 출산하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임신 중이었던 나는 오로지 남편 바라기였다. 먼저 결혼한 선배들은 “아이 낳아봐. 남편은 두 번째야.”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그럴 리 없다고 늘 생각했다. 정말 대단한 남편 바라기였으니까. 그러니 태어날 아이가 남편보다 우선이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때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남편이 몇 시에 들어오든 하염없이 기다리며 함께 늦은 저녁을 먹었고, 남편의 말 한마디, 반응 하나에 행복을 느꼈다. 배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사인펜으로 줄을 그은 듯이 살이 터 있어도, 손과 발이 코끼리 다리만큼 부어 있어도, 아이와 내가 한 몸으로 있는 그 시간에도 내 인생에서 첫 번째는 남편이었다.
예정일이 사흘이나 지났을 때 남편은 급히 출장을 갔다. 가야만 했다. 슬슬 걱정이 밀려오는 때였지만 아이가 태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 있기가 조금 두려운 하필 그런 날에,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삼십 분 간격, 이십오 분 간격, 이십 분 간격. 신기할 정도로 통증은 일정한 간격으로 오고 가고 했다. 정말 정확했다. ‘이게 아이가 나온다는 신호인가?’ 스물두 살의 나는 다니는 산부인과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제가요, 지금 십오 분 간격으로 통증이 오는데요. 아이가 나오려면 하늘이 노랗고 별이 보여야 한다는데, 너무 아프기는 한데, 그렇지는 않아요. 별이 보이고 노랗지는 않은데요, 언제 병원 가야 하나요?”
“어서 오셔요.”
“아기 나올 때가 안됐으면 다시 돌려보낸다면서요?”
“일단 오셔서 진단받아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약간의 웃음이 스며 있었다.
그때 우리 집은 시내에서 차로 15분정도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병원을 가려면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나는 혹시라도 돌아오게 되면 그 택시비가 아깝다는 생각에 최대한 버티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병원에서 일단 오라고 했으니 다시 돌려보내진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진통 간격이 십오 분이었다.
나의 맏이는 다섯 시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예쁜 공주를 출산했다는 말을 내가 나에게 써도 충분할 만큼 첫 아이는 예뻤다.
병원에서는 첫 아이 출산 치고는 빠르게 순산했다고 했다. “그 정도면 쉽게 금방 낳은 거예요.” 간호사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나를 격려했고 기특하다고 했다.
하지만 스물두 살에게 다섯 시간의 산통은 대단한 고통이었다. 나는 그 결과가, 아이를 처음 본 순간의 감정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루 말 할 수 없는 신비로움과 행복감. 가슴에서 묵직하게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십 개월의 힘겨움과 고통은 사라지자마자 내 눈앞에 나타난 쪼글쪼글 하고 불그스름한 아기. 아주 작디작아 만지기에도 조심스러운 아기에게서 나는 작은 숨소리. 아기는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려 온몸을 들썩이며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의 몸이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내뱉는 숨은, 살아내겠다는, 살고자 하는, 인생을 향한 첫 투쟁 같은 것이었을 거다.
숨쉬기.
아이가 숨을 쉬는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 나의 눈에는 우리가 함께할 삶의 기쁨과 행복과 희망 이 오롯이 나의 책임과 노력으로 만들어질 거란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지는 듯했다.
그리고 나도 여느 엄마들과 다름없이 아이가 삶의 1순위가 되었다. 남편의 피곤을 녹여줄 따뜻한 식사보다는 아이의 영양을 더 생각했고, 남편의 멋진 외투보다는 아이의 예쁜 옷이 더 눈에 들어왔다.
모던한 집안 인테리어는 점점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아이의 물품들로 가득 찼고 TV 리모컨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졌다. 외식 메뉴도 나들이 장소도 아이가 중심이 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남편이 집에 늦게 돌아오는 날에는 아이와 잠결에 남편을 맞이하는 날도 많아졌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우리 부부의 대화 주제였다. 오늘은 아이가 어떤 예쁜 짓을 했는지, 누구와 놀았는지, 왜 울었는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 마치 나의 꿈이 아이의 꿈인 것처럼 말했다. 아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계획을 세우고 내 아이는 마치 그 꿈을 이룬 것처럼 가슴 부푸는 상상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때 아무것도 모른 채로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는 어쩌면 부담감에 거친 숨을 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가 자라서 어느덧 한 가정을 이뤘다. 결혼을 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된 것만으로도 엄마의 마음을 많이 이해한 것 같다. 마음에 쏙 들게 철이 들진 않았지만, 딸에게 지혜와 넒은 마음이 생겨나고 있다는 걸 요즘 느낄 수 있다.
시간이 간다. 바쁘게, 한달음에, 구만 리를 달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숨이 몇 번 들쭉날쭉한 것이 전부인 것 같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삶이 이만큼 왔다. 내 삶에 필요한 지혜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살아 있는 날들 내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일들이 무엇인지. 내가 가꿔온 삶에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끼워 넣는 것은 맞지 않다. 나의 숨 박자에 어울리는, 내가 내게 해줄 수 있는 배려는 아침에 눈 떴을 때 기지개 켜기 정도면 충분하다. 내가 내게 그걸 매일 해줄 수 있으면, 그런 날이 오면, 내 삶이 완성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