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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2.눈치

어려서부터 눈치가 빠르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나는 이모할머니 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일찍 혼자된 엄마는 경제적인 이유로 나를 친척집에 맡겼다. 이모할머니가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나는 자연스럽게 남의 집 살이 눈치를 보며 살았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쯤 라면을 끓여 먹으려면 허락을 받아야 했고, 집주인의 아들인 세 살 많은 어린 삼촌의 라면도 함께 끓여 대령해야 했다. 계란 후라이를 하나 먹으려면 가족들의 몫이 충분히 있는지 세어 보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하교 후 책가방을 내려놓고 내가 가는 자리는 보고 싶은 만화 영화가 나오는 티비 앞이 아니었다. 그 시간에는 주방에서 할머니가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고, 나는 습관처럼 주방으로 갔다. 수저 놓는 일이라도 도와야 했고 식사를 마친 후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내 할 일을 할 수도 없었다. 다 먹은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거들어야 마음이 편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가 어둑어둑해지면 마당에 널려 있는 빨래를 걷어 개키는 일도 나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집에 손님이 오게 되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 집의 일가족이 아님을 느끼며 조용히 옆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손님이 내게 500원짜리 종이돈을 쥐어 주고 간 후에 그 돈은 내 돈이 아니었다. 남의 집 살이는 자연스럽게 나를 눈치가 빠른 아이로 성장시켰다. 

그 후 사춘기 10대 때부터 기차역 앞 슈퍼에서, 또 학교 앞 문구점과 분식점, 마을 사거리 속옷 직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일을 하는 곳마다 눈치가 빠르다, 일을 잘 한다, 싹싹하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보다 대가를  조금 더 지불해주는 사장님도 있었다. 심지어 10대의 마지막 일자리였던 속옷 직매점은 2년 가까이 근무하게 되었는데, 방학이면 사장님이 전적으로 내게 매장을 맡기기도 했다.

집안에서 별로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외부에서 들리는 칭찬에 더욱 인정받으려 애썼다. 내 용량보다 많은 일들을 소화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현재의 모습과 빠른 일처리 습관은 그때를 기점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이제 인생의 반백년을 살아온 중년의 나이에 그 눈치 빠르다는 것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눈치가 빨라 삶에 있어 좋은 점도 많지만 그로인해 피곤함도 많이 생긴다.

나를 닮아서 그런가 유독 큰 딸 아이가 눈치 빠른 행동들을 한다. 어느 식당에 누구와 가든 수저를 먼저 챙긴다든지, 여행 중 경치 좋은 곳을 보면 먼저 카메라를 들고 자연스럽게 셔터맨이 된다. 커피와 음료를 먼저 사서 대접을 하기도 하며, 눈치 빠르게 자리 양보도 잘한다. 마음이 힘들어 하는 친구가 있으면 먼저 연락해 맛난 것도 사주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를 해준다. 이런 것들이 겉으로는 좋아 보이며 성격이 좋다는 말들을 듣기도 한다. 

며칠 전 큰 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비슷한 상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외로움과 서운함이었다. 딸아이와 나에게는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습관이 있다.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 게 우리 눈에는 보이니 안 챙길 수가 없다. 내가 늘 먼저 연락해야만 만남이 이루어진다. 아니 연락을 올 때까지 기다리질 않는다. 상대의 눈빛 하나 작은 말 하나도 내 눈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보여 신경 쓰일 때가 많다.

그런데 나와 딸 아이는 상한 마음과 우울함을 누군가에게 티를 낼 수가 없다. 타인들은 그런 우리 모습이 익숙지 않고 나 또한 그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가 없다. 이렇게 눈치 빠른 우리는 먼저 나서서 일을 하고 정작 위로가 필요할 때는 받지 못하는 상처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큰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큰 아이를 양육하며 바르게 키우겠다고 훈육하며 야단치던 기억들이 스쳤다.

지금의 딸 아이 모습은, 스물두 살 아직 어린 엄마가 사랑을 주기보다는 지식과 옳고 그름을 먼저 가르친 결과다. 이로 인해 상처와 외로움이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했다. 또한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면서 좁아져 있는 마음에 힘들어하는 모습까지도 나와 비슷하다.      

이제 한 남자의 아내가 된 큰 딸 아이에게 친정 엄마로서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딸아! 앞으로는 조금 눈치 없어도 된다. 때로는 눈에 보여도 살짝 눈을 감아도 된다. 타인의 어려움 앞에서 때로는 너 자신이 먼저 뛰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 뒤로 미뤄도 된다. 다른 사람의 기쁨에 너를 맞추지 않아도 된다. 조금은 이기적으로 보일지라도 타인을 보는 시선에서 너 자신을 먼저 보는, 너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눈치 채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한다.      

이 말은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들이 좀 뭐라고 하면 어때, 나도 이제 조금은 눈치 없이 백치미 같은 모습으로 살고 싶다. 내 자신의 행복을 먼저 찾고 나의 어려운 마음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이에게 화를 내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나는 안 될 걸.

살아보니 자기감정 그대로 쏟아 부으며 사는 이가 꽤 많다. 그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부러울 때도 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어도 나의 상처를 만져달라고 말하고,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 적어도 남이 아닌 내 자신에게 먼저 눈치를 보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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