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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나씨 Jun 02. 2022

너의 고생과 성과를 몰라준다고 느끼는 너에게

특히 어른의 칭찬을 받지 못해 속상해하는 너에게

며칠전 6달간이나 이어졌던 장기 교육과정의 수료식이 있었지? 사실 담당자의 입장에서 말이 6달이지, 준비기간들과 마음고생한 시간들을 합치면 6달이 아닌 근 1년이 되지? 특히 관련업무를 해왔었던것도 아닌 너는 이 자리에 오자마자 상당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회사에 입사한 이후 13년간 숫자와 관련된 업무를 해온 너에게 교육과정을 개설하여 운영한다는 것, 특히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일반 교육과정과는 달리, 기간도 기간이지만 외부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특히 교육 선발부터 서류전형과 필기시험까지 진행해야 하는 이번 과정은 정말이지 큰 모험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과정 중에 네가 윗사람들에게 말이라고는 소위 '좋은 형용사'들은 거의 없었지. 그저 이 업무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로 뛰어들었다는 이유로 진행상황에 대한 끊임없는 확인과 재촉, 그리고 질문들. 너의 마음 한켠에는 우선 너의 능력에 대한 의문점들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와 그런 너를 갉아먹고 있었을 것이다. 전임자와 비교당하며 혹시 내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계속해서 고민해왔을 것이다. 나름 그간 회사생활을 하며 쌓아온 명성에 해가되지는 않을까? '역시 숫자만 가지고 놀던 사람이라 저것밖에 안되는 구나.' 류의 말이 들리지는 않을까 하며 무척이나 걱정해왔을 것이다. 내 말이 다 맞지?


사실 그래도 그동안은 비교적 잘 참고 버텨왔을 것 같다. 아직 끝난것이 아니었으니까. 끝나고 나면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착각했었을 테니까. 그런데 수료식이 끝난 지금, 그 흔한, 혹은 인사치레였을 그 한마디 조차도 너는 듣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모두 함께 모여 건물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난 뒤, 모두에게 잘 가라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어디선가 "오차장!" 하며 너를 불러세우는 소리가 들렸지. 혹시나 하고 돌아선 너에게 들려왔던 이야기.


"오차장! 우리 식당가니까 ㅇㅇ씨 점심먹으러 오라 그래!"



사실 주변 동료들, 그리고 함께 레이스를 달렸던 누군가들은 분명히 너의 고생을 어느정도 이해한다. 분명 고생했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네가 가장 듣고 싶었던 그 말을 들려줄 사람들은 너에게 그 말을 들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로 인해 네 마음이 상당히 복잡해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상황은 어릴적부터 경험했던 것들과 합쳐져서 시너지효과를 내는데 일조했으리라 생각한다. 또 다시 착한아이 컴플렉스의 부작용이 엄습해오기 시작했을테니까.



어릴적부터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는 주문을 듣고 자랐던 너는 줄곧 그렇게 행동해왔다. 그리고 학창시절 내내 또래들의 앞에서 기꺼이 리더로 나섰고 그에 따른 역할을 부여받아왔다. 집에서는 어른스러운 장녀여야만 했고 대학교에 와서도 '알아서 잘하는 사람'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사실은 원래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책임감 때문이었을텐데. 그래서 그냥 아르바이트생의 신분이었어도 그것만큼은 그 누군가의 눈에 띄였던 것인지 늘 정직원에 걸맞는 임무를 부여받곤 했지. 회사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 수십년간에 걸쳐 굳어져온 그 망할 책임감 덕분에 무슨일을 시켜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이 되어버렸잖아. 몸이 썩어가고 속은 문드러질지언정 네가 해야될 일은 해야만 된다고 느끼곤 했잖아. 적어도 너로 인해 피해자-여기서의 피해자는 동료들 보다도 너의 상사들-가 생기면 안된다는 마음이 컸었지?


그래서 항상 그랬을거야. 주변의 여리여리한 누군가들은 힘든 일을 할때면 '고생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부러웠었잖아. 그리고 '누구누구는 뭐 때문에 힘들다더라~' 류의 말들이 들릴때마다 짜증이 났었지? '아니 뭐 나는 안 힘든가? 그리고 왜 그렇게 그 누구누구들은 뭘 조금만 해도 그렇게 힘든 티가 잘 날까?' 되뇌이다가 결국 귀인을 너에게로 돌려, '내가 했던 일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던걸까?' 내지는 '나는 원래 이런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일까?'라면서, 너의 주변이 아닌 결국 너의 탓을 하고 있기 일쑤였던 것을 기억한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마음이 답답한데, 여기에 더해 또 자꾸만 챙기라는 소리에 자주 폭발하고 싶어졌던 것을 기억한다. 너와 같은 기수 동기 또는 너보다 연장자, 또는 너보다 그 업무에 능숙한 사람들임에도 불구, 항상 너에게 "ㅇㅇ이를 좀 챙겨라."라는 말을 듣곤 했었다는거, 그럴때마다 '아니 그럼 나는 누가 챙겨주지?'라고 되뇌였던 것은 일상이었잖아.


그렇게 항상 챙겨준다고 해서, 딱히 칭찬을 받는 것도 아니었잖아. 네가 듣고 싶은 말은 '그래 역시 참 어른스러워.'가 아니라 '아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말인 것을. 그리고 챙기라는 말 뒷켠에는 이런말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실상은 이런 뜻임을 너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네 일은 네 일대로 열심히 하고, 아니 잘 해내고) ㅇㅇ이를 좀 챙겨라."


이 상황에서 괄호안에 있는 일은 그냥 네가 해야되는 당연한 일이 되어버리고, 잘해봤자 본전이 되어버린다는거. 수십년을 살다보니 주변에 이따구로 말하는 사람이 천지라서 미쳐버리겠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사실 이 챙김에 대한 갈망은 어릴적부터 항상 있어왔던 것이었지. 언니오빠가 없는 너는 항상 동생을 챙겨야 하는 것에 대해 짜증을 부리면서도 장녀로서의 책임감 덕분에 혹여나 챙기지 못할때는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지. 회사 막내생활 5년. 그 기간동안 막내의 대접을 받아본 기억은 전무하잖아. 그 누구들이 선배들에게 챙김받고 즐거운 막내생활을 즐길 때 라이센스도 없는 신입 주제에 본부 회계담당자가 되어 수백억 지출하는 문서에 사인을 하고, 수억을 세금으로 납부하는 책임을 짊어졌던 것. 그러다 실수로 가산세가 나오면 몇 달치 월급으로 채워넣고 그 하루치 가산세를 줄이기 위해서 본사에서 자금을 보내주기 전에 기꺼이 몇천만원을 엄마에게 빌려 우선 세금 내던거 기억안나? 그런 네가 무슨 막내대접?

부서의 온갖 잡일은 도맡아하다가 어떤 선배가 자주쓰던 책상문을 안 잠그고 간 걸 네가 담당자라고 보안점검에서 지적 받은것, 일을 저지른건 다른 사람인데 그 당사자는 타부서로 옮겼다는 이유로 남아있는 네가 대신 징계를 받았던 것, 다 퇴근한 사무실에서 내일 써야 한다는 이유로 혼자 남겨져서 그들이 만든 자료를 밤새 복사한 적도 있지 않니? 아니 대체 누가 막내대접을 해줬다는 건지. 바로 옆 몇년간 앉아 있던 바로 윗기수 선배한테는 밥도 한번 얻어먹어 본 적이 없었어. 어..... 또 그러지마... 또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거야? 네가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라고 다 네가 자처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거야? 그게 아니야... 제발 그러지마. 네 잘못이 아니야. 그저 너는 그렇게 알아서 잘 하는 사람이라고 멋대로 착각한 그들의 잘못인거야. 너도 사람인데, 그렇게 책임감에 압사당하도록 놔둔 그들의 잘못인거야. 제발 너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그냥 너는 위로받아야 하는 사람인 거야.

"다 네가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그러는 거야. 속으로는 당연히 고맙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지."라고 맘에 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 그거 다 믿는거 아니지? 그냥 흘려들어. 가스라이팅이야. 속내는 이거라고!


 "(내 생각과 행동과 표현을 바꾸고 싶지는 않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닥치고 너의 역할을 해줘.)"


많은 관리자들은 모난 곳을 다듬어 가면서 둥글게 다듬으며 조직을 굴려가길 원하잖아. 태생부터 모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구태여 다듬이질을 하며 시간을 쓰고 싶어하지 않을 뿐이야. 연애용어로 말하면 소위 "다 잡은 물고기". 그렇게 모나지 않은 사람들을 활용해 모난 사람들을 대신 관리하고 싶어하는 거지. 너는 지금 도구로 쓰이고 있을 뿐이야. 그러니 제발 부탁이야. 너는 원래 그런사람, 또는 너는 원래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사람, 너는 원래 이런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제발 버려주길 바래.



너의 고충들, 그리고 너의 성과를 알아봐주기를 바라는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줘. 아주 당연한 거 아니겠니? 특히 칭찬을 갈구하며 살아왔던 너에게는 그 한마디가 너무나 간절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그리고 그들은 너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를 뿐이야. 리더십? 관리자? 그런 교육 백번 받으면 뭐해? 그들의 혜안이 부족해서 본인들뿐 아니라 주변인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건데 본인들의 오점은 가리고 단편적인 것만 바라보고 있는거야.  그리고 갑자기 생각났는데 너 그런일도 있지 않았어?


 'ㅇㅇ이는 내가 챙기지 않아도 충분히 강하고, 계속 그렇게 반복하시니 ㅇㅇ이가 미워지려고 하네요.'


이 간단한 논리를 왜 그들은 모르는 걸까? 원래 그런사람, 원래 그런 성격, 원래 그런 대접 해줘야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없어. 원래 잘하는 애라서 칭찬도 필요없다? 그냥 하는게 당연한거다? 이런것도 당연히 없어. 차장이니까 애들 챙기고 하는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된다고? 나참... 혼자 그런생각하지 말라니까... 지금 네가 총괄만 하고 있니? 지금 떠나간 과장대신 신입사원들 온 덕분에 과장일까지 떠맡고 있는 주제에 그렇게 여유가 넘치니? 너 그리고 이미 충분히 챙겨주고 있다고 생각해. 다만 이걸 그 누구도 알아주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고, 그게 너의 답답한 점이고. 후배들이 고마워는 하겠지, 근데 너는 그게 아니잖아.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은 존경이 아니라, 착한아이 컴플렉스에서 오는 어른들의 칭찬이 필요한 거잖아? 내가 모를줄 알았어?


그래.. 마음 쓰임의 본질은 이거지. 인정받고 싶은거잖아. 근데 칭찬과 인정이 아닌 질책과 확인만이 매번 돌아오는 이 상황. 그리고 챙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움받고 있는 것 같은 이 상황. 차장이니까. 선배니까. 언니니까. 아니 무엇보다 너는 당연히 챙겨야 하는 사람이니까. 사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자꾸 바라고 또 바라게 되니까... 왜 대체 너에게만 그런 역할을 강요하는 건지에 대해 이제는 다 놓아버리고 도망가고 싶어지는 이 상황..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뭔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이 거지같은 상황..


어떻게 해야할까? 너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내가, 너에게는 대체 무슨말을 해줘야 하는 것일까? 무턱대고 귀인을 내부로 끌고 들어와 그냥 참아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다고 해서 외부로 보내서 '너를 몰라주는 그 사람들이 멍청이들이다!' 라고 치부해버리고 적으로 돌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균형을 대체 어떻게 맞춰야 하는 것일까?


우선 네가 기억해야 할 것은,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것'. 그러니 어느 순간 네가 받고있는 이런 푸대접은 너라서 당연한 것이 아니라 부당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그렇다고 해서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해 분노하며 적극적으로 반항하라는 소리냐고? 아니. 그러지 말자. 굳이 그러지 말자. 명확하게 스스로 한계선을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정해서 그냥 거기까지만 하자. 무시할꺼는 무시하고 꼭 해야될 것은 최소한으로 하면 되는 거잖아. 너를 진정으로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이 편지를 보며 깨닫지 않았어? 어차피 해봤자 칭찬도 안해줄 사람들인거 이제 너도 알았지? 인정도 안해줄 사람들한테 굳이 그렇게 까지 열심히 할 필요가 있어? 그러다 진짜 너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땐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이렇게 다짐하지 않아도 아마 너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움직이고 있을껄?


남들 시선이 무슨 상관이냐고 자아실현, 자기만족 그게 삶의 목표라고 얘기하는 사람을 보며 네가 작아질 필요도 없어. 네가 열등해서 그런게 아니야. 착한아이 컴플렉스? 장녀병? 천사병? 모두 그냥 인정해. 굳이 고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너는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항상 갈구하고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인거니까. 그게 행복하다고 하면 거기에 네 인생을 맞춰서 사는게 당연한거니까. 너무 못났다고 죄책감갖지 않았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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