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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ohyun Choi Feb 02. 2017

보이는 것들, 혹은 보이지 않는 것들

visible or invisible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맨 처음,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 

누군가를 만날 때, 새 가방을 살 때, 

매일매일 집을 나서는 순간 거울을 볼 때에도. 


인간의 여러 감각 중 새로운 대상을 마주했을 때 시각적인 부분이 제일 먼저, 또 강하게 반응한다는 여러 이론들은 우리로 하여금 겉보기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브랜드를 만들거나 디자인을 한다 하면 대부분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것들을 만들겠지 생각하기 쉽지만, 하면 할수록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한 고민 없이 발산되는 표면의 껍데기는 생명력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든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시대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오래 보아야 보이는 것들에 대한 애착은 좀 미련스러워 보일 수 있겠으나 그래도 놓아버리면 안 될 것만 같다. 첫 만남의 강한 느낌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지만 켜켜이 쌓여가는 결들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 그 결들을 함께 만들기를 바라본다. 



저는 '속옷'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면접에서 만난 한 친구에게 물었다. 

"브랜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잠시 고민하더니 "저는 브랜드를 '옷'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는 대상 그 자체, 본원적 가치, 본질이며....... 껍데기여서는 안된다.'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난무하는 와중에 브랜드가 '옷'이라니, 이 사람 뻔한 정답을 놔두고 이상한 대답 하고서는 굿바이하게 되는 게 아닌가 염려가 되었다. 

긴장이 되는지 살짝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더니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많이 떨어서인지 일사천리로 대답을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대략 내용은 이렇다.

"대상의 본질이 중요하다, 핵심가치가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은 어떤 매개를 통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잖아요. '브랜드'라고 명명되는 그 자체가 이미 대상이 어떤 '옷'을 입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맨 몸으로 다닐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어떤 기업이나 제품, 서비스가 옷을 입고 있지 않다면 세상에 존재를 이야기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브랜드를 감히 '옷'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음.... 제가 옷을 바꾸어 입는다고 해서 저의 본질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잠깐 다르게 보일 수는 있지만요. 그러니까... 결국 밖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저라는 대상이 먼저 올바로 서야 하고, 그리고 저에게 잘 맞는 옷을 입어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염려는 잠시 가시고 궁금해졌다. 

"그러면, 00 씨 자신의 브랜드는 어떤 모습인지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

"아... 저요... 제가 브랜드를 '옷'이라고 표현했으니 저를 거기에 비유해볼게요. 저는 '속옷'과 같은 사람인 것 같아요. 대상의 날 모습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어떤 겉옷을 만나든지 잘 적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까요? 저는 화려한 겉옷은 아니지만 그래도 '속옷'의 장점을 잘 갖추고 있는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요즘 한참 고민하고 있는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름의 표현으로 풀어낸 것 같아 집중해서 들었다. 


이 친구 재미있다. 

착하고 성실해 보이는데 생각도 깊다. 엄청난 달변에 재빠른 피드백 역량을 갖춘 요즘의 단련된 스펙의 모습은 아니지만 오래 함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던 임원 분도 좋은 느낌을 받았나 보다. 


면접이 거의 끝나갈 무렵, 결론을 냈다. 그럼에도 보통은 시간을 두고 합격여부를 알려주는데 오늘은 좀 과감했다. 보이는 모습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조금 천천히 가도 오래갈 수 있도록


참 많은 물건들, 더 많은 정보들...

남아있는 것보다 휘발되는 것들이 더 많은 세상에,

'디자이너'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우리는 오늘도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 것을 만들 때나, 누군가의 브랜드를 인큐베이팅하면서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굳이 우리가 이걸 또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좀 덜어내면 안 되나요? 아예 없애면 안 될까요? 이거 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되나요?"

그러다가 궁합이 잘 맞는 파트너들을 만나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많이 급하신가요? 꼭 그렇게 빨리 가야 하나요? 어떤 분들이신지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심지어 이런 발칙한 이야기도 한다.

"대충 하다 접으실 거면 저희는 별로 매력을 못 느낍니다. 태교도 함께 해주셔야 하구요. 처음 태어났을 때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이 브랜드가 성장하는 과정에 인내심을 가지고 같이 키우실 의지가 없으시면 안돼요."

클라이언트와의 첫 인터뷰에서 거의 취조에 가까운 대화를 하다 보면 궁합이 맞을지 맞지 않을지 대략 느낌이 온다. 

디자인을 한다면서... 보이는 것을 멋지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의무이고, 드러나지 않는 것들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될 수 있을까?

'복세편살'해야 하는 시대라지만, 몇몇은 좀 불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한다.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기를.

보이지 않는 것에만 빠져 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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