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 내는 것
Be my B:akery @오월의 종 단풍나무점
시작하며
배를 채워주기도, 마음을 달래주기도, 때때로 만들다보면 무언가 해 냈다는 뿌듯함을 안겨주기도 하는 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니. 그것도 괜히 참 많이 좋아하는 오월의 종, 이름도 참 예쁜 단풍나무점에서 한다니. 참 숨가빴던 한 주 끝에 마주하는 토요일 아침이지만 새벽부터 눈이 번쩍 떠졌다. 마치 소풍가던 날 아침처럼.
입추가 지나서인지 아침 기온도 하늘도 어제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가을스러워졌다.
주말 아침 일찍의 한남동의 골목은 가끔 찾던 금요일 저녁과는 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낯익은 가게들을 지나 도착한 이 곳. 골목 어귀에서부터 빵 굽는 냄새가 난다. 금방 빵이 떨어져 아쉬웠던, 겨울 슈톨렌은 예약을 할 수 있으니 그 때를 기다리던 그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반갑게 맞이하는 비마이비 스탭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산돌에 다니시는 분이 선물로 들고 온 뱃지를 나누어주신다. 빵이다. 딱이다.
일찍 도착한 멤버들을 위해 오늘의 기획자 미경님이 집에서 준비해 온 콜드브루가 참 맛있다.
하나 둘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고 저마치에서 한참 오늘의 빵을 준비하던 이 곳의 주인장, 베이커 정웅 대표님이 무리 속에 자리 잡으셨다.
"여기는 오월의종입니다. 여러분."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밝고 온화하며 당당한 표정으로 명함을 쭉 돌리시는 대표님의 모습에서 베이커라기보다 어떤 ‘선수’의 느낌이 난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로 첫 대화를 시작하셨다. “오월의 종, 이름이 어떠세요? 제가 대학시절 굉장히 좋아하던 First of May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참 말이 예쁜거에요. 듣기에도 얼마나 좋던지. 제 것을 준비하면서 ‘오월’이라는 이름을 꼭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월’만 쓰자니 너무 심심한 느낌도 들고, 그러다 ‘오월의 종’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지요. 빵과는 전혀 관련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에 의존한 그 느낌에 따라 만든 이름이에요. ㅎㅎㅎ. 빵집 같지는 않지만 좋은 느낌의 이름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참 예쁜 이름이다. 특히나 오월에 태어난 나로서는 더 애착이 가는 이름이다. ‘오월의 종’이라니, 그 느낌적인 느낌이 얼마나 선하고 서정적이며 수줍어 보이는가. 그러면서도 특히나 청명한 소리를 낼 것만 같다.
무기재료공학을 전공하고 시멘트회사 연구직으로 지원해 들어갔으나 영업직 발령을 받고서는, 거칠고 날것의 세계에 들어선 것 같아 초기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곧 적응하고 꽤 성과를 잘 내고 있던 그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일을 해도 늘 내 것이 아니고, 해야 하니 하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도 똑같은 일을 할 것 같았다. 과연 내가 이 일을 좋아 하기나 하는 걸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묻기를 반복하다 결국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행사하고 댓가를 받고 주목받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일의 시작과 끝을 모두 볼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 사실, 사표를 내기도 쉽지 않았다. 당시 조직의 수장이 참으로 아끼던 동료라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 결국 독립하게 된다.
무엇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일까 고민하던 중 동네를 지나치며 만났던 빵집 생각이 났다. 왜 갑자기 빵이었을까. 이야기를 쭉 듣다보니 정웅 대표는 ‘오랜 고민, 순간의 기억, 직관적 선택, 자기 선택에 대한 믿음, 몰입과 진득함’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건데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모두 한참을 웃었다. “사실 빵을 별로 안좋아해요. 누가 사 주면 먹지요. 그 돈으로 맥주를 사 먹는게 더 좋아요. 술 너무 좋아하거든요. ㅎㅎㅎ” 빵에 대한 어떤 스토리도 없는 사람이 빵을 만든다고 하니 주변에서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며 멋적게 웃으신다.
빵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빵집을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데,
“저는 빵을 먹는 것보다, 빵이 트레이에 올라가 있는 매대보다, 사실 만들어지는 과정이 더 궁금했고 여전히 그 시간이 너무 좋아요.
그런데, 지금은요... 빵이 점점 더 좋아진답니다.”
라고 이야기한다.
모두가 이야기에 집중해 있는 순간 스탭이 커다란 트레이 위에 갓 나온 식빵을 담아 진열대에 올려놓는다. 바쁜 모습이다. “잠시 조용히 집중해서 빵의 소리를 좀 들어주세요.”라는 비마이비 운영진의 이야기에 모두 잠시 숨을 죽인다. ‘타닥, 타다닥, 탁...’... 빵의 소리라니... 갓 구워져 나온 식빵에서 크러스트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신기하다.
“만든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아침의 소리에요. 오븐에서 갓 나와 외부의 차가운 온도, 다른 습도를 만나 발생하는 크랙의 소리에요. 빵을 살 때는 들을 수 없는 소리지요.” 아침의 소리, 다른 온습도를 만나 만드는 순간의 소리, 참 매력적이다.
“프랜차이즈 빵집과 동네빵집에 대한 비교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이 문제를 자본의 논리로만 보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빵은 무조건 맛있어야 해요. 만약, 30년 된 동네 빵집이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때문에 망했다면 그건 맛이 없어서 그랬을 수 있어요. 동네 빵집의 역할은 작더라도 손으로 만들어 각자 그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빵은 맛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른 무엇으로도 설명하기가 애매해요. 큰 조직이 할 수 있는 일과, 작은 곳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다르고 그래서 저는 균일한 퀄리티가 보장되는 프랜차이즈 빵집이 많이 생겨도 괜찮다는 입장이에요.
조심스럽게, 어쩌면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조용히 시작하고자 일산에서 열었던 가게가 망했지만 좋은 트레이닝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태원에 오월의 종을 준비하는데 주변에서 근처에 Passion5가 있는데 괜찮겠냐는 우려를 많이 표했다는데, 이런 걱정에 정웅대표는 살짝 당황했었다고 한다. 남의 이야기, 밖의 이슈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고 특히나 무엇을 할 때에는 시선분산을 잘 하지 않고 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성격이라 좀 별나다는 이야기는 듣지만 그렇기 때문에 ‘집중’할 수 있다고.
“주변에 대한 관심이 크다보면, 알게 모르게 따라하게 되요. 많이 보는 것의 함정이지요.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그만큼 더 집중할 수 있고, 내가 만들고 싶은 것, 내가 쓰고 싶은 재료에 대해 더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간섭받지 않고 내 빵을 만들고 싶었던 의지, 주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중요하며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보자고 마음 먹었다는 그는 “결국 순서의 문제에요.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이냐라는. 한 번 망해보니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이 보이더라구요.”
“빵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버렸어요. 원하는 빵이 안 나오면 화가 나더라구요. 오픈 시간도 늦췄죠. 멀쩡한 빵을 버린다고 주변에서 이상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빵을 손님들에게 내보낼 수 없다는 그는 그렇게 한참을 하다보니,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니 원하는 빵이 조금씩 나오더라 이야기한다.
“지금 많이 알려진 무화과 호밀빵은 초기에는 엄청난 혹평을 받았어요. 10개를 만들면 겨우 두 개 팔리곤 했죠. 남은 빵을 어쩌나 하며 쌓아놨다가 트리를 만들게 되고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요. 그렇게 3년을 했습니다.” 제대로 해 내는 데, 내 것을 알리는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구나라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는 그는 어느 순간,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두 시간만에 빵이 다 나가는 순간을 만났다고 한다. 어떻게 성공했는지, 얼마만에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되었는지 묻는 주변의 궁금증에, 미안하게도 ‘정말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 그렇게 되었다’라고 답을 건넨다.
갑자기 변한, 너무 빨리 빵이 팔리고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많이 만들면 품질이 떨어지는데... 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국 많이 만들지 않기로, 딱 정한 만큼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정했죠. 정하면 뒤도 안 돌아봐요.”
단호한 어투의 그는 언젠가 한 번 지방에서 오신 노 부부에게 빵이 없다고 지팡이로 맞은 적도 있다며 씩 웃는다. “내가 왜 빵을 시작했고 그 때의 초심이 무엇이었는지 늘 생각해요. 그 때를 잊지 않는 것이 너무 중요하거든요. 빵을 만들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깨닫기도 해요. 결국 내가 좀 편안해야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이라도 내밀 수 있겠구나라는 다짐도 하구요.” 이야기 하는 내내 그는 ‘순서에 대한 것,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번 반복했다.
“동료들에게 손님들을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좀 언짢게 들리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온 힘을 다해 빵을 신경 써서 만들었다면, 자기 빵에 신념이 있다면 분명 고객들은 알아줄꺼라고 저희는 믿습니다. 오월의 종 직원들은 100% 모두 BAKER에요. 응대하는 서비스가 조금 서툴 수 있지만, 빵에 대한 질문에는 그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답니다.” BAKER가 손님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빵을 제대로 만드는 일이라는,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 그렇지만 참 어려운 이야기.
오월의 종은 일년 내내 이벤트가 없다. 유리창에 어떤 포스터가 붙는 일도 없다고 한다. 묵묵히 오늘을 내일처럼, 어제를 오늘처럼, 그렇게 매일의 빵을 만들고 있다.
시식도 없고 서비스도 주지 않는 이 곳에 ‘박하다, 얄밉다’라는 손님들의 불평도 있다는데, “저는 빵을 만들 때 자식처럼 생각하고 만들어요. 첫 딸 데려간다고 둘째 딸 덤으로 주는 일은 못하겠더라구요.”라며, 이상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래도 열심히 만든 빵에 대해 좋은 댓가를 받고 싶다고 답한다.
이 곳의 빵 가격은 좀 이상하다. 너무 싸기도 하고 생각보다 비싸기도 하고, 참으로 들쭉날쭉하다. 트레이 한 가득 담고서 계산을 할 때 뭔가 미안해지기도 하고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다. “빵 가격이요? 제 마음대로 가격을 매겨요. 돈보다 빵을 먼저 생각하는 순간, 빵에 집중하는 경험이었으면 좋겠어요.”
“빵을 만들면서 얻게 된 것은 ‘솔직함’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에요. 빵은 만든 사람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태어나요. 손님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만든 사람은 알거든요.
이 아이가 실수 없이 완벽한 아이인지, 어느 부분에서 아쉬운 아이인지. 이 때 갈등하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내 놓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요. 가끔 타협을 했다가 무조건 후회해요.
그럴때마다 솔직해야지 솔직해야지 다짐합니다.”
정웅대표는 BAKER들에게 ‘실수는 괜찮지만 그것이 주방에서 나와 고객들과 만나게 해서는 안된다’라고 늘 당부한다. 솔직하다보니 저절로 ‘담담함’도 생겼다는데. 그것은 잘한 것에 대해서도 못한 것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대처하는 안정된 상태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진열했다가 이상하면 트레이를 확 빼버려요. 욕 먹기도 하지만, 그만큼 믿어주시는 분들도 조금씩 늘어납니다. 빵을 만들면서 어떤 기준으로, 어떤 기본으로 만들 것인가 늘 생각하고 그 약속을 지켜가려고 노력합니다.”
시작하기 전 인사를 나누면서 참여하신 분 중 한 분이 ‘글루텐’에 대해 궁금하다 했었다. 이것이 기억나셨나보다. “서른 한 살에 빵 만드는 학원에 들어가 참 많은 실험을 하고 공부를 했어요. 밀가루 전분과 물이 만나 형성되는 글루텐은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요, 사람마다 위의 상태나 소화력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게 되고 이것을 통상적으로 나쁘다 좋다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의 체질이 글루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면 그럼 진짜 조심하셔야 되요.”
오월의 종에서 만드는 빵은 우리가 말하는 소위 ‘건강빵’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그런데 매장의 어느 곳에도 ‘건강’이라는 단어가 써 있지 않다. “저희 빵을 드시고 소화가 잘 되신다면, 그 분이 소화력이 좋으신거에요. 당뇨이신 분들도 괜찮다 하시는데 이건 설탕이 거의 안들어가니까 그렇기는 한데... 그렇다고 저희가 특별히 ‘건강한 빵’을 표방하며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아요. 뭐든 적당히 먹어야 하고, 그래야 건강하지 않겠어요?”
“처음 Be my B를 만나고 굉장히 반가웠어요. 제가 ‘B’를 좋아해요. ㅎㅎㅎ. 보통 저를 표현할 때 ‘B급이에요, 후져요’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거든요. 음...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께요. 저희는 밀가루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곰표밀가루를, 그리고 어떤 재료는 중국산을 쓰기도 해요. 수입이나 특수 밀가루를 안쓰는 이유는요, 우선 비싸서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두번째 이유가 더 중요해요. 도화지같은 밀가루를 쓰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데 그러려면 고성능이 아니라 늘 같은 품질, 균일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밀가루가 필요합니다.” 그는 재료보다 ‘공정’에서 더 치밀한 기준으로 더 많이 집중한다고 이야기한다.
앞으로 다가오는, 마주할 시간에도 빵을 계속 만들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고 말하는 그는 ‘우수한 빵’을 만든다고 자랑하고 싶지 않다는데.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늘 베스트를 원하지만 스스로의 엄격한 기준으로 보면 80%인 것 같다고 말한다. 가장 기분 좋은 이야기는 ‘빵 먹을 만 한데!’라는 평가라는데... 오월의 종이라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장인이 만든 빵집’의 대장은 조금 특이하긴 하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늘 그렇게 빵을 만들고 싶고 앞으로도 규모의 확장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유난히 슈톨렌을 좋아하는 나는, 특히 이 곳의 슈톨렌을 가장 사랑한다. 혼자만 좋은 걸 몰래 숨겨놓은 것 같아 작년 크리스마스때는 서른개쯤 예약 구매해서 동료들과,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슈톨렌은 독일 빵이에요. 처음 저희가 만든 슈톨렌은 판매용이 아니었어요. 행사 같은 걸 안하니까, 뭔가 시즌에 잘 맞는 빵을 만들어서 주변 분들과 나누고 싶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2월 말일에 마치 김장하듯이 속재료를 만들어 저장고에 넣어 놓고 1년을 잊고 있어요. 그러다가 다시 11월 말이 되면 테스트용으로 꺼내어 향을 맡으면서 1년이 벌써 지났구나 생각합니다. 그렇게 오래동안 만들다가 판매를 시작했지요. 작년에는 3000개를 만들었는데요, 슈톨렌의 개수는 이미 1년 전에 정해진다고 보셔야 해요. 재료를 1년 전에 준비해야 하니까요. 만드는 공정도 꼬박 이틀이 걸리니 만들기도 까다롭지만 ‘이제 슈톨렌 만들 때가 되었네’라며 고객들과 스탭들 모두 ‘시간성’에 대해 느끼게 되니 아마 계속 만들 것 같아요.”
온갖 재료가 들어있는 딱딱하고 요상하게 생긴 빵, 하얀 눈을 뒤덮은 것 처럼 슈가파우더에 쌓여있는 버터향과 럼향이 솔솔 나는 그것, 올 겨울에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꿈이 무엇이냐 묻는 청중의 질문에
“전 오늘 아침이 무척 행복해요.
빵도 만들지만 이렇게 여러분과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잖아요.
10년 뒤에도 똑같았으면 좋겠어요. 오늘같이요.”
라며 참 소박한 것 같지만 어찌 보면 무척 어려울 수 있는 답을 건넨다. 누군가 “10년 뒤에 저희 또 이렇게 모이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라고 화답한다.
가장 좋아하는 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안 팔리는 빵이라고 이야기한다. “변하지 않는 뭐 하나를 꼭 갖고 싶어요. 그것이 고집을 피울 수 있는 이유기도 하구요. 팔리지 않는 빵을 구지 만들어야 하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 그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해 봐야 한다고 믿어요.”
그 날 안 팔리는 빵은 모두 분쇄해서 폐기하는데, 기부하면 안되냐는 의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긴 한데요, 기부를 받으시는 분들은 대부분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나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는 친구들이에요. 육체가 성하지 않은데 하루 지난 바게트를 드린다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어린 친구들에게는 빵보다 더 필요한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걸 줘야지 내가 ‘기부’라는 행위에 의미를 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가끔 어르신들을 위한 빵은 따로 만들어서 드리기도 한답니다.” 참 분명하다.
튀긴 찹쌀빵도 좋아한다는 그에게 왜 그것은 만들지 않는지 물었더니 ‘내가 만드는 것보다 다른 집 빵이 더 맛있으면, 그 빵은 안 만든다’며 잘 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는다는 명쾌한 기준을 시원하게 이야기한다. 본인은 이것을 ‘안전빵주의’라고 표현한다.
유기농 밀이나 프랑스 밀가루, 우리밀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에 대한 질문에 “항상 테스트를 해요. 밀가루 뿐만 아니라 많은 재료들에 대해서요. 특히 밀가루는 균일하게 빵化 할 수 있는 항상성이 좋은 것을 선택해요. 우리밀도 좋지만 단백질 함량 등 안정성이 약하더라구요. 프랑스 밀가루로 바게트 만들면 정말 맛있는데요, 물이 문제에요. 그 궁합이 맞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죠. 프랑스 물을 어떻게 구할 수가 없더라구요.”라고 답한다.
빵을 먹을 때는 다른 것과 섞어 먹지 않고 빵만 먹는다는 그는 빵 이름표에 주재료를 큼직하게 적는데, 어떤 재료로 만들어진 빵인지에 대해 확인하고 먹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란다.
호밀이 들어갔으면 호밀의 특성이 잘 드러나야 하고, 재료의 특징에 따라 공정에서 그 색깔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 BAKER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다른 재료로 만들었는데 같은 빵이 나오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냐며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귀한 재료 100가지로 좋은 빵을 만드는 것은 너무 어렵지만, 내가 만들려고 하는 것을 명확히 정하고 거꾸로 그에 필요한 재료를 짚어가면 오히려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재료의 함량, 비율의 컨트롤이 중요하며 재료가 후져서 못 만드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에 비단 빵만의 이야기는 아니겠다 싶다.
“맛 없는 빵을 365일 똑같이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빵을 잘 만드는 사람이에요. ‘일정한 빵’을 만들기가 참 어렵거든요. 어제의 바게트와 오늘의 바게트는 똑같아야 합니다. 그걸 지키려고 노력해요.”
채용 면접을 볼 때 레쥬메를 심각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대표 면접을 두시간 가량, 팀장 면접을 한시간 가량 진행하는데 결국 ‘함께 우리 빵을 잘 만들 수 있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고, 또 각자의 꿈을 발현하려면’ 이야기를 오래 나누는 방법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정식으로 제빵을 공부하지 않은 멤버들도 있지만 모두 잘 하고 있다. 빵을 좋아하는지(정웅 대표는 좋아하지 않고서도 시작했으면서^^), 365일의 일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다. 먹는것과 만드는 것은 철저히 다르므로 꼼꼼하게 묻는다. 함께 일을 시작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어떤 아이템도 상관 없는 ‘사업기획서’를 받고, 정대표가 보충을 한 다음 이들이 독립할 때 다시 내어준다고 한다. 인생의 목표가 오월의 종 직원이 아님을 늘 이야기하고 자기 이야기를 찾아 나가는 친구들을 대견해 하는, 그리고 잘 버텼으면 늘 응원하는 이 리더가 참 멋있다.
제품에 대한 영감은 보통 어디서 얻는가에 대해 큰 기업 빵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이 물었다. “어디서 별다르게 만나지 않아요. 빵을 만들다가, 반죽하다가도 분할하다가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죠. 전 정말 빵 만들 때 아무 생각도 안하거든요. 오직 빵 생각만 할 뿐이에요. 재료 테스팅 할 때에도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는데요, 보통 신제품이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6개월 이상 테스트 해 보고 이제 올려도 되겠다 싶으면 매대에 올려서 또 6개월 이상을 무조건 시도해봐요. 아무도 사 가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도 버텨봐요. 그래야 진짜 반응을 알게 되고, 만드는 공정의 안정성도 찾을 수 있죠. 가끔은 1년 아니라 그 이상이 걸리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정해진 빵만 파는 것, 다 팔리면 일찍 문 닫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냐는, 어찌보면 늦게 와도 사고 싶은 손님의 마음으로 물은 청중의 질문에 “동네 빵집을 유지하는 힘은 무조건 빵의 품질이에요. 생간과 공정에 대한 리미티드를 엄격하게 가지고 있지 않으면 지속하기 힘들어요. 만드는 사람이 편안한 상태에서 만들어야 편안한 빵이 나옵니다. 먹고 살만은 해요. 저는 순대국과 소주 한 잔 너무 좋아하거든요, 제가 빵을 만드는 이유는 제가 열심히 만든 빵으로 돈 벌어서 제가 먹고 싶은 것을 먹기 위해서에요. 항상성에 대한, 유지하고 싶은 상태에 대한 욕심이 있을 뿐 더 벌어야 겠다는 욕심은 크지 않습니다.”라고 답하는 표정에 정말 기분 좋은 웃음이 묻어 있다.
마지막 멘트가 더 압권이다.
“여러분, 늘 행복하셔야 해요!”
마치며;
매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므로 오픈 시간 전에 이 곳에 들어와 있다는 기쁨에,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오픈 시간에 맞춰 트레이를 들고 줄을 섰다. 집에 있는 입들도 입이거니와 얼마 전 출산을 한 빵순이 동생이 생각나 하나 가득 넘치게 담았다. 과욕을 누르느라 고생했다. 정웅대표의 딸래미들이 하나같이 자태를 뽐내며 예쁘게 자리하고 있었다. 계산대 가까이에 놓여진 책장에는 디자인이음에서 만드는 Bear 매거진과 책들이 있다. 친구 부부가 만드는 책들인데 이 공간에 있으니 더 반갑다.
돌아오는 길 치즈플로에 들러 빵과 함께 할 신선한 아이들을 몇 개 골라 집으로 왔다. 발걸음이 춤 추고 있는 느낌이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걸까.
브랜드 살롱 Be my B를 소개하는 글 말미에 적혀져 있는 문구이다. 오늘이 특히 더 그랬다. 설렘과 가벼운 기분 좋음으로 문을 열었다가 울컥하기도 감동받기도, 배시시 웃기도 했다. 묵직한 울림이 있는 ‘무엇을 해 내고 있는 단단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참 감사했고, 함께 모여 이 공기를 향유하고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빵은 식힘망에 얹혀 놓고, 동생네 줄 빵은 소분하고, 몇개는 아이들과 바로 먹었다. 점심이 조금 지나 오늘의 귀한 경험을 주신 정웅대표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몇 장의 사진을 보내드렸다. “아이들이 여럿이라 푸짐하게 가지고 와서 따뜻한 빵은 잠시 식히고 다른 빵들로 즐거운 테이블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음에 뵈면 더 반갑게 인사드릴께요!”라는 인사에 “ㅎㅎㅎㅎ 빵 너무 많아요 ...조금만 드세요^^ 감사합니다^^”라는 회신. 참으로 초지일관 담백하신 오월의 종 대표님.
곧 다시 봬러 갈께요!
P.S. 오늘의 주제를 준비한 미경님은 회사 동료이다. Be my B로 주말에 가끔 대표님을 만나는게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싶은데, 우리 이쁜 디자이너 미경님은 늘 반갑게 맞아준다. 얼마 전 Bakery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도와주고 싶고 막 응원해 주고 싶은데 참느라 혼났다. 발표자와 참석자 모두를 꼼꼼히 배려하고 세밀하게 준비해 오늘 진행도 멋지게 해 내는 모습을 보니 무슨 딸래미 발표회에 와 있는 엄마 기분이다.
오늘, 오월의 종에서 고민했던 주제들 중 '하고 싶은 일, 자기 일, 각자의 꿈과 성장,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개인으로서도, 조직을 운영해야 하는 리더의 입장에서도 참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동료의 '관심사', '직장에서의 일 말고도 몰입할 수 있는 어떤 일, 그리고 에너지', '해 내는 힘'을 응원한다. 내게도 좋은 기운을 전해 준 이 친구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