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 도쿄여자 #04
도쿄 여자, 김민정 작가님!
지금도 믿을 수 없는 몇 가지 사실들이 있어요. 무척 좋아했던 가수 신해철이 죽었다는 것,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보랏빛 향기를 부르던 강수지 언니가 50대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태권도 춤을 추던 서태지가 아빠가 되었다는 그런 사실들 말이에요. 요즘 한국에선 TV 채널마다 90년대의 추억을 소환하는 음악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과거를 소환한다는 건 솔직히 한물갔다는 걸 의미하지 않나요? 네 그래요. 한물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제 우린 변명의 여지없이 중년에 접어들었음을 인정해야겠죠. 아니라고 발뺌할 생각은 없습니다. 실제로 90년대에 저도 청춘을 보낸 사람이니까요. 누구나 인생에서 빛나던 순간이 있는 거라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어요. 돌이켜 보면 제가 가장 빛나던 순간은 대부분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남아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곳이 어디냐고요? 제가 유년시절을 보낸 서울 변두리의 동네, 응답하라 1988의 무대였던 쌍문동을 지척에 둔 서울이면서도 서울 같지 않은 그런 동네. 네 맞습니다. 저는 이름처럼 서울에서 태어난 진짜 서울여자가 맞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의 대부분을 그 동네, 그 골목, 그 집에서 보낸 제가 기억하는 서울 변두리의 모습, 작가님도 궁금하시겠죠? 지금부터 저는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때는 무엇보다 시간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는 하교 후 동네 아이들과 우르르 모여 뱀을 잡겠노라며 산으로 올라가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겠지요. 잠깐 그 동네에 대해 설명하자면 수유동(수유리라는 어감이 싫어 굳이 수유동이라고 힘주어 말하곤 했어요)은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친화적인 동네였어요. 숨바꼭질을 할 땐 산속을 뛰어다니다 묘지 뒤에 숨곤 했던 기억이 있는데, 정말 서울답지 않은 그런 동네였어요. 시간이 많은 당시의 아이들은(학원을 가지 않아서겠죠?) 날마다 골목에 모여 새로운 놀이를 개발해 어울려 놀곤 했어요. 동네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네 집과 나의 집을 비교할 일이 별로 없었어요. 물론 골목 끝자락에는 벽돌색 지붕을 얹은 2층 양옥집이 한 채씩 자리하고 있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당시의 부자들은 양심이라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굳이 말하자면 부자인 걸 미안해한다고 해야 하나요? 아무튼 가진 걸 내세우기 보다는 가능하면 나누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모습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뻔뻔한 사람들이 되어버린 걸까요?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그곳에 가면 제가 찾고 싶은 그 모습들을 찾을 수 있을까요?
사실 1년 전, 그곳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스무 살 무렵 그 동네를 떠난 이후로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던 동네 수유리. 서울 끄트머리에 자리한 그 동네는 제게 추억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지만, 쉽게 뒤돌아 볼 수 없는 아픈 공간이기도 하거든요. 일찍 한국을 떠나 도쿄로 간 작가님은 아마도 잘 모르실 거예요. 대한민국의 IMF 구제 금융요청, 그러니까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IMF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게 된 그 기억 말이죠. 네 맞아요. 당시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무너지는 가장의 등을 보며 자란 세대랍니다. 제 아버지도 그때 부도를 겪었어요. 그리고 우리 식구는 수유동 집을 떠나야 했죠. 아버지가 손수 벽돌을 고르며 한 층씩 쌓아올린 그 집, 썩 잘 지은 집은 아니었지만 작은 마당이 있고 대추나무가 있던 그 집, 겨울이면 장독대 위로 소복이 눈이 쌓이던 집, 무슨 일 때문인지 장독대 옥상에 앉아 울고 있던 엄마의 모습들...네 그래요. 우리는 그 집을 떠나 아주 멀리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단 한 번도 그 동네를 떠올리지 않았어요. 유년 시절을 다 보냈고, 사춘기를 지나왔으며 대학 때 연애하던 남자친구가 전봇대 앞을 서성이던 그 집말이에요. 잊고 있던 집, 잊고자 했던 집. 그런데 거의 20년 만에 찾아간 그 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 동네는 거의 변한 게 없었어요. 골목이 너무 좁고 작은 세대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조건이 충분하지 않아서겠죠. 다행히 그 집도 거의 그대로였어요. 집주인이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인걸까요? 페인트를 덧칠한 철대문도 그대로였고, 야트막한 담도 남아있었어요. 유일하게 달라진 게 있다면 전에 없던 담쟁이덩굴이 퍼져 건물의 한쪽 벽을 무섭게 에워싸고 있다는 것 뿐!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말이죠. 그대로인 게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답니다. 저는 까치발을 세우고 담벼락 너머의 마당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어요.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우리 집이 이렇게 작았나. 마당이 저렇게 좁았나, 아 그러고 보니 나무 한그루 없고, 집이 참 낡.았.구.나! 그냥 모든 것이 작고 좁고 허름하게 느껴졌어요. 네 그래요. 집은 그대로인데 아마도 제가 변한 거겠죠?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돈되고 위생적인 신도시의 아파트, 서로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없게 철저하게 프라이버시가 존중된 세대별 공간. 그리고 철저히 가려진 공간에 걸맞게 차갑거나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사람들. 대체 공간이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이런 말을 하면 너무 촌스러운 것 같지만 그때의 동네와 그곳에 어울려 살던 사람들이 훨씬 인간답게 살았다는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그날, 서울을 떠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90년대의 노래를 찾아 들었던 것 같아요.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 아! 015B도 있었죠. <아주 오래된 연인들>까지. 지금은 사라졌지만 가슴은 기억하는 그 노래들은 앞으로도 저를 그 동네(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이야기 속으로 데려다 주겠죠? 진부한 말이지만 과거는 언제나 옳은 것 같아요. 추억이 항상 옳은 것처럼 말이에요.
서울 여자, 김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