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2006). 구해줘. 밝은세상.
작가가 소설의 본질이 뭔지를 알고 있다. 이럴 때 소설가 기욤 뮈소는 영악하다고 하면 싫어할까? 똑똑하다고 하면 뭔가 부족한 것 같다. 이 작가를 표현하는데. 본질을 꿰뚫고 있으니, 약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소설이란 뭘까? 구라다. 그럼 소설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그럴까? 소설이 논픽션일까? 아니다. 소설은 논픽션이 아니다. 분명히 소설은 구라인데, 어느 경계를 넘어서면 구라가 아닌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왜 그렇지?
작가가 했다는 말이다. 어디서 이 말을 했는지 잘 모르지만, 이 말 때문에 작가가 영악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나는 당신이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보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끼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한다. 이것 같다. 구라가 경계를 넘어서서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지점 말이다. 이러려고 눈 침침한데 소설을 읽는 것 아니겠는가? 400페이지가 넘는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구라지만 구라라는 느낌이 계속 들면 누가 책을 읽겠는가?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그럼 그렇지. 로맨스 소설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듣는 로맨스가 싫어하겠지? 세상 모든 게 남녀가 뒤엉키면서 시작되었다면 할 말 없다. 그것도 본질 같다. 소설 속 본질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게 읽다 보니 흡입력이 상당하다. 어, 이 작가 봐라! 결말도 딱 읽다가 빨려 들어간 독자들이 필히 그렇게 끝났으면 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끝냈다. 작가의 의도에 말려들어갔으니 완전히 인정한다. 매력적이다.
읽다가 이게 가능한지라고 묻지 마시라. 소설은 기본적으로 사실이 아니니까. 그레이스 코스텔로는 저승사자이다. 전직 형사. 죽기 전 마약범을 잡으러 언더커버를 했다가 살해당하는 역할. 그녀가 샘이 사랑에 빠진 줄리에트를 데리러 지상에 왔다. 줄리에트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여성인데, 글쎄 이 여자가 비행기를 탔다가 내린다.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뉴욕에 머무르면서 일이 꼬인다. 남들은 다 죽는데, 죽었는데 이 여자만 죽지 않으니 저승에선 저승사자를 급파한 것이다. 빨리 이 여자를 불러들여야 하는데.
뉴욕 빈민가에서 유일하게 백인이면서 남들 다 빠지는 마약에 빠지지 않고 겨우 주류 사회에 편입한 샘은 전도유망한 의사지만, 자기 아내 페데리카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가슴 한편엔 뻥 뚫린 감성을 지닌 남성이다. 아내 페데리카는 콜롬비아를 벗어나 뉴욕에 정착한 부모의 딸. 그녀는 마약으로 중독된 엄마를 위해 위험한 마약 딜러로 힘든 빈민가 생활을 감내해야 한다. 그의 유일한 탈출구 남편 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이게 말이다. 약간 억지스럽지만, 그냥 봐줄 만하다. 그래야 줄리에트를 만나야 하니까. 남녀 간의 사랑이 그렇게 대단한가? 그냥 침대에서 구르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유능한 형사들인 그레이스 코스텔로와 마크 루텔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그렇다고 불륜 관계도 아니다. 마크 루텔리는 동료이자 마음속 연인 그레이스 코스텔로가 살해당하자,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거의 패가망신하기 직전에 죽은 그녀가 죽은 채로 돌아다니는 것을 믿지 못하다 샘을 통해 그녀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그레이스가 졸지에 살해당하자 그녀의 유일한 딸인 조디 또한 마약에 빠진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그녀를 두고 엄마는 저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비슷한 처지에서 탈출한 샘에게 조디를 부탁하고 자기가 왔던 저세상으로 떠나려 한다. 언더커버하다 죽는데, 자기 딸을 구하려다 또 죽는다. 총 맞고. 믿거나 말거나.
정리를 하자면, 저승사자 그레이스는 줄리에트를 데려가야 하는데, 샘이 임신한 연인이자 아내를 대신해서 죽겠다고 하자 샘을 데려갈 시간을 알려준다. 오후 1시. 아무리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 죽으려 해도 죽는다는 게 그리 쉬울까? 번민하는 샘은 그의 친구 셰이크를 찾아간다. 그는 신부이면서 샘이 누군가를 죽이게 되는 현장에도 있던 인물이다. 거기서 놀라운 일을 알게 된다. 자기가 사고로 누군가를 죽였는데 그게 바로 그레이스였다는. 마약 세계에 빠져들어가는 페데리카를 구하려다 벌어진 일.
그럼 틀림없이 그레이스는 자기가 아닌 줄리에트를 12:30분에 데려갈 것이라고 확신하며, 샘이 줄리에트를 찾아 나서는데. 가관이다. 시간이 정말 짹깍짹깍 하고 줄어든다. 소설 속에서 말이다. 줄어드는 시간 속에서 주인공 샘이 부딪히는 현실이 숨 막힐 정도다. 무슨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전개도 빠르고. 누군가 2명은 반드시 저세상으로 가야 하는데 말이다. 시간은 결국 12:30분에 도달하고, 죽기로 예정된 장소인 케이블카 안에서 두 명이 탄 채로 케이블카가 철탑에 부딪쳐 떨어진다. 그럼 누가 죽었을까?
24시간 넘게 지속된 강풍과 폭설이 케이블카를 날려버려 결국 두 명을 죽게 만든 사건을 뒤로하고 현실로 돌아온 샘에게 그레이스의 편지가 전달된다. 자기가 왜 저승사자로 선택된 이유도 모른 체 누군가를 저승으로 데려가려 온 그레이스는 자기를 죽인 샘을 통해 자기 분신인 조디를 샘이 돌봐주기를 부탁하게 된 인연들이 모두 자기를 보낸 그들이 어쩌면 마지막으로 선택권을 그레이스에 준 것이라고 믿으면서, 편지를 끝낸다. "이런 결정을 내릴 권리가 과연 나에게 있을까요? 난 전혀, 아무것도 몰라요.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결국 그것 역시 예정된 운영일 테니까."
소설이 말이다. 작가가 말이다. 다 알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이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어떻게 하면 더 큰 행복감을 줄 수 있는지, 알고 있기에 그렇게 소설을 끝냈다. 이것 같다. 구라가 어떤 경계를 넘어서면 소설로 불릴 수 있는지, 작가는 이것을 알려주려 소설을 썼다고 그렇게 믿고 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