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하루키
각오는 했지만 육아는 정말이지 다른 차원의 고행이었다. 아들이 태어나자 내 신체와 정신이 모두 이 작은 인간을 위해서만 기능하는 것 같았다. 작은 인간을 먹이고 씻기고 똥오줌을 치우고 안은 채로 밥과 빨래와 청소를 하고 (가끔은 볼일도 보고!) 그러면서 동시에 기저귀와 분유와 물티슈와 기타 등등의 육아템을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주는 데 내 모든 기력을 다 썼다. 기진맥진이 기본 컨디션이었다.
어째서 육아는 더럽게 고생스럽고 피눈물 나게 힘든 일이라고 말해주는 이가 여태 없었을까. 문명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한 모종의 엠바고 같은 거겠지. 아니면 육아에 뒤따르는 희생을 모성과 부성으로 승화시키려 하는 사회 분위기상 갖은 고생담은 경험자들끼리 쉬쉬하며 나누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증거로 내가 출산하자 주위의 육아 선배들이 아련한 눈빛으로 "많이...힘들지?"하며 지옥 구경이라도 하고 온 듯한 경험담을 들려줬으니까. 그들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마지막에는 꼭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시간은 가더라."
이지수 < 아무튼, 하루키> p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