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 반가워
널 잊으려 애썼던 2년 3개월
브런치에 다시 글을 쓴 것이 얼마만인지 따져보니 정확히 2년 3개월 만이다. 그동안 브런치를 잊었던 것은 아닌데, 차마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은 나 자신을 힐링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점점 내가 아는 사람이 내 글을 보면서 나를 생각하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오늘은 구독자가 늘었나 등을 생각하면서 머리가 복잡해지더니, 출판 계약서가 파투 나면서 마음이 심란해졌다. 급기야 '난 그깟 쓸데없는 글을 왜 쓰는 것일까?'라며 마음을 닫아버렸다. 어릴 때 엄마가 밤 11시에 가게 셧터를 내리듯이. 그렇게 미련 없이 한순간 닫고 다시는 열지 않았다. 간혹 댓글이 달리는지, 구독자가 늘었는지 빼꼼 종모양 버튼을 클릭하곤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런데 글이 쓰고 싶어 졌다.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잊어지지 않았을 뿐. 브런치에 안 들어오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단 난 둘째를 임신하고 낳았다. 어느새 그 아이가 두 돌을 향해간다. 둘째 태명을 <침착이>라고 지었더랬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 내가 바라는 이상향. 침착. 침착이는 나에게 엄청난 입덧과 저혈압을 가져다주었다. 저혈압 때문인지 태명 때문인지 거짓말처럼 심장이 벌렁대는 공황발작 같던 증상이 나아졌다. 벌려놓은 것들이 많아, 일을 관두고 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첫째 임신 때와 똑같이 나는 만삭까지 일을 했다. 기운도 의욕도 없어 일하다가 쓰러질 것 같을 때는 산부인과에 가서 링거를 맞았고, 거의 매일 입덧 방지 약도 먹었다. 첫째 임신 때는 없던 하지정맥류와 약간의 요실금 증상도 얻었다. 예민한 사람은 임신도 이렇게 매번 험난하게 지나가야만 하는 숙명인 건가 보다고 생각했다. 둘째를 낳고는 황당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절대 첫째처럼 예민한 아이는 안 나올 거다 확신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유전자의 힘은 강하다.
둘째, 이사운이 많았다. 집도 이사 가고, 직장도 이사했다. 따라서 대출은 더 늘었다. 세상에...... 나는 절대 감당하지 못할 일들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은 순간, 찬란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 리더십 덕분에 일을 벌였으니 처리는 사이좋게 함께 해야 할 텐데, 갈 길이 구만리다.
셋째, 가끔 꽃을 사기 시작했다. 꽃이란 여유롭고, 집 정돈을 잘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라며 나와는 멀게 느꼈었는데 그런 내가 요즘 꽃을 산다. 나를 위한 사치로 비싼 커피 대신 꽃으로 대체했다. 나이가 들수록 식물 자체가 좋아지는데, 화분은 도통 키우기가 힘들다. 왜 내 손에 들어오면 얼마 안 가서 시들시들 해지고 픽 쓰러져버릴까? 아예 줄기가 꺾여 있는 꽃은 마음 편하다. 꺾인 꽃은 누구 손에서건 일정한 시간만 싱싱하니까.
"꽃이 좋은데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나에게 "구경만 해도 되니까 자주 놀러 오세요."라고 조곤조곤 말해주는 꽃집 사장님을 만났다. 문자를 보내면 친절히 상담도 해주신다. 주로 나는 관리가 쉬운 것, 대충 관리해도 오래가는 것을 찾는다. (이렇게 관리를 귀찮아하는 내가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게 미스터리. 그래서 유독 육아가 힘들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
과연 내가 얼마나 글을 자주 쓰고 읽을지 모르겠지만,
" 브런치야, 다시 만나 반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