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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Mar 13. 2018

눈 떠보니 이별이더라

 태생이 진득하지 못하여 여러 가지 일을 건드린다. 학창 시절 시험기간에도 그랬다. 국어를 공부하다가 지겨우면 수학을 펴고, 이내 또 지겨워지면 사회책을 꺼내고, 가끔 그렇게 하루가 다 가고 나면, 내가 한 일이라고는 대여섯 과목을 대여섯 장씩 본 게 다 였다.


 재미로 간 사주카페에서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하고 지루해한다 하였다. 공부를 할 때도 도서관에서 하다가, 집으로 갔다가, 카페로 옮기고, 다시 도서관을 간다 하니 용하디 용한 사주풀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직업은 이 체어, 저 체어 옮겨 다니고 모두의 치아가 다르게 생겼으니 어찌 보면 잘 선택한 것이 아닐까ㅡ하고 혼자 생각해 본다. 


 내가 목표로 하지 않았던 한 가지 일이 있었는데, 이뤄지기 직전 무산이 되었다.  웬만하여서는 관심거리를 옮기는 것이 쉬운데, 왜 그 일은 밥을 먹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자다가도 불쑥불쑥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어쩌면 나에게도 진득한 꿈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뜬금 없는 이야기지만,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는 말은 정말 맞나보다. 첫째, 나의 광대뼈 근처에 제법 큰 기미가 있는데, 어느  날 남편의 광대뼈 근처에 비슷하게 커다란 기미가 생겼다. 마치 검버섯처럼 커다란 기미다. 우리가 마주보면 거울상이다. 나는 호들갑을 떨었다. " 웁스,맙소사. 같은 자리에 이렇게 큰 기미가 생기다니 우리는 천생연분인가? 당신 늙었다. 우리는 진짜 늙어가나봐." 남편은 "참내."한 마디로 모든 이야기를 함축한다.


  두번째, 그도 정신이 산만해졌다. 발동이 늦게 걸려서 그렇지 , 한번 맘을 먹으면 누구보다도 집중력이 높고 엉덩이가 무거웠던 그가 십수년 사이 나처럼 변했다. 그는 요즘 부쩍 '내가 니를 닮아가나보다.'라고 한숨을 쉰다. 나쁜 게 아니야.  토닥토닥.


 진득한 꿈에  대하여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로워하다가 어느 날, 남편에게 "승산이 없어 보여. 이 일에 신경쓰다보니 더 우울해져. 포기를 할까봐. 직장과 육아에 더 신경써야겠어."라고 하니, 남편은 도리어 나보다도 더 완강하게 그만두지 말라한다. "처음부터 성공하는 사람이 어딨노."어쨌든 그가 변했다. 한 우물 밖에 모르던 그가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날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것 같아 고마웠다.


 요즘 책장에 꽂혀있는 책 서너권이 눈에 밟힌다. 실연당한 이의 마음이 되어 애써 모른척했던 책. 난생 처음 출판사와의 미팅에서 편집장님이 선물로 줬던 책이다.  눈치빠른 독자님들은 아시겠지만 '갑자기 소설'에서의 장원장 아내처럼 난 돌다리를 두드리다가, 일을 그르쳤다. 한동안 종이로 된 책을 읽기가 싫었다. 이별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사랑했던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어느새 우리 자매가 원고에 쏟아왔던 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제 무뎌질 때도 됐건만 우리는 꽤 많은 시간 자책과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인연이 아닌가보지,인연을 찾아가자.' 하고 으쌰으샤했던 우리는 지금 맥이 풀려 주저앉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안에 싹 트는 후회.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조만간 용기를 갖고 저 책들을 펼쳐야겠다.  


 갑자기 포맨의 노래가 생각난다. 눈 떠보니 이별이더라.


p.s 계약서를 눈앞에 두고 파토난 모든 투고자분들 함께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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