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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Feb 16. 2018

그래요.나 예민해요.

'센서티브'를 읽고 나를 인정하다.


 일자 샌드의 책 '센서티브'를 읽고, 우울감이 다소 안정화되었다. (한약의 효과, 콩이의 함구증이 반 정도 극복된 일이 물론 큰 역할을 했겠지만 말이다.) 시작부터 많은 공감을 하며 나와 나의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예민한 몸,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선, 늘 눈치보는 성격, 작은 변화에 민감함 등 뭐 하나 편히 살 수 없는 몸뚱아리라고 자괴감을 느끼며, 남들에게 나의 높은 sensitivity를 숨기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나 자신이 남들보다 통증에 역치가 낮은 것 또한 짜증났었다. 예민함을 들키는 것은 창피한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쿨하고 털털하고 덜 아픈척 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 같은 사람은 세상에 많고, (5명 중 1명은 highly sensitive하다. )민감함은 타고난 기질이다. 민감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장점도 많다. 예민한 사람 취급 받기 싫어서 숨기려하면 정작 본인만 피로해진다. 그리고 주변인도 불편해진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예민함은 환경보다 기질이 많은 부분 결정짓는 것임을 알았다. 예민한 아이의 부모에게 "네가 그렇게 키우니까 더 예민해지지."라고 쉽게 내뱉는 사람들에게 '너는 이런 애를 안키워봐서 몰라. 니가 키우면 애가 순둥이가 됐을 것 같니? 착각이야.'라고 속으로 외쳤다. 그와 동시에 나의 나쁜 유전자를 물려준 것만 같은 죄책감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리고 아이가 자유자재로 대화가 가능해졌을 때, 나는 갓난쟁이 엄마 때 느꼈던 패닉상태에서 조금 탈출해 있었다. 몇 년 사이 아이만  큰 것이 아니었다. 나도 아이의 예민함을 끌어 안아 줄 수 있는 엄마로 성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불안해 질 수밖에 없는 치과 진료 특성상, 아무리 둔감한 치과의사라도 첫 치료하는 순간 몇 분 안에 예민한 환자는 바로 파악을 하게 되는데, 그런 부류의 환자들은 머릿속에 넣어둔다. 예민한 사람과 단지 겁이 많은 사람은 다른것 같다. 예민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겁이 많긴하지만, 단지 겁이 많은 사람들은 갖은 불안을 표출해도 막상 치료가 들어가면 별 문제가 없다. 꽤 안정적으로 치료를 끝마치고, 자극에도 큰 동요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감도가 높은 이들은 치료 전,치료 중, 치료 후 모두 상당히 까다롭다. 그들은 낯선 소리나 냄새에도 쉽게 불안해하고 작은 자극에도 통증을 더 크게 느낀다. 같은 치료에도 증상이 잘 안 없어지거나, 오히려 치료 후 더 아파지는 경우도 있다.  얼굴을 덮는 소공의 질, 체어의 각도, 라이트의 각도, 입술이나 볼을 견인하는 정도 등 진료환경에 그들의 신경이 쉽게 날카로워진다. 그래서 미리 어떤 일이 일어날지 더 많이 설명을 하고, 치료를 조금씩 나눠서 한다거나, 치료 뿐아니라 관련된 주변 상황들에 대해 설명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당연히 예민한 환자가 오면 신경써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지니, 그렇지 않은 환자를 볼 때보다 몇 배로 피곤해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기질도 다르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나에 대해서는 전혀 관대하지 않다. 내가 예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단점이라고만 생각했다. 선택적 함구증을 겪었던 일도 나의 치부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덮었을 때,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건 숨길 일이 아냐. 피곤하긴 하지만 어쩌겠어. 그게 나인걸.'


 예전에는 못 마땅한 상황 앞에서 남편에게  "나는 그냥 그 상황이 싫어. 짜증나."라고 말했다면, 이 책을 읽은 후  "당신은 안그렇겠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 남들보다 쉽게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는것 같아." 라고 완곡하게 표현하게 되었다. 남편이 말한다. "그래. 니 이래 얘기하니까 얼마나 좋노." 다른 사람들과 오랜 시간 있는 일에 진이 빠질 때는 공간을 이동해 나만의 시간을 10분이라도 갖는다. 책에서 그 내용을 읽을때만 해도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예의없이 , 눈치없이 어떻게 '나 피곤하니 혼자있겠다.'는 말을 하지? 나는 절대 그런 행동은 못 할것 같았는데, 막상 그 상황에서 슬쩍 자리를 떠보니 예상보다 어색한 일은 아니었다. 늘 주변인들은 내가 걱정하는 것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을 때가 많다.


 우리동네 내과의사는 나를 진료보기 까다로운 환자로 분류한다. 갖은 약에 부작용이 있고, 특별한 이유 없이 아프고, 자가면역질환도 있다. 며칠 전 감기몸살을 호되게 겪으면서 병원에 갔더니, 이번 케이스에서는 항생제를 안 쓸수가 없다며, 고심하여 약처방을 내주었다.  


"항생제 a는 설사를 한댔으니 b를 낼게요. 이것도 장이 부글거릴 수는 있습니다. 항히스타민제는 어디 보자...... 지난번 약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다고 했던 것이 c때문일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d를 낼게요. 가래제거제e는 너무 몸이 가라앉고 못 일어나겠다고 했죠. 그래도 이 약이 효과가 좋으니 애기들도 먹는 용량으로 낼게요. 소염진통제 f는 속이 메스껍다고 했으니 g로 내볼게요."

 

 하아......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민망할 정도로 까다로운 환자다. 그런데 오랜만에 먹는 항생제는 기가 막히게 잘 들었고, 다른 약들도 별 문제 없었다. 오늘 다시 내과에 갔더니, 내과의사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이번 약은 어땠는지 물었다. 약이 잘 들어서 많이 좋아졌다는 얘기에 금세 표정이 환해진다. 약에 민감하니 부작용도 많지만, 잘맞는 약은 금방 약발이 잘 받는가보다. 민감해서 좋은 점도 다 있다.


 아무튼 감사한 책, <센서티브>. 자신의 예민함으로 인해 쉽게 우울해지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나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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