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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Aug 14. 2021

오월의 아이

초록은 점점 녹이 슬어도

"이 노래만 몇 번 째야? 제발 그만 좀 듣자."

내가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남편은 한 번 꽂힌 곡은 수십 번 반복하여 듣고 따라 부르는 스타일이다. 이어폰으로 들으면 될 텐데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으니, 쉽게 질리는 성격의 나는 같은 곡이 3번 이상 반복되면 질색을 한다. 그런 나에게도 8년 전 임신을 하면서부터 계속 들어도 지겹지 않은 곡이 생겼다.


임신을 원하면 턱 하니 애기가 생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수개월의 노력이 거듭되어도 아기가 생기지 않아, 지쳐 포기했을 때 그제야 임신 테스터기에 두줄을 보았다. 임신을 하면 호르몬 변화로 감정적이 된다지만, 원래도 무척 감정적이었던 나는 첫째를 임신했을 때 하루의 반나절은 눈물을 흘리며 지냈다. 하루에 몇 번씩 변기를 붙잡으며 지옥 같은 입덧을 겪고 나서도, 일하다가도 문득,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은 쉽게 터져 나왔다.  그리도 원하던 아기였는데 내 몸안에 다른 생명을 키우는 일이 왜 이렇게 외롭고 고달프게 느껴지는지 간혹 내 자신이 너무 나약한 건 아닐까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눈물이 금세 마르지 않으면 나는 핸드폰의 노래 한 곡을 반복하여 들었다. 혼자일 때는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다시 울기도 하였다. 

"오월 너는 너무나 눈부셔."


나는 오월이 아닌 삼월의 아이였다. 아주 먼 찬란했던 봄날 작은 쌍둥이 둘이 세찬 울음소리를 내며 태어났다. 우리 쌍둥이는 아기 때 잠도 깊이 못 자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때 너무 울어서 목소리를 다 써버린 것은 아닐까? 유치원에 입학하자마자 우리는 남들 앞에서 입을 닫아버렸다. 7년의 긴 세월 동안 남들과 대화를 못한 채 살아가는 일은 상상보다 고된 일이다.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말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못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말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었고, 더욱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중학생 이후로는 선택적 함구증을 이겨내고 남들처럼 친구를 사귀고 평범하게 지냈다. 그렇게 평범함을 바랐지만 누구나 나이 들어가는 것이 그러하듯, 수많은 삼월이 지나고 크고 작은 사건들로 나도 세월은 때가 탔다. 오월은 가사처럼 나의 초록은 점점 녹이 슬었다.  


뱃속의 아기가 모두의 축복 속에서 태어났고,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에도 임신 때 보다 더 고되고 외로운 순간들의 반복이었다. 산후우울증이라는 말이 남 얘기인 줄만 알았다. 잠이 부족하고 입맛도 없어지고 나의 정체성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아기는 나를 닮아서인지 매우 예민한 편이었고, 밤낮으로 울었다. 이 작은 몸에서 이렇게 크고 많은 울음이 쏟아지는 것이 신기했다. 아기는 자장가를 불러도, 육아서적에 나오듯 쉬ㅡ소리를 내며 안고 흔들어도 울음을 쉬이 그치지 않았다. 아기를 안고 울던 어느 날은 이 방법, 저 방법 써도 그치지를 않고 나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껴 소리를 질렀다.

"어쩌라는 거야! 진짜! 그만 좀 울어! 그만!"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이 되어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핸드폰에서 랄라 스의 오월을 재생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의 도입부가 들리자 마법처럼 아이는 울음을 멈추었다. 뱃속에서 노래를 듣던 기억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내가 노래를 따라 부르는 동안 아이가 잠들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미안하고 고마워서 또 눈물이 났다.


사람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다. 나는 5년 터울로 둘째를 가졌고 또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입덧을 하고, 울고, 랄라스윗의 오월을 들었다. 둘째에게도 자장가 대신 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오월의 가사를 내가 태어난 삼월로 바꿔도, 첫째가 태어난 팔월로 , 둘째가 태어난 이월로 바꿔도 다 말이 되었다. 이건 모두의 노래였다. 눈부시고 찬란했던 날 그리고 겪게 되는 검은 구름과 , 질퍽대는 땅 위어서 비척대는 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나의 아이도 나이를 먹어가며 모진 풍파를 겪게 되겠지, 생각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소중한 존재이며,스스로를 아끼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수많은 오월 지나고 푸르지 않은 봄 마주쳐도, 아주 오래전 그날 눈부시게 빛나던 나는 축복의, 나는 오월의 아이임을 잊지 말았으면.





브런치가 갑자기 따뜻해졌다. 낯설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브런치야, 보고 싶다해줘서 고마워.


돌연 사라져서 미안해. 곧 다시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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