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낙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코끼리 May 09. 2017

나의 베이비시터 할머니

날 갓난이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키워주셨던 ㅡ요즘 말로 베이비시터ㅡ 할머니는 노년에  대장암과 천식과 약간의 치매를 갖고 있었지만, 정작 돌아가시게 된 것은 일종의 사고때문이었다. 사고로 인한 또 다른 사고. 아무튼, 할머니는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우리가 s이모라고 부르던 할머니의 친 딸은 , 중환자실에서 매우 격양되게 울기도 하고, 금세 차분해지기도 하였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 할머니는 눈을 감은 채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혈압이 떨어져 상승시키는 약을 주입하고 있다하였다. 할머니의 다리는 약간의 온기를 갖고 있다가 다시 차가워지기를 반복했다. s이모는 "엄마 빨리 일어나."라며 엉엉 울다가도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신거야.이것봐.점점 차가워지잖아.죽은 몸뚱아리에 억지로 피를 돌게 하고 있는 거야."라며 체념한 듯 이야기 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할머니의 모습에 오랜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니와 나는 면회시간에 맞춰 할머니에게 몇 마디 이야기를 하고, 울고 , 만져보고, 지켜보다가, 대기실로 나왔다.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나는 실로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할머니와 언뜻 보면 매우 닮은 어떤 할머니가 식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할머니의 친자매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 할머니는 삼십년 넘게 단 한번도 형제자매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의 동생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놀란것이 아니었다. 그 할머니의 옷차림이 너무 번듯해서 놀라웠다.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낡아빠진 외투에 단칸방에서 끼니도 대충 떼우고 독거노인처럼 사셨는데... 내가 유니클로에서 사줬던 저렴이 패딩도 이 비싼 옷을 왜 샀냐며 고마워했는데...

할머니의 동생분이 입고 있는 번듯한 옷이 내 마음을 후벼팠다.


할머니는 자식이 다섯명 이었지만 , 할머니를 챙기는 건 s이모뿐이었다. s이모도 일하랴 자식 셋키우기 바빠서 할머니를 살뜰히 챙기지는 못했다.


할머니는 다음 날, 우리가 부산으로 가기위해 공항에 도착한 시각에 돌아가셨다. s이모는 할머니가 볼 사람을 다 보고 가려고 못떠나고 있다가, 이제 다들 만나서 가신거라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거의 1년이 지났는데, 나는 자꾸만 할머니동생분의 번듯한 옷이 생각난다. 세이브더칠드런에 몇 년 내내 보내고 있던 후원금을 차라리 우리 할머니한테 보내드릴 걸... 명절과 어버이날 때  미뤄놨던 숙제처럼 전화하고 용돈보내고. 그러고나면 한동안 좀 마음 편하다가 다시 시간이 지나면 묵직하게 숙제로 느껴지던

할머니.


밥먹었냐 .조심해서다녀라. 애잘키우냐. 고해성사는 했냐. 행복해야한다.


할머니, 그 곳에서는 제발 우리 걱정 그만하고, 마음 편하고 따뜻하게 지내다가 다시 만나자.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할머니.할머니. 우리 할머니...

매거진의 이전글 콩 심는데 콩이 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