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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May 10. 2021

콩 심는데 콩이 나나요?

싹 나기도 힘들던데

"엄마, 강낭콩 심어서 관찰일기 써야 해."

아들이 집에 오자마자 필통을 꺼내며 이야기한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첫 과제를 들고 왔다. 필통을 여니 미색 바탕에 자주색 얼룩이 섞인 강낭콩 여섯 알이 연필 사이사이로 뒹굴고 있다.


나는 강낭콩들을 본 순간, 심난해졌다. 내가 과연 잘 키울 수 있을까. 예감이 불길했다. 아들이 다섯 살 때  방울토마토를 키워보자며 호기롭게 씨앗을 화분에 심고 매일 관찰했다. 어느 날, 새싹이 빼꼼 나왔다. 세상에, 나도 식물을 죽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구나. 나는 애지중지 하루에도 몇번씩 들여다보며 새싹 사진을 찍었다. 새싹이 났으니 쑥쑥 자라 열매를 맺으면 얼마나 기쁠까. 설레었다. 딱 일주일이었다. 나와 아들은 "새싹만" 보았다. 그것은 줄기라고 말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미약했다.


담임 선생님은 강낭콩을 심는 방법을 프린트해서 나눠주었는데, 첫 번째 방법은 화분에 심는 것이었고, 두 번째 방법은 젖은 솜 위에 두는 것이었다. 아들은 첫 번째 방법으로 하고 싶다고 했지만 우리 집에 흙이 없었기 때문에 두 번째 방법으로 설득시켰다. 3일이 지나고, 사일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나 관찰일기는 채워야 했기에 콩 여섯 알을 그리긴 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일주일 만에 변화가 찾아왔다. 콩 하나가 썩었다. 열흘만에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났다. 아들에게 관찰일기를 쓰자고 했다. <콩 하나에 곰팡이가 생겨서 버렸다.>


무슨 연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물을 너무 조금 준 것일까? 햇볕과 바람이 필요한가?

아들과 나는 점차 지쳐갔다. 아니, 점점 짜증이 커졌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관찰일기에는 더 이상 그릴 것이 없었다. 남은 네 개의 콩들도 이미 다들 말라죽은 모양이다. 껍질과 속살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친구 엄마가 강낭콩 잘 키우고 있냐며 카톡이 왔다.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집 강낭콩은 어찌나 풍성하게 잎이 무성던지, 콩이 이렇게 빨리 자랄 수가 있냐며 되물었다. 친구 엄마는 강낭콩 시즌이 아니라 콩의 여분을 구할 수가 없다는 슬픈 소식도 전해주었다. 나는 아무래도 그 집 콩나무에서 열매를 맺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며칠 뒤, 친구 엄마는 다시 연락이 왔다. 말라비틀어진  콩들을 미련 없이 버린 다음 날이었다. 잘 자라고 있는 식물 옆에 새로운 싹이 나고 있어서 , 다른 데 옮겨서 우리집에 준단다.

<와, 대단하네요. 정말 금손이시네요. 나의 구세주!>


"서프라이즈!"

우리 집에 온 새싹을 보고 아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관찰일기를 다시 시작했다. 나는 친구 엄마가 알려준 대로 매일 한 번씩 축하게 물을 주었다. 이번에 제대로 해보리라.


그러나 이번에도 열흘만에 그 자신감은 무참히 꺾였다. 잎이 누렇게 변하는 것을 보고, 응급상황이라 생각되었다. 애꿎은 남편을 붙잡고 외쳤다.

"여보, 이거 봐. 왜 그럴까? 물을 적게 준 것도 아니데. 왜 그럴까? 광합성을 시켜볼까?"

남편은 화분을 들여다보더니

"아, 맞네." (부산 사람들은 보통 아, 그러네. 와 같은 맞장구를 아, 맞네.라고 얘기한다)

라고 대꾸한 뒤,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인 양 핸드폰만 바라봤다. 다급한 마음에 베란다에 화분을 반나절 내놓았다. 바람이 강하여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헛된 일이었다. 점점 줄기 윗부분까지 색이 누렇게 변하며 쭈글쭈글해졌다. 다급한 마음에 친구 엄마에게 사진을 보내니

<이미 갔네. 썩었네. 가망이 없어. 버려.>

라고 명쾌한 답을 주었다.


들의 텅 빈 관찰일기를 볼 때마다 가슴이 갑갑하고 못내 찜찜하다. 아마도 나는 내내 아들의 상심보다 불완전한 숙제에 더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잊을만하면 다시 떠오르는 강낭콩 숙제. 아들에게  물었다.

"강낭콩 어쩌지? 물은 매일 잘 줬는데, 왜 죽었을까? 너무 많이 줬나?"

"응. 물을 많이 줘도 썩어. 뭐,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는 일에는 미련을 버리라고, 아들과 강낭콩이 내게 알려준다. 이러나 저러나 잘 키우지도 못할 거 차라리 1학년 아들에게 물 주는 일을 맡겼다면 훨씬 잘 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잘 해내고 싶지만, 되지 않는 일들이 종종 있다. 일일이 실망을 하고 스트레스받는 것은, 어쩌면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시 하는 안좋은 나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나는  당분간 물키우기는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과정과 노력을 칭찬해주는 마음은 더 키울것이다. "나의 삶"이라는 흙에 , ""가 튼튼히 두 발로 지탱하고 쑥쑥 성장할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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