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는 항상 따뜻하다. 식은 누룽지조차 말이다.
내 어린 시절에는 전기밥솥이 지금처럼 흔치 않았다. 이렇게 말하니 내 나이가 많게 들리겠지만, 내년이 되면 불혹의 나이가 되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그런 나이다. 어쨌든 그 시절 바쁜 엄마 대신 우리 집 일을 도맡아 하던 시터 할머니는 얇은 스텐으로 된 밥솥을 가스레인지에 올려서 밥을 했다. 밥을 다 푸고 나면 늘 바닥에 누런 누룽지가 두툼히 자리 잡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누룽지를 주걱으로 살살 떼내어 따로 보관하다가, 가끔 그 누룽지를 프라이팬에 펴 더 바삭하게 누른 뒤 설탕을 슬슬 뿌려 우리에게 간식으로 주었다.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누룽지는 다음 날 아침의 일용한 양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시터 할머니는 더 이상 우리 집에 오지 않았고, 전기밥솥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도 누룽지는 항상 친숙하고 정다운 존재였다. 워킹맘이었던 엄마는 자주 밥을 프라이팬에 눌러 누룽지를 만든 뒤, 푹 끓여서 아침식사로 차려주었다. 입맛이 없는 날에도 누룽지가 상에 올라오면 반찬은 중요치 않았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누룽지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요즘은 세상이 편해져, 미리 만들어진 누룽지를 마트에서 사는 것이 흔해졌다. 어느새 엄마처럼 나도 바쁜 아침에는 아이들에게 누룽지를 끓여주는 워킹맘이 되었다. 이른 아침 입맛이 없는 아들, 딸은 밥과 반찬을 주면 먹기 싫다고 투정 부릴 때도 흔하다. 빵이나 떡을 주는 날은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하지만 누룽지를 주는 날은 흐뭇하다. 누룽지는 아들, 딸 마다하지 않는다. 호호 불며 먹는 아이들을 보면, 계란 프라이에 김만 있어도 괜스레 마음이 든든해진다. 쌀밥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남편조차, 누룽지는 마다하지 않는다. 식구들이 다들 먹고 나서 냄비에 남아있는 한 줌도 안 되는 누룽지를 먹을 때면 , 엄마 생각이 난다. 어린 시절, 우리 삼 남매가 다 먹을 때 즈음 , 냄비를 갖고 와 앉아 숟가락으로 박박 바닥까지 긁어먹던 엄마. 그때는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모습. 이제는 그때의 엄마가 조금은 쓸쓸했다는 것을 안다.
얼마 전, 장염에 걸려 호되게 힘든 나날들을 겪었다. 결혼 후 타지에 살면 아플 때 유독 엄마 생각이 나는 법인가 보다. 오랜만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 의사 선생님이 흰 죽만 먹으라는데 죽먹기가 너무 힘들어서 잘 안 먹히네."
"힘들지. 당연히. 어쩌냐. 애들 보기도 힘들겠네. 죽 먹는 게 너무 질리면 누룽지를 먹어봐."
"그래야겠어."
그 날, 당장 누룽지를 사서 흰 죽 대신 누룽지를 오랜 시간 푹 끓였다. 입맛도, 기력도 없어 겨우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다니. 익숙한 맛. 한 숟가락을 또 입안에 넣는다. 고소하고 푸근한 맛에 힘이 절로 난다. 누룽지는 내 위장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그리고 다시 이겨낼 위로를 준다. 누룽지를 먹으며 할머니, 엄마, 나, 남편 그리고 나의 자식들을 생각했다. 나의 자식들이 자식을 낳아도, 대대손손 누룽지는 사랑받을 일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