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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Oct 06. 2021

실수가 아니었을지도

대학 새내기를 벗어날 무렵, 어느 겨울날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김을 호호 불며 졸업을 하고, 그 후로 한 번도 모이지 못하다가 다시 칼바람에 피부가 쓰라린 겨울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네 사람 사이에 반가운 마음과  어색한 기운이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는 꿈도 못 꿨던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십여분을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드디어 한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시켰다. 설렘을 느끼며 그동안 밀린 수다를 시작했다. 못 본 시간 동안 대학에서의 일들이 더 생생할 법도 한데, 떠들다 보니 대부분의 주제가 고등학교 때의 추억이었다. 담임선생님 얘기, 친구들 얘기를 하다가 불현듯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른 나는 P를 보며 이야기했다.

"아, 맞다!! 나 옛날에 겨울 방학 때 일번가에서 너랑 어떤 남자랑 되게 다정히 걷는 것 보고 네 남자 친구인 줄 알았잖아!"

"아, 그때? 기억나."

"크크. 근데 알고 보니까 너네 오빠였었지. 난 진짜 네가 언제 남자 친구가 생겼지! 하고 깜짝 놀랐잖아!"

놀랐잖아. 를 말하는 순간 아차, 했다.

P의 오빠는 하늘나라에 있었다. P는 아무렇지도 않게

"맞아, 그랬지?"라고 대꾸하였고, 일순간 2초의 정적이 지났다. 나에게는 20초처럼 길었던 정적. 내 등에서는 진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기다리던 음식들이 푸히 놓이고 나서도, 나는 그 음식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나는 자책했다. 바보 같기는, 거기에서 왜 그때 얘기가 나와. 왜 기억이 안 났지? P가 상처 받았을 텐데. 아, 부끄럽고 미안해 죽겠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하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우리는 넷이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나란히 걷다가 지하철역 앞에서 서로 안녕,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그것이 그  친구들과의 마지막 만남이 될지는 몰랐다. 각자 사는 곳이 멀었고, 학교도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력 안 좋아지는 것 같으면서도 잊고 싶은 기억은 자꾸 더 선명히 떠오른다. 나는 매년 겨울이 되면 그때의 나를 떠올리고 다시 스스로를 나무다.


그 후로 P와는 연락이 드문드문했고 못 본 지 십여 년이 지났다. 간간이 다른 친구 S를 통해 P소식을 듣기도 했지만 이제 연락하기 조차 망설여질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가 P와 연락이 닿은 것은 우리 아빠가 돌아가시고 3일이 지난 뒤였다. 거의 15년 만의 연락이었다. S를 통해 부고 소식을 들었고, 직접 가보지 못해서 미안하며 아빠의 영면을 바란다는 긴 문자였다. P가 나에게 연락을 준 것만으로도 놀랍고 고마웠다. 먼저 그 일을 겪어본 사람만이 해 줄 수 있는 위로였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몇 번이고 그 문자를 되풀이하여 읽고는 답장을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간혹  P와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의 대화가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가족을 보낸 뒤에야 깨달았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은 그렇게 큰 실수가 아니었다. 가족이 죽었다고 해서, 일부러 가족 얘기를 빼는 것보다 과거 속에 그 가족을 함께 기억하는 일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년을 자책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한 것은, 오직 내 머릿속에서 스스로의 잣대로 비판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친구는 남매에서 혼자가 되어버리고 난 그날부터, 몇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린 듯 철이 들어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망자를 잘 보내준다는 것은, 잊고 잘 사는 것인 줄만 알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토닥여준다. 나는 오늘도 미움과 원망을 한쪽에 쓸어 모으고, 추억과 그리움은 하나씩 펼치면서 아빠에 대한 감정을 정리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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