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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Jan 02. 2023

그럴 수도 있지

<월간에세이 2023년 1월호> 기고 

내 인생 최초의 반항 대상은 중1 때 수학선생님이었다. 마르고 키가 큰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렇게 선생님을 미워했는지 이유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수학에 흥미가 많았지만, 수학선생님은 싫었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선택적 함구증을 겪으며 외톨이 같았던 나는 중학생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친구들을 사귀고 우정에 심취했다. 나는 여러 명의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쓰고, 방과 후에는 떡볶이와 과일빙수를 먹으러 다녔다. 학교 다니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는 거였다니. 초등학교 시절의 설움을 잊으려는 듯 내 머릿속의 온통 친구들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 좋은 친구들과의 수업도 어김없이 수학 시간이 돌아오면 곤욕이었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칠 새라 나는 칠판 대신 책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종종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문제를 풀어라 시켜놓고, 교실을 천천히 한 바퀴 쭉 돌아보셨다. 나는 선생님이 내 앞에 오기 전에 빠른 속도로 문제를 풀어놓고, 선생님이 내 옆을 지날 때 보란 듯이 엎드렸다. 수학책을 덮어 옆에 밀어 두고. 교과서 표지의 <수학> 옆에는 빨간색 매직으로 이렇게 써져 있었다.

‘재수 X’. 

선생님이 그 글자를 못 봤을 리 없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말은 안 하지만 모범적인 아이’의 모습으로 갇혀온 듯 지내온 나로서는 매우 커다란 일탈이었다. 나는 속으로 정체 모를 통쾌함을 느끼며 빨리 선생님이 지나가길 바랐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참으로 죄송스럽고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수학은 나에게 애증을 가르쳐줬다. 내가 수학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급하게 빨리 풀려는 습관은 늘 실수를 데려왔다. 나는 어려운 문제를 풀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동시에 실수를 발견할 때마다 내가 싫어졌다. 그럼 그렇지. 또 쉬운 계산을 실수했잖아! 나는 그 실수를 보면 분해서 혼자 끙끙 앓았다. 거기까지면 좋았을 것을, 나는 나의 단점을 확인할 때마다 나를 점점 미워했다. 친구들이 좋을수록 나 자신은 싫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나 자신이 미웠는지. 나는 나를 미워하기 위해 갖은 구실을 찾는 것 같았다. 수학은 그 많은 구실들 중 아주 작은 일부였을 뿐이다.

나의 수학 시험지가 몇 점이건 엄마는 한 번도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어이없는 실수에도 늘 웃으며 얘기했다. 

"으이구, 덜렁거리기는. 너 나중에 애 낳고 나서도, 차에 애 놓고 내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두 아이를 낳았지만 한 번도 아이들을 잃어버린 적은 없다.


첫째 아이가 수학 공부를 할 나이가 되니 새삼 그때 수학선생님은 나를 보며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 적어도 선생님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교과서의 빨간 글씨에도, 선생님의 말씀에 눈을 쳐다보지 않는 나의 태도에도 한결같이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에게는 수학이 문제가 아니었다. 수학선생님은 더더욱 아니었다. 친구를 한 명도 사귀어보지 못했던 초등학교 시절을 지내오면서, 자존감이 무척 낮아있던 나는 그 불안증을 이겨낸 후에도 습관적으로 나 자신을 탓하고, 무시할 건덕지를 찾아 헤매었는지도 모른다. 자잘한 일들마다 나를 탓하고 나면 그로 인한 우울감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내 역사 최초의 반항. 수학 책 표지의 그 빨간색 글자가 우습고 창피지만, 이제 와서라도 그 시절의 나를 스스로 한 번쯤 귀엽게 바라봐주고 안아주고 싶다. 


정찌작가의 <땅콩일기>에서 아버지가 말한다. 

“니는 모르쟤. ‘그럴 수도 있지.’ 그 말이 얼마나 사람을 구원하는지 너는 모를 거야.” 

그 말을 들은 땅콩은 대답한다. 

“...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이 글을 읽고 이 단순한 문장이 바로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음을 깨달았다. 남에게만 관대하고 나에게는 혹독했던 내가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을 바꿔본다. ‘아, 난 왜 이러지?’ 대신 ‘그럴 수도 있지.’로.

오늘 아침, 아홉 살 아들이 가방에서 꺼낸 수학시험지를 보고, 내가 말했다. 

“또 쉬운 건데 실수했네. 문제를 잘 읽고 천천히 풀라니까.”

그러자 아이가 말한다. 

“에이,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 뭐 그런 거 갖고 그래?”

나는 오늘도 아이의 대꾸에 참내, 하며 기가 막히면서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걸 어떻게 알았지, 하고 기특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날 미워했던 나도, 수학선생님을 미워했던 나도. 그럴 수도 있지.




월간에세이 2023년 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출간 이후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사무친 이야기를 모두 꺼내놓았으니 텅 빈 기분도 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필명에 숨어 쓰던 글이 실명으로 공개되니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출간 이후 변한 것은 크게 없습니다. 일희일비하던 마음도 어느새 진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받은 첫 원고청탁에 오랜만에 글을 썼습니다. 월간에세이의 신년호에, 제가 너무 좋아하는 신선미 작가님의 그림을 배경으로 실리다니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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