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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 May 27. 2022

침묵沈黙

그대와 나는 침묵한다 

    

햇살을 함께 나누되

서로의 그늘을 

침해하지 않는다 

    

삼라만상 모든 것은

찰나의 거래去來이지만

     

수많은 생각이 

다녀간 자리에는

침묵만이 오롯이 남는다 

    

그대와 나는 침묵한다

     

삶을 함께 나누되

서로의 영혼을 

침해하지 않는다   

  

/     


지난겨울에 베란다에 있는 알로카시아 이파리에 벌레들이 들끓어서 과감하게 밑동을 잘라버렸었다. 밑동을 자르면 다시 자란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믿고 얼마간 그 위로 새 이파리들이 피어나기를 고대했건만 점점 말라가고 있는 밑동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주인의 무지無知로 인해 말라죽은 줄 알고 화분에 물도 주지 않은 채 한동안 무심無心하게 보냈다. 그런데 얼마 전 문득 알로카시아의 초록 이파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밑동이 아닌 그 옆 자리에 새초롬히 피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생명의 신비는 감히 내가 헤아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여린 씨앗 속에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가 담겨 있다. 조그마한 씨앗이 광활한 우주를 어떻게 창조할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함께 성장하되 내면에 흐르는 존재의 가치를 존중하고 지켜봐 주는 따스한 침묵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으면 봄이 오고 풀은 스스로 자란다.”          


# 침묵沈黙  / 2022. 5. 27. pung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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