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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앤 Mar 16. 2022

코로나 소굴에서 살아남은 아이

코로나가 너무 싫습니다


'어머니, 총체적 난국이네요..'



올해 초등학교 입학한 아들의 담임 선생님과 통화 중 나온 한마디였다. 가족이 다 양성이고, 아들만 음성인 상황에서 학교 출석이 가능한지 등교시간 막바지에 힘들게 연결된 통화였다.

예상했지만,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똘똘하니 굳이 학교 수업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며.. 오지 말라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셨다.

물론 예상은 했지만,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서 물어본 거였는데 역시나.



하루하루 급속도로 코로나 환자가 퍼지는 가운데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편의 직장 동료의 양성 판정에 혹여나 남편도 걸릴까봐 멀쩡한 사람을 방에 이틀이나 가둬두기도 했었다.

그렇게 나름 철저하게 코로나가 얼씬도 못하게 했건만, 나를 비웃기도 하듯이 코로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딸아이에게 처음 발견되었다.



아이가 고열이 나면 급 긴장감과 함께 손 발이 바빠지고, 초 집중력이 생긴다.

먼저 마스크를 재빨리 쓰고, 격리 방에 데리고 가서 해열제를 먹이고, 주변에 소독제를 뿌린다.

자가키트로 아이를 코를 쑤시고 나서 결과를 기다렸는데, 15분이 되기도 전에 선명한 두줄이 떴다.




초 비상이었다.

내일 아침에 PCR 검사와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러 가야 했다.

그리고 모든 약속과 일정, 아이 선생님 등 전화해서 상황을 알렸다.

아이와 한방에 있기로 한건 나였다.

사실 나도 그전부터 목이 칼칼했는데, 이게 코로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래도 자가 키트는 음성이라서 아이와 잘 때는 마스크를 벗지 않고 잤다. 그게 최선이었다.



/



힘든 며칠이 지속되었다.

해열제를 먹고 열이 떨어진 아이는 금세 컨디션 회복을 하고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쉬지 않고 놀아대는데, 내가 심각했다.

역시나 아이는 PCR 검사 양성이었는데, 나도 같은 검사를 하니 양성이 나왔다.

그날 밤, 고열과 오한, 두통, 기침, 가래 등으로 고생을 했다.

격리된 방이 아닌 다른 공간에는 남편과  아들이 있다.

계속해서 음식을 방 안으로 밀어 넣어주고, 챙겨주었다.

나는 심심한 딸을 방치한 채 이불과 한 몸이 된 채 꼼짝을 못 했다.



격리 4일 차 정도 되었을 때, 남편도 목이 칼칼하다고 하는 것이다. 맙소사! 나는 의심스러우니 검사를 받으러 가라고 했다.

PCR검사는 남편과 아들 둘 다 음성이 나왔는데,

아무래도 남편의 증상이 의심스러워서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으러 갔다. 코를 지나 뇌까지 찌르는 듯이 더 깊숙이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결과는 양성.




초초초 비상이었다.

왜냐면 같은 검사를 아들도 받았는데,

음성이 떴기 때문이었다.




/




남편과 나는 마스크를 쓴 채 이 비상상황에 대해서  아들의 안전과 앞으로 생활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다.

사실 머리가 잘 안 굴러갔다. 친가와 시가에 다 전화를 해서 상황을 알렸고, 아이 따로 보살펴 줄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그러나 아들에게도 코로나 감염 여부가 확실치 않기에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는 것이 나을 수 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착잡했다.

코로나에 아직 걸리지 않은 아이를 확실치 않은 감염 여부 때문에 양성 가족과 함께 생활을 해야 한다니...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함께 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격리인 듯 격리 아닌 격리 같은 가족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들이 전해준 마음 ♥



8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은 상황 파악과 이해력이 참 좋다.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과 격리되어서 함께 생활해야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순순히 혼자 해야 하는 것들을 할 수 있다고 덤덤히 대답하는 아이다.


밥도 따로 혼자 먹어야 하고, 씻는 것도 혼자, 가장 어려운 자는 것도 혼자 자야 한다. 노는 것도 물론 혼자..


집안을 돌아다니더라도 마스크를 꼭 써야 하며, 다른 가족과는 접촉, 스킨십은 안된다는 것.


아들은 애교도 많고, 스킨십을 참 좋아해서 하루에도 열두 번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을 하지 않아야 한다.


현재 아빠가 양성이 나오고 3일째인데, 아들은 이 모든 것을 잘 지키고 있다. 그래도 다음 주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 한다.

가족이 함께 한 집에 있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을 마주하기 힘들고, 함께 하는 시간도 보낼 수 없다.


갑자기 불쑥 우리 집에 찾아온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꿔놨다.

오랜만에 오랜 시간 한집에 있지만, 이렇게 이 시간들을 보내야 한다..



/


아들이 끝까지 이 코로나 소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동안 학교에서 학원에서 양성자와 밀접접촉자로 수많은 코로나 검사를 받아왔던 아들이었다.


우리 아들이 슈퍼 면역력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정말 운이 좋은 걸까?

알 수가 없지만, 지금까지는 건강하다.


불안하고 긴장되는 양성자와 음성자와의 격리 동거생활...

나는 우리 아들이 정말로 안 아팠으면 좋겠다.

이런 고생과 노력이... 허투루 되지 않으면 좋겠다.



그냥 코로나 사라져버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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