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글을 쓰지 못했다. 재작년과 작년에 바짱, 지짱이 차례로 하늘로 떠났다. 한동안 너무 슬펐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도 어려웠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처음 경험하는 것이어서 어찌해야할지 몰랐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살아 생전에 많이 찾아뵙지도 않았다. 바짱, 지짱은 언제나 그곳에 있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 토쿠시마는 머니까 언젠가 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갈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 작년에 거의 20년만에 엄마와 토쿠시마를 가서 지짱을 마지막으로 뵈었는데, 내 생각만큼 멀지가 않았다. 이제와서 후회해봐야 소용 없지만.
이제는 ”유나짱~ 오탄죠비 오메데또!“(유나야 생일 축하해) 하는 바짱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어느 순간부터 일본어가 너무 낯설어져서 바짱과의 통화도 용기내서 가끔씩 하곤 했는데 이럴거면 더 할걸 그랬다. 귀한 연금을 모아서 내 생일이면 용돈도 보내주시곤 했는데 내가 취업을 하고 돈을 벌고도 용돈 드릴 생각을 못했다. 내 인생 살기에 바빠서 주위를 둘러보지 못했다.
작년에 마지막으로 요양병원에서 뵈었던 지짱은 너무나도 수척해져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치매로 엄마도 나도 기억을 못했다. 많이 슬펐지만 엄마가 더 슬플것이기에 티는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짱은 바짱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뿐인 사랑이란 그런걸까. 바짱이 재작년에 돌아가신 걸 지짱은 모르고 있었는데(충격이 심할까봐 말하지 않았다) 기억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바짱이 다른 곳에서 잘 머무르고 있다는 믿고있는 지짱이 안타까우면서도 그만큼 사랑한 부부였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
이따금씩 바짱과 지짱이 돌아가시면 엄마가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걱정하곤 했다. 엄마한테 너무 소중한 엄마, 아빠이기에 혹여나 그런 일이 생기면 엄마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런데 엄마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물론 우리한테 티를 안내려고 부단히 노력하시는거겠지만.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일본 문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엄마는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고, 자신은 부모님 살아계시는 동안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고 했다. 물론 하나도 후회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엄마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고, 내 생각보다 엄마는 훨씬 강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지짱이 돌아가신 후에야 바짱의 죽음까지 받아들일 수 있었다. 두분이 하늘에서 다시 만나 행복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도 밤마다 두분의 행복를 빌곤 한다. 이곳에서 하셨던 사랑을 하늘에서도 하시길 바라며, 하늘에서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