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광화문 씨네큐브에 가곤 한다. 씨네필이 아님에도 전문가가 엄선한 멋진 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특히 일본 영화도 간간히 있어서 아주 마음에 든다. 예쁜 영화 포스터는 덤이고. 영화를 보고 털레털레 나와서 교보문고까지 쭉 둘러보고 나오면 그야말로 힐링 코스다.
어제도 어김없이 오늘 볼 영화를 고르다가 일본 영화인 <새벽의 모든>을 골랐다. 예매를 하려고 보니 평소보다 천원 더 비싸서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 타이틀을 보니 ‘씨네토크’ 라고 쓰여있었다. 알고보니 감독 미야케 쇼가 방문하는 GV였다. 이 감독이 누군지 몰랐기에 고민이 되었고, 그냥 아침 조조로 영화만 보고 나와서 운동이나 할까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해보지 않은 경험을 시도하는 것에 약간 재미를 붙여서, 어려운 일도 아니니 한 번 가보자! 하고 예매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만족스러웠다. 영화도 씨네토크도.
일단 영화 주제 자체가 신선했다. 남자 감독이 그려내는 PMS를 겪는 여자 이야기라... 너가 뭘 알고?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시도 자체가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PMS를 겪는 편이긴한데 주인공처럼 일반 직장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겪는게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고. 과학 교구 회사를 두번째 직장 배경으로 삼은 것도 새로웠다. 보통 일본 영화는 일반 사무직, 잡지사, 출판사, 만화사 등이 배경인 경우가 많은데 생각지도 못한 직장이었다. 신기하게도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따뜻했는데(여주가 PMS로 급발진 해도 모두가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고 뒷처리를 착착 하는 모습이라든지), 참어른들의 따뜻함을 느끼는 동시에 환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문화가정 아이가 나오는 것도 또다른 포인트였다. 다양성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그리고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의 삶에 너무 파고드는 거 아닌가(오지랖이 심하네)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차츰 웃음기가 도는 남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참견이 때로는 도움이 되는구나 싶기도 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이유로 남에게 관심을 점점 줄이게 되는 요즘, 잠시나마 타인의 개입이나 도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뭐가 맞는 걸까... 배려라는 명목으로 방관하는 건지, 그게 ‘진짜 배려’인건지 그 선을 매번 모르겠단 말이지.
암튼 영화를 마치고 시작된 씨네토크. 일단 화장실을 가고싶었지만(ㅋㅋ) 난 사회적 지위가 있는 으른이니까 참았다. 모더레이터분이 일단 재치가 있었다. 적절한 유머와 궁금했던 부분을 긁어주는 것이 잘 섞여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영화를 보며 궁금했던 포인트(왜 과학 교구 회사를 선택했는지, PMS나 공황을 겪어보진 않았을텐데 어떻게 리서치했는지, 머리를 막 잘랐는데 다음 신에서는 왜 말끔한지 등등)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신기했던 건 감독이 ‘해보니까, 생각해보니까 그렇더라’ 하며 연출된 씬들이었다. 음 뭐랄까 표현이 어려운데, 난 영화란 감독이 철저하게 모든 디테일을 짜놓고 만든다고 생각했다. 근데 쇼 감독이 ‘여주와 남주의 연인이 새해에 남주 집 앞에서 마주치는 장면에서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두 여자 사이에 긴장감 같은게 흐르겠지만, 이 둘 사이에선 그게 안 생기더라고요. 여주의 성향 상 그런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본인이 연출했으나 마치 타자화 된 느낌이랄까? 회사 분위기가 따뜻한 것도 ‘처음부터 그 회사가 그래왔던 건 아니지만 사장 동생의 죽음 이후에 회사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시기가 있었을 거 같아요’라고 답변했다. 원작이 있어서 그런건지... 감독이 배우가 아닌 캐릭터를 진짜로 관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여튼 신기했다. 여담이지만 일부는 통역 없이도 알아듣고, 또 어떤 내용은 통역으로 알아들으며 청해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그리고 누군가 요즘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난 이 영화를 추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