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나 Jul 19. 2019

한국에서 혼혈로 산다는 것(1)

다문화 가정의 일원으로서


"이 왜구야!"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학원에 다니는 남자애한테 들은 말이다. 이름이랑 얼굴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오00.

그 날의 내가 조금만 더 성숙했다면 좋았을 것을. 나는 울면서 집에가서 엄마한테 그 날 겪은 일을 말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한테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미안할 일인가? 그 아이의 치기어린 잘못인것을.


초등학교 때를 떠올려보면 국사를 배우는 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른 부분은 다 괜찮았다. '일제강점기'를 배우는 시간은 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선생님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침략이 역사적으로 가장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반 친구들은 그냥 일본에 대해 욕했다. 그리고 일본 사람을 욕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시정해주던 선생님은 내 기억에 없다.


그래서 새 학기가 되면 우리 엄마가 일본사람인 것을 친구들한테 말해야되나 말아야되나 고민했다. 내가 일본 혼혈인 걸 알면 아이들이 덜 욕하려나. 근데 뭐, 말하나 마나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평범하고 착한데 국사 시간만 되면 스스로 죄인이 된 느낌이랄까.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다보니 나도 머리가 컸고, 일본이 만든 불행한 역사와 일본 사람, 엄마, 나 등등 많은 것을 분리해서 생각해낼 수있게 되었다. 오히려 남들과 다른 내 배경이 자랑스럽기도 해서 친구들한테 먼저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시절에 내 손에 흘리던 땀과 거친 말들은 뇌 한 구석에 남아있다. 물론 친구들도 어렸기에 그랬겠지. 하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아무튼 그렇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정확히 말하면 당시 한국 사람들에 무자비하게 해를 가한 사람들은, 일본 간부들은, 순사들은 잘못했다.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사람들은 모두 잘못하고 있다. 이건 우리 엄마도 나도 인정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역사로 인해 일본인 전체를 일반화시켜 이런저런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것을 보면 화가난다.


최근에 익산시장이었나.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모아놓고 좋은 소리를 한다는 게 '잡종 강세', 그리고 해명한다는게 '얼굴도 예쁜 튀기' 어쩌구... 뉴스를 보고 분노가 무엇인지 경험했다. 한국에선 혼혈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무슨 잘못인가? 내가 겪은 상처들을 나와 같은 입장의 아이들이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사학과를 가고싶었던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