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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인선 Moon In Sun Feb 14. 2024

"하루가 끝나면 엄마에게도 엄마를 마칠 시간이 필요해"

책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독서기록(3) 마흔에 쓰는 육아일기

11개월 아기. 늘 예쁘지만 잠이 든 모습은 더 예쁜 아가.




사실상 나의 쓰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악몽을 꾸지 않도록 잠들 때까지 옆에 있다가 가라는 아이들 곁에 누워 있자면 이대로 나의 하루가 아이들의 하루와 같이 끝나게 될까 봐 두렵다. 

품속으로 고르게 번지는 아이의 숨소리가 느껴지면 당장 책상 앞으로 달려가 뭐라도 적고 싶지만, 아이가 완전히 잠든 뒤에도 침대를 떠날 수가 없다. 


어차피 이렇게 끝날 하루였는데 왜 더 다정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다정하게 거절하면 이해해 주었을까. 너희의 하루가 끝나면 엄마에게도 엄마를 마칠 시간이 필요하다고.


“엄마도, 사랑해.” 몸과 마음으로 아이들의 고백에 답한다. 죄책감에 시달린다. 미처 끝내지 못한 내 몫의 집안일을 머리 뒤에 가득 안고서 나는 아이 대신 악몽을 꾼다. 

오늘도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런 하루도 괜찮았을까.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조혜은.

책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중에서.






♩ 엄마일기 


저는 육아 휴직을 아기 출산 예정일 한 달 반 전에 시작했어요. 회사 인사 발령 시기가 잘 맞아서 후임자가 신입사원으로 미리 왔고, 한 달 반쯤 인수인계를 하고 나니 신입사원 친구도 십 년이 훌쩍 넘은 전임자(바로 저)의 눈치를 보고, 저는 제 나름대로 일이 한가로워져서 이렇게 버텨서 뭐 하나 싶더라고요.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 내 뱃속에 꽉 차게 있던 한 달 반. 정말 오랜만에 갖는 나른하고 긴 여유로운 휴식이었어요. 저는 한 달 반동안 영화도 실컷, 음악도 실컷, 책도 실컷, 그림도 종종 그리며 지냈어요. 꼭 이십 대 대학생의 시기로 돌아간 것 같은 풍족한 문화생활이었어요.


‘임신’만으로도 이토록 많은 감정이 생기는데, ‘출산’과 ‘육아’의 과정은 얼마나 더 많은 영감이 생기게 될까. 앞으로 더 다양한 글과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야.라는 참으로 무지하며 순진한 생각을 했었죠. 다가올 6개월 동안 틈이 생기면 잠을 자야 하는 신생아시절이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아기의 잠이 길어지는 7개월부터 운동과 독서를 다시 시작했어요. 낮잠 자는 아기 곁에 누워 침대에 작은 조명을 달아 종이책을 읽었어요. 짧게 짧게 토막토막 읽어나가는 적은 양의 독서였지만요. 여전히 글쓰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은 나오지 않았어요. 


아기가 돌이 되며, 어린이집을 보내게 되었고, 그 시간 틈틈이 다시 무언가를 쓰고 그려보려 했지만, 아기의 밥을 준비하거나 청소, 빨래 자잘한 일들로 시간을 잘 쓰지 못했어요. 


늘 저를 탓했어요. 남들은 잘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SNS에서 만나는 유명한 아기 엄마들은 육아를 하면서 돈도 벌고,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사는 것 같더라고요.


나만 내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해, 내가 게을러서 그래, 하고 자책하고 체념하는 날들이 길어졌어요.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어요.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글을 쓰다가 육아로 인해 못쓰게 된 작가 엄마들은 이런 마음이었더라고요. 아기가 잠에 들면 조용히 빠져나와 무언가를 해보려 노트북 켜는 것을 성공한 손으로 꼽을 만큼 적은 밤들. 그마저도 한두 시간 만에 깨어난 아기를 달래느라 다시 침대에 들어가 잠에 든 숱한 많은 날들.


다들 그랬던 것이었어요. 아기를 재우느라 잠에 들어버린 날들. 중간에 일어나지 못했다고, 새벽에 일어나지 못했다고, 혼나는 것만 같은 유튜브의 자기 계발 강의들.


잠들지 않기 위해 애쓰다가 잠들어 버리고만 수많은 아침. 의지가 부족한 것이라고, 당분간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밀어두자고 생각했던 날들.

작가 엄마들도 다 그런 날들이었어요. 나의 밤처럼.


어떻게 매일매일을 의지와 계획대로만 살겠어요. 육아는 그렇지 않잖아요. 돌잔치를 앞두고도 하루 전 감기에 걸려버리잖아요. 한 달 전에 잡아둔 중요한 약속도 아기가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병간호로 꼬박 나의 3일이 사라지는 일도 허다한걸요.


아기를 재우다가 잠든 아침이 있고, 드문드문 새벽에 깨어나하고 싶은 것을 정리하는 오늘이 있어요.

아기를 키우느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내지 못한 우리를 너무 나무라지 않기로 해요.


내 인생에서 내 꿈이 모두 사라지지 않도록 놓아버리지 않을 만큼 드문드문 이어나가기로 해요. 

그 순간, 우리는 잠시 행복하기로 하고, 가끔 행복에 성공하고, 그러다가 자주 행복해지기로 해요.




22개월 아기와 함께 책을 읽는 일상.

읽다 보면, 쓰다 보면, 점점 좋아질 것이라 믿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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