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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인선 Moon In Sun Jun 21. 2024

26개월, 내 아이가 처음으로 미워 보였다.

마흔에 쓰는 육아일기


26개월, '아니야, 아니야'를 하던 아이는 곧 '내가, 내가' 모든지 내가 내가 하겠다는 고집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아이가 처음으로 예쁘게 보이지 않았다.


두 돌이 지나며 무한대로 자아가 형성되는지 자기 고집과 "싫어요, 아니야"가 반복되던 26개월 아기는 드디어 바닥에 드러눕고 뭐가 씐 듯이 우는 일이 이틀에 한 번 꼴로 생겼다.

그동안은 보통 집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 1시, 2시쯤 깨서 "밖에- 밖에"라고 외치며 엄청 울다가, 거실로 데리고 나가서도 진정이 되지 않아 한동안 안고 흔들고 냉장고도 열었다 닫았다 하며 30분 정도를 달래는데 기운을 쓰면, 진정이 되었다. 바로 다시 침대로 들어가 잠이 드는 날이 있고, 거실에서 2시간 가까이 놀다가 새벽 5-6시가 되어 자는 날이 있었다.


그런가 보다 했다. 

하루종일 뛰어다니느라 무릎이나 발목이 아픈 성장통인가 보다. 

자기 전 다리 마사지를 해주면 좀 낫겠지 싶은 정도였다.


오늘은 낮에 놀이터에서 놀다가 친구의 나뭇가지를 갖겠다고 해서 "이건 장미누나 꺼야, 서후 꺼 아니야. 정 갖고 싶으면 반반 나누어 갖자" 하고 나뭇가지를 똑 절반을 부러뜨리자마자 놀이터 바닥에 나뒹굴며 울었다.


10분이 지나도 진정되지를 않고, 안아달라 하여 안으면 내려놓으라 하고 다시 드러눕고 가 반복되었다. 옆에서 서후보다 한 살, 두 살 더 많은 아이의 엄마들이 조용한 데로 데려가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해서 데려갔더니 그 조용한 곳에서 더 악을 쓰고 바닥에 뒹굴며 운다. 지나가는 할머니와 손주가 우유 하나와 과자를 건네주며 "아가, 울지 마."라고 하였지만 소용이 없다.


분리수거를 버리러 나온 열 살쯤 많은 중년 부부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시끄러운가 보다.


옆에서 보던 다른 엄마가 "차라리 집으로 데려가서 그냥 울라고 내버려 두면 어때요? 지풀에 꺾여서 진정되게" 말한다.


그래, 놀이터에서도 다들 내 아이 때문에 시끄럽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이를 들쳐메고 유모차를 끌고 간다. 아이가 내 손아귀에서 미끄러져 떨어져 나간다. 내 다리를 붙들고 질질 끌려오며 무릎이고 팔꿈치고 쓸렸다. 나중에야 알았다.


겨우 집에 들어와 풀어놓으니 마찬가지.


층간소음 때문에 예민한 아랫집과 새벽에 아이가 울 때마다 자신의 방바닥이자 나의 천장을 쾅쾅 두들기는 윗집이 신경 쓰여 열어놓은 창문과 방문, 화장실문을 꽉 닫았다.


그래 이제 실컷 울어라. 


바람이 통하지 않는 집안에서 아이도 나도 땀 한 바가지. 


아이는 우는 내내 나의 다리나 배를 붙들고 있다. 울면서도 자기를 쳐다보라고 손으로 내 얼굴을 자기에게 고정시킨다. 내 귀에다 자기 입을 대고 악을 쓰며 운다. 이게 내가 알던 아기가 맞나. 얘가 지금 뭐가 씐 건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몸은 아이를 안고 있지만 (소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머릿속으로는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한다. 써야 하는 글과 들어야 하는 강의. 해야 하는 일들. 그러다 보니 또 20분이 흘렀다. 아이는 총 한 시간 악을 쓰고 나서야 내게 말했다.


"엄마, 음료수."


어제 먹던 엄마의 음료수. 자몽티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냉장고에서 꺼내서 먹인다. 꿀꺽꿀꺽. 그래, 한 시간을 악을 쓰고 울었으니 목이 마르겠지. 다 마신 아이가 또 말한다.


"밥."


그래, 밥 먹자. 친정엄마가 주말에 싸준 소불고기를 프라이팬에 굽는다.


"계란."


그래, 계란 프라이도 하자. 밥을 하는 동안 아이는 조용히 자동차 자판기를 달그락 가지고 논다. 


"밥 먹자."


숟가락에 밥 조금, 계란 조금, 백김치 조금을 담아 떠놓자 아이가 한 입에 쏙 넣고는 배시시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아이고, 잘 먹네.' 평소에 해주는 칭찬을 기대했나 보다. 아이는 진정되고, 평소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왔으나, 나의 마음이 좀처럼 평소로 돌아오지를 않는다.


다시 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올려놓은 것을 아이가 입에 쑥 넣고는 아까보다 더 예쁜 웃음으로 나를 쳐다본다. 무표정인 내가 이상하다고 이제야 느꼈는지, 이번에는 큰 소리로 웃는 소리를 낸다.


세 살 아이도 엄마의 분위기를 금세 감지해 내는구나. 이리저리 예쁜 표정을 함박 짓고, 떠놓은 밥도 흘리지 않고 쑥쑥 잘 먹던 아이는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엄마, 미안해." 한다.


"그래, 서후야. 아까는 너무 했어. 너무 많이 울었어. 바닥에 그렇게 드러눕고, 오래 울면 엄마도 힘들어."


아이의 사과와 나의 용서는 타결이 되었지만, 바로 마음이 전환되지를 않는다. 아이의 웃음이 전처럼 예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침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다. 방금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고, 내가 남은 시간 아이를 잘 볼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고생했어."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버스 한 바퀴 타고 올게."


한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씻고 나와도 좀처럼 기분이 환기되지 않는다. 맥주를 마실까, 하다가 미지근한 물에 허브티 티백을 넣는다.


26개월. 내 아이가 처음으로 예쁘지 않았다. 내 아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누구보다 높은 에너지와 체력으로, 육아책도 꾸준히 읽어가며, 부모의 인내심을 잘 연습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지금까지 순한 맛 육아였다면, 이제 진짜 매운맛 미친(엄마를 미치게 하는) 육아의 세계로 들어선 걸까. 이 매운맛 세 살 육아 세계에서 내 체력과 에너지가 잘 버텨줄 것인가. 경전처럼 읽은 내 육아책의 지식이 도움이 될 것인가.


아, 모르겠다. 오늘은 좀처럼 자신이 없는 밤이다.



맥주를 마실 걸.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맥주나 마시고 자야지.







26개월, 떼 고집 쟁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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