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동료가 물었다.
오늘은 조금 진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동료에게 DM이 왔습니다.
사실 이 질문에 바로 답변을 달 수가 없었습니다.
브런치에도 썼지만 저는 원래 경영컨설팅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흘러 흘러 PO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PO 일을 좋아한다, 싫어한다고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조금 고민해 보니 '좋아한다'는 것에 '만족한다'는 개념이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아서
1. CEO의 의견대로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있고
2. 고객 중심적으로 가치를 제공하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
이 두 가지 이유로 만족은 하고 있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동료가 다시 물었습니다.
재미는요?
동료가 이 질문을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대표님이 공유한 아티클을 읽었는데 좋아하지 않으면 감각적일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처음 '재미'라는 단어를 봤을 때는 움찔했지만, 좋아하지 않으면 감각적일 수 없다는 내용을 보니, 머릿속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답변은 이거였습니다.
재미는 없어요.
스티브 잡스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저는 스티브 잡스의 말과 대표님이 공유하셨다는 아티클의 내용에 100% 동의하지는 못합니다.
두 가지 모두 재미있거나 사랑해야만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고, 그 집요함을 위한 에너지 소모에 면역이 된 채로 일할 수 있다는 점을 기본 전제로 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두 인간의 감정에 의한 동기부여에 집중이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국 감정에 의해 결정을 내리고, 이성으로는 결정을 합리화하는데, 재미나 사랑이라는 감정적 상태가 모든 상황의 Best를 이끌어낸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냉소적인 사람이 문제에 대한 정의를 더욱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기부여는 재미만으로 되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저는 제 삶에 혹은 다른 사람의 삶에 의미 있는 일이라면, 설령 재미가 없다고 해도 꾸준하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재미는 일을 하게 만드는 input보다는, 일을 함으로써 얻는 outcome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얻을 수도 있지만 얻지 못할 수도 있는 outcome이요.
저도 경영컨설팅을 처음 시작할 때 밤을 새도 피곤하지 않고 더 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제 의견에 반대하고 다시 설득하는 과정에서 왠지 모를 희열도 느낀 적도 있고요.
하지만, 아직 PO를 하면서 그 재미를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책임감과 부담감이 더 커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프로덕트의 성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모두의 앞에서 발가벗겨진 채로 일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 기분에서 오는 부담감도 상당하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료의 말을 빌리자면 PO의 책임과 부담은 회사라는 가정의 K-장녀 같은 느낌에서 오는 책임과 부담이라고...)
아무튼, PO의 길을 고민하고 계시다면, 책임과 부담에 대해 얼마큼 감당하실 수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이 재미가 없고, 좋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아니, 그럴 가능성이 더 높거든요.
하지만 재미가 없어도, 좋지 않아도, PO의 책임과 부담에 기꺼이 만족하실 수 있다면...
환영합니다, PO의 세계로.
오랜만에 진지한 고찰을 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질문을 한 동료의 역량과 실력에 항상 놀라곤 했던 터라, 이런 고민이 있을지는 상상도 못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좋은 질문을 던져준 덕분에 짧은 시간이지만 일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일하는 모든 분들의 생각도 궁금하네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으신가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재미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