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편 :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땐 과감하게, 당신은 늘 옳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결혼할 때에는 다 그렇지.
파혼을 결정하기 전에 내가 결혼에 대한 이런저런 불만을 이야기하면, 내 친구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한참 쏟아낸 불만에 돌아온 답이 보통 이러했으므로, 나는 내가 속이 좁거나 이상하거나 철이 없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나에게 윽박질렀던 것 같다. 남들도 다 하는 결혼인데, 나는 왜 이렇게 작은 일들이 못견딜만큼 싫은거지. 그건 다 내가 모자란 탓이야.
하루는 연남동에 있는 작은 술집에서 친구들과 아는 언니와 술을 마셨다. 나는 시어머님의 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빠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는데, 어머니가 집 근처에 있는 공동묘지에 있는 꽃다발을 주워 오셨고, 누군가 그걸 신고했으니 어머니를 모시고 경찰서로 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경찰관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정말 기겁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놓고 간 꽃다발을 들고 오셨다고? 공동묘지에서? 나는 이 일화가 너무 기막혔다. 저 분은 도대체 어떤 분인거지, 종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이해 안 되는 게 있으면 안 된다고 나에게 윽박지르던 시절이라, 이해하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서 어머님의 저 행동을 놓고 짧은 시나리오를 썼다. 저 사람이 저렇게 해야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술을 마시며 이 이야기를 하자 옆에 있던 친한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그건 너무 가식적인데? 그냥 솔직하게 이해가 안 되면 안 된다고 해. 이해하기 싫으면 이해하기 싫다고 하고. 별 것도 아닌데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일을 가지고 힘들다고 하질 않나... 너 남자친구 정도면 정말 좋은 사람이야. 나라면 그런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살겠어."
이렇게 말하면서 언니는 주변에 있는 수많은 불행한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결혼하자마자 갑자기 시댁을 모시고 살게 된 이야기, 아이를 낳았는데 남편이 돌보지 않는 이야기.... 너는 이 케이스에 비하면 행복한 거니까, 그 정도의 이야기로 불평하지 말라는 게 골자였다.
언니를 포함한 수많은 나의 친구들도, 남편의 친구들도 다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너의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니가 잘해줘야 돼. 문득문득 나는 모두에게서 사랑받는 좋은 남자와 결혼하면서, 이 정도 어려움도 감내하지 못하는 건가, 나는 왜 이렇게 그릇이 작을까 생각했다. 그럴수록 억지로 더 결혼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나는 이 정도는 감내할 수 있어, 이 정도는 견뎌낼 수 있어야지.
나는 원래 잘 참는 성격이 아닌데, 그래서 그런지 곧 폭발했다. 모두에게.
파혼을 겪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너무 심각하게 나를 몰아붙였구나. 내가라떼 한 잔을 담을 수 있는 머그컵 일 수도 있고, 라면 하나를 끓일 수 있는 냄비일 수도 있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수족관일 수도 있는데. 나는 무조건 내가 대서양이나 지중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계속 윽박질렀던 것 같다. 나는 왜 고작 머그컵밖에 안 되는 거야? 왜?
나는 나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나는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지, 나는 어떨 때 가장 행복한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좋은지, 이런 감정은 왜 싫은지 왜 좋은건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게 없으니 사람들이 말할 때 휩쓸려 다녔다. 아, 모두가 좋다고 말하는 남자니까 좋은 남자겠구나! 아, 호텔에서 결혼하는 게 좋다고 하니까 좋은 거겠구나!
파혼하고 나서 내가 가장 많이 한 노력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거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남편은 내 주위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내가 선택한 파혼이었고 오빠는 파혼을 겪으며 유례없는 초우울모드에 들어갔으므로 나는 자책의 바다에서 휩쓸리다가 익사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나는 셀프 채찍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지만 정말 죽을 위기가 되자 눈이 반짝 떠졌다.
내가 모두에게 상처를 준 건 알겠고 내가 나빴던 것도 알겠지만 나는 그 때 결혼을 그대로 강행하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그 죽을 것 같은 심정을 경험했으므로 이렇게 살아서 멀쩡히 돌아다니는게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모두가 나를 욕하는 상황이더라도 나는 나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줘야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껴도 나는 그럴 수 있다고, 그런 감정과 생각은 당연하다고 나를 다독여야지.
이상하게도 그 마음을 먹었던 순간부터, 그리고 주기적으로 나를 칭찬하고 나를 다독이면서 나는 조금씩 나아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정말 최악으로 힘들었던 순간에서 스스로 나를 보호하는 선택을 하고 나니,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아, 나는 최악의 순간이 닥치면 나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겠구나. 어떤 순간에도 나는 나의 편이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설령 결혼을 하고, 내가 모아놓은 걱정 리스트 1~10에 해당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내가 보내는 응원과 위로를 받으며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
그 때 다시 읽었던 책들은 정신과 전문의이자 안산에 치유공간 '이웃'을 만든, 정혜신 선생님의 책이었다. 선생님의 책을 관통하는 문장은 '당신은 늘 옳다.' 였다.
내가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고 그랬는데 그, 부모를 죽이고 싶다는 감정도 옳으냐? 옳지. 옳고 말지. 사람이 무슨 악마적인 기질이 있어서 자기를 길러준 부모를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렇게 느낄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느냐. 부모님도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것이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감정을 확 막아버리는 거죠. 그런 감정을 갖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메세지잖아요.
그런 마음까지 들었구나, 너 굉장히 편치 않구나, 이유가 있었겠구나, 라고 하면 그 이유를 얘기하기 시작하죠. 그러다보면 자기 감정이 나오기 시작해요. 그렇게 꺼내놓고 나면 압력 밥솥에 압력이 꽉 차 있다가 마치 뜨거운 김이 빠져나간 것처럼 사람이 여유가 생기죠. 훨씬 홀가분하죠. ‘중2병’이란 말로 어떤 감정이 있으면 눌러버리면 안돼요. 잘난척 하는거야? 허세야? 이런 식으로 규정하거나 판단하거나 평가해버려서,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거예요. 모든 감정은 이유가 있어요.
'정혜신 인터뷰. 상처받고 아픈 20대, 우리의 감정은 언제다 옳다'에서 발췌
그 때의 나처럼 파혼을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누가 무엇을 말하더라도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게 말하는 작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면, 그렇게 말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당신은 언제나 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