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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Jul 18. 2021

시어머니가 객관적으로 나쁜 분은 아니지만 -1-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아도 불편할 수 있으니까

저희 시어머니는 객관적으로 나쁜 분은 아니신데요.

시댁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요새 들어 공통적으로 이 문장이 자주 보인다. 그 글의 요지는 이렇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게 불편하고, 그냥 넘길 수 있을 만한 일인 것 같은데 찝찝하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제대로 된' 감정인지 판별해 달라는 것. 우리 시어머니가 나에게 딱 그런 분이다.


어머니는 내가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간 날, 반갑다면서 나를 꽉 껴안아 주셨다. 예쁘다, 예쁘다를 연신 하시며 나를 온몸으로 환영해 주셨다. 결혼식날에서도 내 대기실로 들어와 인꽃이 따로 없다며 감탄을 하셨다. 그 당시에는 아버님이 워낙 큰 빌런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는 어머니가 상대적으로 히어로처럼 보인 것도 있긴 했다.


어머니는 용돈을 얼마 이상 꼭 줘야 한다거나, 느이 시아버지와 연락을 끊으라거나, 할아버님의 무덤을 이장해야겠다거나 하는, 새댁이 듣기에는 당장 보따리 싸들고 도망가고만 싶은 이야기를 하시는 분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너네만 잘 살아라, 나는 괜찮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에 가까웠다.


소소하게 '시'를 느낀 건 여러 번 있었으나, 어머니와 나의 나이 차이는 무려, 약 50살.


우리 사이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다는 강과 벽과 문화의 차이가 백만 개쯤 있으리라고 이미 시작도 하기 전에 일부분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나는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 보자면,


오빠가 먹다 남긴 밥을

자연스럽게 나에게 먹으라고 하신다거나


무더운 날이나 아주 추운 날이면

오빠에게 맛있는 걸 좀 해먹이라고 하신다거나



이런 종류의 일들이다. 순간적으로 읭? 싶지만, 나이 드신 본부장님과 대화하면서 읭? 하고 잊어버리는 것에 가까운 그 느낌. 오빠가 남긴 밥을 먹으라고 하실 때에는 배부르다고 거절했고, 맛있는 걸 해주라고 하실 때에는, 배달음식을 시켰어도 맛있는 거 해 먹였다고 말씀드리고 그냥 웃었다.


참고로 우리 집 메인 셰프는 나다. 나는 미각이 뛰어난 스타일은 아닌데 원하는 요리가 정확하게 있는 스타일이라 자연스럽게 내가 요리를 한다. 이를테면 김치찌개에는 꼭 오뎅이 들어가야 하며, 만약 돼지고기나 표고버섯이 들어가면 울면서 안 먹는 귀찮은 스타일. 오빠는 나보다 미각이 까다롭지만 주면 주는 대로 먹는 스타일이라 다행히 밸런스가 대강 맞는다. 그리고 오빠의 요리는 굉장히 창의적이어서 유교걸인 내가 도저히 즐겁게 먹을 수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이를테면 밥에 우유를 붓고 피자 소스를 얹는 스타일이랄까...?


아무튼, 내가 어머니한테 가지는 가장 큰 불만은 이거였다.

안부전화.


결혼을 하고 우리는 각자의 집에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했다. 시아버지와 우리 집은 자연스럽게 횟수가 줄어들었다. 다른 접점이 많아서 굳이 전화를 드리지 않아도 계속 연락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멀리 사시기도 했고, 다른 접점이 딱히 없어서 꼬박꼬박 전화를 드렸다. 처음에는 몰랐지, 그 습관이 내 발등을 찍을 거라는 걸.


어머니는 독특한 습관을 하나 가지고 계신다. 무언가를 아예 드리지 않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시지만, 무언가를 드리기 시작하면 나는 이걸 꼭!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는 점이다. 특히 안부전화가 그랬다. 나는 너네 집에 찾아가지도 않고, 너네가 나에게 용돈을 주지도 않으니 안부전화는 항상 해야 해! 토요일 오전에!


대부분은 숙제를 치루는 마음으로 토요일 오전에 전화를 드리고 끝냈지만, 토요일에 출근을 한다거나 아버님 요양원에서 긴급 콜이 온다거나... 아무튼 치매 노인의 주보호자가 된 입장에서 때때로 전화를 드린다는 걸 놓치거나, 기억은 하고 있어도 상황이 도저히 안 되는 때가 종종 있었다.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치매 노인의 보호자로 산다는 게 얼마나 버라이어티한 일인데, 어머니는 알고 싶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오로지 안부 전화를 요구할 때에만.


하루는 요양원에서 오늘 좀 와달라고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아버님이 몇 주가 지나도록 목욕을 안 하려고 하신다는 거였다. 독방을 사용하시지만 어쨌든 공동 생활이므로, 어느 정도의 청결을 유지해야 했다. 그때는 요양원에서 무슨 연락만 오면 그렇게 무서웠다. 언제든지 방 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아버님을 모시고 목욕탕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버님이 어지럽다며 길가에 차를 잠시 세우라고 하시고는, 길에 내려 또 갑자기 화를 막 내셨다.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너희랑 같이 살고 싶다고. 작은 방 한 칸 내어주면 되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나를 여기에 버려두고 이게 무슨 꼴이냐고.


그 와중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토요일인데도 전화가 안 와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혹시 싸웠니? 라는 말을 덧붙이시며.


그때 나는 처음으로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삼십 대 초반의 내가 아흔 살의 치매 노인의 주보호자가 된 것만 해도 서러운데, 그 케어를 하고 있는 와중에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 걸까. 어머니가 날 좀 이해해 주면 안 되는 걸까. 토요일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머니가 다시 콜백을 할 때에는 항상 얼마간은 화난 목소리고, 얼마간은 다그치는 목소리고, 상황을 설명하면 걱정이 되어서 그렇지, 하고 수그리신다. 하지만 그 수그림 속에서도 하나의 작고 단단한 목소리가 살아 숨 쉰다.



"내가 너네한테 바라는 게 일주일에 전화 한 통인데, 그게 그렇게 어렵니?"



그게 불편한 게 아니라, 어머니가 마치 빚을 독촉하시는 것처럼 안부 전화를 내놓으라고 하시는 게 불편한 건데.


내가 혼자 계신 어머니의 안부를 살펴드리겠다는 호의로 시작한 이 습관이 나에게 빚이 되어 돌아오는 게 못내 불편했다. 그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과 전면적으로 대치되기 때문이다. 나의 원칙은 이렇다. 내가 호의로 한 일을 누군가 권리처럼 요구한다면, 그 일을 즉각적으로 회수할 것.


나는 원래 타고나길 오지랖이 너르고 깊게 태어나서 안 해도 될 일을 사서 만들어 고생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내 호의와 친절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는 성격이 그러니까,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이번에도 와 줄 수 있지? 이번에도 고쳐줄 수 있지?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 일이지만. 저번에도 고맙다고 얘기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한 거 아냐? 다음에도 또 당연하게 날 도와줘야지.


그런 일은 여러 번, 여러 번 반복되었다. 어머니는 어느덧 나와 좀 친해졌다고 생각하셨는지 아침 7시에 전화를 하셔서 오빠는 모르게(!) 내가 어머니 세금 관련된 일을 도와달라고 하신다거나, 외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에도 전화를 거셔서 오빠에 대한 불평불만을 털어놓으셨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는 부족하니, 전화를 더 하라는 말씀도 언뜻언뜻 하셨다. 서서히 게이지가 차고 있었다. 네이버나 다음에서 안부 전화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글을 찾아봤고, 다른 사람들의 사이다 대처법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했다.


대체적으로 좋게, 웃으면서 넘어가려고 했는데, 실제로 어머니가 가장 외로우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님에게는 어쨌든 우리가 있었고, 친정은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니까. 조금만 더 참자,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어머니가 나쁜 분도 아니니까, 다른 건 다 나한테 잘해 주시니까.


그러나 차근차근 차오르던 게이지는 다시 낮아지지 않았다. 그저 폭발할 뿐... 어버이날에 어머님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또, 일주일에 한 번으로는 부족하니까 전화 좀 자주자주 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더 이상 내 입을 말릴 수 없었다.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 우리 존재 파이팅!


어머니는 숟가락을 내려놓으셨고, 더 이상 전화하라고 말씀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오빠는 옆에서 내 눈치만 봤다. 나는 빙그레 썅년에게는 대부분 모두가 당황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되새기며 방긋방긋 웃었다.


그렇게 세 번의 격돌을 더 겪은 후,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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