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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May 23. 2020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 너무도 황망하게.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온 이별에 대해서 

수요일 새벽 다섯시 반이었다. 갑자기 요양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이야기였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몇 번씩이나 고비를 넘기고 또 넘기시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괜찮으실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빠는 아들로서의 감이 있었는지 그 전화를 옆에서 들으면서 엉엉 울었다. 오빠를 안아서 다독여주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지금 CPR을 하고 있으니 어서 오시라고, 어서 오시라고. 


올림픽대로를 타고 일산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아버님이 그래도 오빠를 기다려 주시겠지, 마지막이니까. 하지만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님은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손은 따뜻했고, 뼈만 남아 있는 것처럼 앙상했다. 그 때가 아침 7시. 황망하게 서 있는 오빠에게 말을 전해주었다. 돌아가신 이후에도 청각은 살아있다는 말이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하라고. 듣고 계실 거라고.


오빠는 가만히, 정성스럽게, 아주 따뜻한 손길로 아버님을 여러 번 쓰다듬었다. 좋은 곳으로 가세요. 편안한 곳으로 가세요. 편안한 곳으로 가세요.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 멍하니 오빠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님은 늘 아흔 다섯 살까지는 살고 가시겠다고 하셨고, 왠지 모르게 아버님이 그 때까지는 살아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 나중의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도 모든 것이 황망하고 당황스럽고 허망했다. 





친구네 커플이 아주 작고 사랑스러운 블랙 푸들을 입양해왔다. 처음에는 너무 작아서 만지는 것도 겁이 났는데,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이 조그만한 생명체가 없었던 삶으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친구네가 갑자기 일정이 생겨서 며칠 이 강아지가 우리 집에 머물다 갔는데, 엄마 아빠랑 따로 떨어져서 낯선 곳에서 있는 것도 서러운데, 혼자 있어야 하면 너무 서러워 할 것 같아서 회사에 반차를 냈다. 혹시 모르니 집에 CCTV를 설치해 두고, 틈틈히 봤다. 강아지는 내가 나간 다음에 한참 동안 문 앞에서 앉아 있다가 기운 없는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거실로 돌아와 앉아 있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내내 내 모든 신경은 그 강아지에게 닿아 있었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면서도 내내 애가 탔다.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조금만 기다려. 이모가 금방 갈게.


택시에서 내려서 CCTV를 켜고 공동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귀가 밝아서 그런지, 내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 귀를 쫑긋 세웠다.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서 우리 집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 앞으로 와서 꼬리를 흔들었다.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문을 열자 나에게 달려와서 온 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꼬리를 흔들고 나에게 달려들고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우리 집 토끼. 


그 토끼같은 강아지를 보면서 나는 왜 계속 아버님 생각이 났을까. 이 강아지에게는 이렇게까지 정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되어, 애가 타고 걱정스럽고 그러면서도 행복한데. 왜 아버님을 대할 때에는 그런 따뜻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버님도 늘 문을 바라보다가 나와 오빠가 도착하면 저렇게 폴짝폴짝 뛰는 마음으로 좋아하셨을텐데. 왜 나는 강아지는 그렇게 예뻐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아버지에게는 그런 마음을 갖지 못했을까. 다만 한 순간이라도. 


강아지가 엄마아빠에게 돌아가고 난 다음에 나는 세 시간 동안 펑펑 울었다. 남겨진 배변패드를 보면서도 엉엉 울었다. 문득문득 아버님 생각이 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며칠 후에는 유튜브에서 강아지 동영상을 찾아 보다가, 강아지의 마지막 순간을 영상으로 담은 화면을 보게 되었다. 강아지는 가만히 누워 있었고 엄마와 아빠는 차마 그 강아지를 안지도 못하고 손을 덜덜 떨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다가 강아지는 마지막 힘을 내어 멍멍, 멍멍 하고 짖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음은 알 것 같았다. 그 영상을 보면서 또 한참 울었다. 아버님이 혹시라도 돌아가시면 나는 이런 간절하고 서글픈 마음으로 아버님을 보내드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무의식은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걸까.





장례식에서 오빠와 나란히 서서 손님을 맞을 때, 나는 꼭 세상에 둘만 남은 고아인 남매가 된 기분이었다. 상주는 우리 둘 뿐이었다. 오빠는 중간중간 아빠를 잃은 어린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그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 슬픔을 짐작해 보려고 했다. 나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버님, 좋은 곳으로 가세요. 이번 생에서의 힘들고 서럽고 섧은 모든 일들은 다 여기에 남겨두시고 편안한 곳으로 훨훨 가세요. 그동안 미워해서 죄송했습니다. 이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다면 더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드렸을텐데. 말 한 마디라도 더 다정하게 해드렸을텐데. 이별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모르고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이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여러모로 죄송해요. 아버님과 함께 하는 동안 저는 참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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