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불안장애인 나의 엄마
상담 선생님은 제일 두려운 상황 다섯 가지를 꼽아 보라고 하셨다. 첫 번째로 내 입에서 나온 건, 특이하게도 자전거였다.
나는 원래 나무늘보 재질의 인간이라 제일 좋아하는 것은 집에 있는 것이요,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침대에 가만 누워 있는 것이다. 운동? 코웃음치고 넘겼지만 무족권(!)적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 계기가 생기고야 말았다. 그거슨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아기돼지 사건이다.
스물 아홉 살의 어느 날, 회사 - 집을 반복하던 내가 뜬금없이 서글퍼졌다. 그리고 클럽에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 대 중반에 춤을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가 클럽에 입성해 본 적이 있는데, 저엉말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번쩍번쩍하고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다. 타고나기를 집순이 유교걸로 태어난 나에게는 너무 번쩍거리는 무엇이었던 것이다. 그랬는데, 서른을 목전에 두고 갑자기 가고픈 곳이 클럽이라니. 암튼 그래 그럼 가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옷가게에 들렀다. 그리고 대충 클럽st의 옷을 골라서 입어봤는데,
살이 올록볼록 튀어나온 한 마리 아기돼지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옷가게 언니는 연신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나보고 잘 어울린다고 했다. 나는 정말 아무리 옷을 팔고 싶다고 해도 진짜 이건 아니지 않나요? 양심 가출하셨음? 이라는 눈으로 그 언니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 날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오전은 계란, 점심은 일반식, 저녁은 사과, 그리고 매일 자전거 1시간씩.
그러나 나무늘보에게 자전거는 쉽지 않은 법. 타다가 정말 하염없이 넘어졌다. 넘어지는 것도 무섭지만, 내가 누군가를 혹시 다치게 할까봐 늘 긴장이 됐다. 항상 일정한 속도를 내려고 유지하고, 전방과 옆을 주시하며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자전거 다이어트는 한 1년 정도 계속했고, 대충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몸이 되어 그만 뒀다. 그래도 그 때 배운 자전거는 내 힐링 뽀인트가 되어, 마음이 아쉽거나 서러운 날이면 종종 타러 간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뜬금없이 두려운 상황을 묻는 말에 자전거가 자꾸 나와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왜죠....? 상담 선생님은 눈을 감고 자전거를 타는 나를 관찰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약간 긴장하면서 익숙한 그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나를 감시하는 엄마가 있었다. 마치 장승처럼, 저승사자처럼.
그러니까 내 무의식에서 엄마는, 항상 나를 감시하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엄마는 불안장애를 겪고 있었다. 엄마가 생각하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엄마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딱 그만큼의 딸로 내가 움직이기를 바랬다. 내가 그 울타리의 문을 열고 나가거나, 울타리 밖의 사람과 말을 섞거나, 심지어는 민들레 씨앗이 바람을 타고 울타리 안에 도착했을 때에도 파르르 파르르 떨며 나를 비난했다. 그리고 나는 그 포인트를 도저히 맞출 수 없어서 그냥 내가 모든 것을 다 잘못하고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게 편하니까. 엄마를 탓하는 것보다 나를 이상한 애라고 치부하는 게 더 쉬운 일이니까. 내가 문제라면 스스로 고칠 수 있으니 언젠가는 이 늘 불안한 관계가 해소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혼수를 준비하면서 오빠와 내 베개를 고르다, 좋은 베개가 있어서 엄마와 아빠 것 하나씩을 샀다. 커버는 집에 있는 걸 쓰면 되겠지. 그리고 엄마한테 베시시 웃으면서 베개를 내밀자, 엄마는 화를 확 냈다. 커버를 안 사오면 어떻게 하니? 너는 생각도 없어. 커버가 없는 베개가 말이 되니? 돈 줄테니 커버 사와.
나는 익숙하게 아, 내가 또 무식하게, 뭘 모르고 잘못을 했구나. 나이가 서른 가까운데 베개를 살 때 커버를 꼭 챙겼어야 하는데. 나는 엄마한테 죄송하다고 말하고 커버는 내 돈으로 사오겠다고 했다. 마침 다음 날이 상담을 하는 날이라, 상담소에 베개를 들고 갔다. 선생님이 무엇이냐고 물으시기에 짤막하게 이 에피소드를 말씀드렸더니, 엄마가 그런 성격이시구나, 하셨다.
엄마가 그런 성격이시구나, 그런데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있을까?
본인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나라면... 나라면 일단 고맙다고 했을 것 같았다. 혹시 마음에 안 들면 혹시 바꿀 수 있냐고 물어봤을 거고, 집에 있는 커버가 안 맞으면 혹시 커버가 필요할 것 같은데 수고스럽겠지만 판매처를 알려 주거나, 혹시 사다줄 수 있냐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그 생각을 하니까 문득 퍼즐이 챡챡챡 맞춰졌다. 우리 엄마는 정말, 특이한 성격이구나! 아니 뭘 그런 일로 화까지 내고 그런다니!
아무튼 이런 엄마의 성격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문장 하나를 새겨두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나는 못난 사람이다. 나는 모두 틀렸다.
(평소에는 즐겁게 쓰는데, 이 얘기를 꺼내려니까 왠지 모르게 힘이 든다. 쓰다가 커피를 마시고, 쓰다가 잠시 눕고, 쓰다가 잠시 딴짓을 하면서 쓴다.)
어떤 일을 하고 나면 그래서 나는 늘, 내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분석한다. 다음에는 잘못하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나의 기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득히 높고, 실제의 나는 그 기준의 때만큼도 따라가지 못해 늘 헉헉거리고 늘 버겁다. 그래서 무언가를 할 때는 늘 부정적인 결론을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게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다. 나는 또 이 필드에서 어떤 쓰레기같은 나를 만나게 되려나, 이런 생각.
그래서 무언가를 할 때,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는 늘 방어적으로 변한다. 이 관계도 늘 부정적인 결론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면서 끊임없이 염려한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까지. 생각해 보면 결혼을 할 때, 나는 시부모님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그야말로 파국이 시작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순간들도 있었지만, 아닌 순간들도 있었다.
이렇게 끝맺음을 하면 너무 쓸쓸할 것 같아서 잠시 티저를 내려놓고 가자면, 지금은 저런 부정적인 습관들이, 끊임없는 불안들이 차츰차츰 나아지고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회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