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만두 찾아 삼만리
얼렁뚱땅 채식 생활을 한지도 거의 4년이 다 되어간다.
내가 삼시 세끼 요리해 먹을 때는 비건에 가까웠지만
남이 요리한 걸 먹는 지금은 대충 채식 생활을 하고 있다.
고기를 굽는 날이면 옆에서 양파를 구워 먹고
닭도리탕을 먹으면 감자랑 당근만 주워 먹는 식이다.
이제 이런 큰 덩어리 고기는 눈 감고도 피하지만
여기저기 숨어있는 작은 고기 조각들은 골라내는 게 참 어렵다.
카레나 짜장에 들어간 간 고기는 한 세월이 걸리더라도 건져내서 동생한테 줄 수 있지만
아무리 현란한 젓가락질로도 골라낼 수 없는 고기가 있으니
그건 바로 만두 속 고기이다.
우리 집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떡만둣국을 끓여먹는다.
아직 어떤 브랜드에 정착하지 않아서 엄마가 마음대로 사는데
그게 복불복이라 어떤 만두는 고기가 있는 듯 없는 듯 대충 만두 맛이구나 하고 먹을 수 있지만
어떤 건 고기 냄새가 진동해서 아무리 후추를 뿌려대도 감출 수가 없다.
그래서 안전하게 김치만두를 사보기도 했지만
매운맛을 싫어하는 우리 가족 입맛에 대부분의 김치만두는 짜증 나게 매웠다.
그렇지만 냉동만두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떤 책에서 인류 거의 대부분의 문화권에는 탄수화물로 야채와 고기를 싸먹는 음식이 있다고 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 있는 것이다.
곡식과 채소와 고기를 한 입 거리로 알차게 싸매놓고
구워 먹고 튀겨먹고 쪄 먹고 국에 넣어먹을 수도 있는 만두는
단순히 고기 냄새가 난다고 냉동실에서 없애기엔 너무나 아까운 인류의 발명품이다.
그래서 대충 무슨 만두든 배를 채우면 됐다는 식으로 먹어치워왔던 지난날들.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식물성 대체육 관련 뉴스가 눈에 띄게 늘어났고
그 시류가 나의 비건 만두 찾기 여정에 불을 지핀 것이다.
비건 만두가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코로나로 시내 대형마트의 출입을 자체적으로 금한지도 1년,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에는 식물성 어쩌고 식품은 들어오지 않는다.
두 번째로 가까운 마트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도 매한가지일 것.
그렇다고 만두 못 먹어서 죽는 병에 걸린 것도 아니라 냉동식품 배송비를 왕창 내면서까지
논비건 만두보다 더 비싼 비건 만두를 시켜 먹고 싶진 않았다.
아무리 채소값이 금값이라고 하지만 왜 야채만두는 하나같이 일반 만두보다 비싸야 할까?
그냥 만두에서 고기만 빼면 오지게 맛이 없어 돈 주고는 도저히 사 먹을게 못되나...?
여튼 그래서 사람들이 이 만두가 낫다 저 만두가 낫다 하며 비건 만두 평가전을 벌이고 있을 때
나는 모니터 뒤에서 실물 만두를 볼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세월이 지나고 우연히 생긴 상품권을 쓰려고 간 롯데마트에서 드디어 채소 만두를 만나게 됐다.
오랜만에 간 시내 대형마트에는 무려 식물성 대체육 코너가 있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식물성 소시지, 패티, 불고기 등등 여러 가지 풀고기가 있었는데
고기 형태로 된 건 역시 비싸서 역시 서민음식 하고 만두만 한 봉지 골라왔다.
옆에는 사조 채담만두도 있어서 고민이 됐는데 그냥 오뚜기가 익숙해서 이걸 집어왔다.
첫 시식은 아주 혼란스러웠다.
왜 만두에서 짜장 맛이 나냐.
그리고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고기 비슷한 것도 들어있었던 것 같은데
고기를 안 먹다 보니 고기 질감도 낯설어져서 그걸 씹는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게다가 매우 아삭한 것도 씹혔는데 성분표를 보니 물밤이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식재료의 식감인듯 했다.
만둣국으로 끓여서 어찌어찌 다 먹긴 했지만
또다시 채식 만두를 사자고 말하기에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으므로
오뚜기 그린가든 탈락!
그다음에 먹은 만두는 사실 내가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으나
역시 야채 주제에 괘씸하게 비싸서 안 사 먹었던 생협 채소 만두다.
내가 시중 모든 만두를 먹어본 건 아니지만 여태까지 먹었던 것 중에 제일 좋아했던 게 생협의 일반 만두였다.
객관적인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어릴 때부터 생협 맛에 길들여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여튼 생협만두에 대한 좋은 기억과 믿음으로 구입했다.
근데 이것도 짜장 맛 났음.
야채 몇 개가 모이면 짜장이 되는 공식이 있는 것일까.
식물성 단백질이나 물밤같은 아삭한 건 없어서 좋았다.
하지만 피자 맛 군만두도 참을 만했는데 짜장 맛 만두는 뭔가 이상했다.
엄마가 고추 향이 짜장향 비슷하게 나는 것 같다고 했는데
생협만두에는 피망이 들어가긴 했지만 그린가든 만두에는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짜장에는 고추가 안 들어가지 않나?
비건 만두 공장에서 돌려쓰는 향미유 같은데 뭔가가 있는 것일까.
오뚜기 그린가든의 안 좋은 기억을 불러일으켰으므로
생협 채식만두 탈락!
그리고 수개월이 지났다.
고작 두 브랜드를 먹어보고 나서 비건 만두에 대한 희망을 접어놓았을 때쯤
풀무원이 식물성 만두를 출시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그 후 마트에 갈 때마다 만두 냉장고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또 시골마을 살이의 한계를 느끼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엄마도 어디선가 그 소식을 듣고 풀무원 만두를 사 왔다.
그러나 '얇은피'만 기억한 엄마는 그거면 다 채식 만두인지 알고 집어왔는데
풀무원 이놈은 얇은피 만두 시리즈를 오지게도 많이 내놨던 것이다.
그렇게 얇은피 고기만두를 한 봉지 먹고 나서야
우리는 제대로 된 얇은피 두부김치만두를 먹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두부만두가 이런 만두인지 나는 몰랐다.
만두에는 보통 다 두부가 들어가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는
생전 처음 보는 두부 무스 형 만두에 깜짝 놀랐다.
비건 베이킹 영상을 보면 두부를 갈아서 크림치즈나 생크림 비슷한 무언가를 만들기도 하는데
저게 대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던 차에
이 만두소가 그런 거 비슷한 질감이겠구나 싶었다.
재료를 아주 곱게 갈아서 하나의 페이스트를 만들고 김치를 조금 썰어 넣은 것 같은 만두소가 들어있는데
한입 베어 물면 아주 고운 김치 비지찌개를 베어먹는 맛이 난다.
정말로 얇은 피로 속을 위태롭게 감싸놓아서 터지기도 잘 터진다.
그래서 국에 넣으면 물에 불어서 위험하다.
실제로 하나가 터졌었는데 보통은 만두가 터지면 완자 같은 속이 둥둥 떠다니는데
이 만두는 그 속이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졌다.
근데 굽다가도 잘 터진다.
얇아서 좋지만 얇아서 위험한 만두다.
그 질감에 익숙해진다면 맛은 괜찮다.
김치만두라 그런지 우려했던 짜장 맛은 안 나고 그냥 조금 매운 김치만두 맛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콩고기 같은 고기 대체물이 유난스럽게 씹히지 않아서 좋았다.
성분표를 보니 대두단백같은 것이 있긴 한데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가족이 그 질감에 익숙해지지 못해서 내가 다 먹어치워야 했으니
풀무원 세모 두부김치만두 탈락!
그리고 작년 말 비비고에서도 비건 만두를 출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예전에 비비고 만두를 먹어보고 너무 맛없어서 기대를 안 했는데
하필이면 설날 즈음에 대대적인 세일을 한다는 글을 어디서 본 바람에 구입하게 되었다.
회원가입하면 준다는 추가 할인쿠폰, 무료배송 쿠폰 같은 것에 속절없이 홀리는 사람이 나다.
그렇지만 할인 적용 가능 금액을 맞추느라 먹어보지도 못한 만두를 여섯 봉지나 사야 해서
맛이 없으면 어떻게 다 먹어 치우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걱정이 잊힐 만큼 기나긴 설 배송 기간이 끝나고 만두가 왔다.
예전에 택배로 만두를 왕창 시킨 적이 있었는데 반쯤 해동된 상태로 와서 그런지
맛이 간 만두를 먹은 적이 있었는데 (원래 그런 맛이었을 수도 있음)
이번에는 아주 꽁꽁 언 채로 잘 도착했다.
딱 점심때 택배가 와서 바로 쪄 먹기로 했다.
짜장 맛일까 아닐까 무척이나 긴장되는 마음으로 먹었는데
내가 기대하던 일반 만두에서 고기만 뺀 맛 딱 그 맛이었다.
비지 같은 부드러운 소도 아니고
야채 사이에 콩고기 조각이 숨어있지도 않았으며
짜장향도 나지 않는
일반 만두와 별 차이가 없는 그냥 만두였다.
같이 온 일반 고기 포함 만두도 같이 쪘는데
둘 다 먹어본 엄마 말로는 채식 만두를 먹다 일반 만두를 먹으니 확실히 고기 냄새가 난다고 했다.
조금 아쉬운 건 야채가 가득한 느낌은 없다는 점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누가 말 안 해주면 고기 넣은 거라고 믿을 만큼
채소채소같은 느낌은 없다.
그렇지만 고기고기느낌은 아니다.
그래서 아빠는 좀 심심한 것 같다고 했는데
나는 반대로 그런 고기의 무거운 맛이 없어서 채식을 좋아하는 것이니
내게는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김치왕교자는 역시 좀 맵고 자극적이다.
그냥 맹 왕교자를 식초 간장 찍어 먹는 게 좋았다.
다른 가족들의 만두까지 내가 먹어치우지 않아도 됐으니
비비고 플랜테이블 만두 재구매!
그래서 지금 우리 집 냉동실은 만두로 꽉 찼다.
오늘 두 번째로 시킨 만두가 도착해서 이미 90%가 꽉 차있던 냉장고에
만두 열 봉지를 추가로 쑤셔 넣었다.
이 만두들을 다 먹어갈 때쯤
또다시 세일이 시작되기를 바랄 뿐이다.
맛있는 비건 만두를 찾아 나선지 근 일 년
드디어 마음에 드는 만두를 찾아서 마음이 한 층 더 푸짐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