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지의 세계 May 01. 2022

혼자 보내는 휴일

좀 더 나다운, 행복한 인간이 되는 길

 업무 특성상 주말에 일하고 주중에는 쉰다. 이렇게 쉬는 사람이 많지 않으므로 휴일은 대부분 혼자 보낸다. 처음엔 주말에, 좋아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혼자 보내는 휴일의 맛을 안 뒤로는 지금처럼 지내는 시간도 즐기게 됐다. 고요하고 어딘지 모르게 심심한 듯한 휴일. 하지만 실은 홀로 부지런한 하루. 이제는 하나의 루틴처럼 자리 잡은 휴일은 이런 모습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단 머리부터 질끈 묶는다. 일을 하는 날이었다면 어떻게든 출근할 힘을 내기 위해서 이것저것 아침상을 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쉬는 날에는 배가 고프면 언제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간단히, 먹고 싶은 것만 먹으려 한다. 시리얼이 될 수도, 그냥 과일과 우유가 될 수도 있다. 이대로만 먹으면 늘씬이 가 되는 건 시간문제겠군, 생각한다. 하지만 안다. 오늘 하루는 길 것이고, 나는 심심함을 이기기 위해 평소보다 뭔가 더 먹을 것이다.

 

 짝꿍이 출근을 하고 나면 환기를 시키고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넣는다. 세탁기가 윙윙 소리를 내면 향초를 하나 가져다 피우고 청소기를 집어 든다. 오늘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하루 종일 있을 공간이다. 어젯밤에 못 본 척했던 먼지도 빨아들이고, 각종 얼룩도 지운다. 소파나 침대에 앉은 먼지를 털어내는 일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이 먼지들이 어제저녁에 내 입에 이미 상당수 들어갔을 생각을 하면 뜨악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애써 다행이라고 생각해본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털어내고 있잖아...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신나는 팝송이나 재즈를 들으면서 몸을 움직이면 어느덧 신이 난다. 이래서 마음이 심란할 때 일단 몸을 움직여 보라고 하는 거구나. 그동안 들었던 좋은 조언과 명언을 되새기며, 고요한 마음 상태로 흥겹게 청소를 한다.

 

 청소가 다 끝나면 잠깐 침대나 소파에 누워 점심을 시킨다. 쉬는 날, 집 냉장고에 있는 음식은 아무리 맛있는 것일지라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배달이 접수된 것을 확인하면 빨래를 널고 그대로 누워 뒹굴거린다.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영상을 보면서 누워있는 그때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아, 물론 점심 배달은 예외다. 방금 사진만 보고 입맛을 다시며 시킨 그 음식을 기다린다. 오직 음식 배달 소식만이 그때의 나를 방해할 수 있다.


환기 시키면서 밖을 보니 벚꽃이 가득 피어있었다. 이런 여유는 휴일에나 느낄 수 있는 선물이다.

 

 밥을 다 먹고 난 후엔 책을 읽거나 잔다. 보통은 책을 읽다가 자니까 그 두 가지 일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만나야 할 때 이 시간을 이용하기도 한다. 어떤 지식이랄지, 영감 같은 인풋이 들어오는 시간이다. 그래선지 휴일 오후에 쓴 메모나 계획은 스스로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로 멋지다. 아 물론 그 멋진 다짐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건 또 다른 문제인데... ‘이건 나답다’고 정의하는 몇 가지 모습들은, 바로 평일 오후에 한 생각들 덕분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좀 더 소중히 오후 시간을 지키고 써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휴일은 남편이 등장하면서 끝난다. 퇴근하고 온 짝꿍을 신나게 맞이해주고, 요리 당번인 그가 저녁을 준비할 동안 내가 오늘 얼마나 늘어지게 놀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것을 짝꿍은 자랑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내가 일하는 주말에는 발화자와 청자가 바뀌기 때문에 짝꿍은 나의 자랑을 잠자코 들어준다. 아마 돌아오는 주말엔 일터에서 돌아온 내가 그의 자랑 섞인 일상을 들어야 할 것이다.

 

 혼자 보내는 휴일은 어떤 힘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청소, 빨래 같은 일로 내 일상을 지탱할 힘을 얻는다. 출근이란 핑계로 집 돌아보기를 소홀히 해도 그럭저럭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독서 등의 과정으로 뭔가 더 나아질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내가 조정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 이라는 점에서 어떤 안정감도 느낀다.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세상, 그래도 나를 위한 시간 정도는 마음대로 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이 글도 바로 그런 휴일에 썼다. 내일도, 비록 회사에 시간과 노력을 저당 잡힌 사람으로 돌아가겠지만, 홀로 보내는 시간 덕분에 조금 더 나다운, 행복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민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용기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