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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세계 Apr 14. 2023

육아하며 갓생 사는 법

어렵지 않아요, 준비물은 행운!

 최근에 갓생(God生)이라는 말을 들었다.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갓생산다고 한단다.


 그렇다면 나야말로 요즘 갓생을 산다. 일단 오전 6시 30분 즈음 기상. 지난밤 잔뜩 축축해진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밥을 먹인다. 아이와 좀 놀아주다 보면 8시 즈음 1차 낮잠 시간이다. 아이가 자면 양육자는 좀 쉴 수 있는데, 꼭 그 시간에 자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는 함께 육아휴직을 낸 남편이 아이를 돌보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빠와 노는 동안 나는 운동을 다녀오거나, 책을 읽거나, 할 일을 한다.


 엄마의 육아시간은 오후 3시부터 다시 시작된다. 아직 아이가 1~2시간마다 한 번씩 자고, 누워만 있어서 그렇게 버겁지는 않다. 오후 6시 즈음, 저녁 시간이 되면 남편과 번갈아가며 식사를 하고 아이를 씻긴다. 배부르게 먹고 깨끗하게 씻은 아이는 금세 노곤해진다.


 아이가 저녁잠에 든 것을 양육자들끼리는 육퇴, 육아 퇴근이라고 한다. 보통 오후 8시 전후다. 아이가 자고 나면 남편과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한 후 각자 시간을 보내다 잠든다. 아이가 조금 늦게 자면 “오늘은 야근을 했네요.”하고 농도 친다. 나는 보통 자정 즈음에 잠자리에 드니까 육퇴 후에도 자유 시간이 조금 있다. 그때 시간을 낭비하며 하고 싶은 걸 한다. 엄마로서의 삶과 개인의 삶이 균형을 이룬다. 스스로 언제 돌아봐도 ‘돌아가고 싶다’고 할 것 같은 순간을 지나고 있다.



 “육아가 체질인가?”


 다들 행복해하는 (심지어 출산 전보다 얼굴빛도 좋아진) 나를 보며 한 마디씩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내가 잘나거나, 가정적이거나, 부지런해서가 아니다. 우선 남편의 역할이 크다. 그가 공동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준 덕분에 ‘아이 돌보기’와 ‘나의 시간 누리기’를 동시에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균형감은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잠깐. 그러나 나는 남편을 이 시대 최고의 사랑꾼이라며 마냥 치켜올리고 싶은 게 아니다. (아, 물론 그에게는 그렇게 말한다. '당신 덕분이야. 당신이 최고야. 진짜야!') 그가 육아에 충실할 수 있는 건 그냥 ‘그럴 수 있어서'이다. 남편은 육아 휴직을 비교적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직장에 다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육아 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해고를 당하거나 주변 동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았다. 언제 돌아올 거냐며 재촉을 받지도 않았고 휴직이 끝났을 때 돌아갈 자리를 걱정하지도 않았다.


 아이를 향한 국가적 지원이 많다는 것도 우리의 행복에 기여한다. 육아 휴직 급여는 한 사람 당 한 달에 100만 원 남짓. 이것만으로는 당연히 이전과 같은 소비 생활을 하며 지낼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 아동 수당이니 뭐니 해서 아이에게 드는 비용이 절감되니 아직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


 그리고 원래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하며 검소하게 살아온 우리 부부는 고정 지출 비용이 적다. 이 전에 '400만 원으로 결혼하기'란 브런치북 글에서도 구구절절 적은 바 있는데 고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 좀 지독하게 했다. 시적으로는 부부가 함께 육아휴직을 쓰면서 세 달 동안은 월급을 그대로 받기도 했다. 그래서 휴직 급여와 조금 모아둔 돈으로도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요즘 행복하네. 왜지? 이런 이야기나 하면서.


 만약 우리보다 검소하게 사는데도 육아가 어렵다면 결국 육아휴직이 경력 단절, 해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에 따른 각종 부담을 개인이 져서 그럴 것이다. 우리는 출산, 육아를 위해 쉬는 기한이 정해져 있어서 마음 놓고 아이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그것도 둘이 같이 쓴다. 그러니 부담은 반으로 준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 흔치 않다, 는 건 꽤 중요한 포인트인데 결국 아이를 낳고 누리게 된 이 행복은 '노력'이나 '잘남'으로 얻는 게 아니라, 어쩌다 운빨이 맞아서 왔다. 정말 어쩌다 정부 지원이 확대되는 시기에 아이를 낳았고, 어쩌다 그런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직장과 직업을 둘 다 얻었고, 어쩌다 보니 또 아이를 낳아서... 만약 우리가 운이 나빴다면 아이를 낳기나 했을지, 이렇게 온전히 행복한 마음으로 육아를 했을지 잘 모르겠다. 자신이 없다.



 "아이는 축복이요, 행복이다."

 "아이는 낳기만 하면 자기가 알아서 큰다."


 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다. 나는 아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말은 곧 '행복을 운에 맡겨보세요.' 하는 것과 같게 들린다. 내 주변에도 독박 육아를 하는 사람, 어린아이를 어딘가 맡기고 일하러 가는 사람 등등 여러 부모가 있다. 육아 자체도 힘든데, 외부적인 걸 다 고려하다보면 외롭고, 지치고, 우울할 것 같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떻게 하면 그 부담을 덜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내 능력 밖에 있는, 물음표로 끝나는 큰 제안들 열심히 떠올랐다. 이를테면 정부 혜택이 실상에서도 잘 적용될 수 있도록 기업과 가정에 더 지원해달라거나 뭐 그런 것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을 떼기도 전에 막연해지니 대신 이렇게 말해보기로 했다.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아이 있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나는 안다. 이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나서도 운에 기대지 않는,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확실한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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