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지의 세계 May 01. 2023

나의 평화를 위해, 네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할게

 얼마 전에 서울 친정집에 혼자 다녀왔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니고,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이 붙은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그 소식을 우연히 접하고 홀린 듯 표를 예매했는데 그 기한이 코 앞으로 온 것이다. 표를 예매할 땐 옆에 있던 남편의 부추김이 한몫했다. 다녀와. 2박 3일 다녀와.


 아이는 어떻게 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나는 6개월이 채 안 된 우리 아이를 떠올렸다. 에이, 내가 돌보면 되지. 물론 그의 능력을 의심할 건 없었다. 남편은 이미 하루의 절반을 아이와 함께 보내는 프로 양육자였다.


 하지만 아이가 괜찮을까. 인터넷으로 대충 찾아보니 양육자와 떨어진 것을 인지하고 스트레스는 분리 불안 시기는 대략 6개월부터 라고 되어있었다. 6개월이라. 지식은 내 행동에 확신을 더해줬다. 아빠도 있고, 아이가 아직 6개월은 아니니까- 하면서 서울행 티켓을 끊었다. 저녁 6시에 서울로 출발해서, 다다음날 아침 9시 즈음 다시 우리 지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실제론 1박인 셈이에요. 서울에서 만난 사람이 모두 아이를 걱정했다. 어떻게 그 어린아이를 놓고 왔느냐는 것이다. 나는 일정을 ‘실제로는’, ‘따지고 보면’과 같은 말로 축소했다. 물론 축소라고 보기도 애매한 게 아이는 보통 저녁 7시 즈음 잠자리에 드니까 사실상 서울에 도착한 첫날은 육아를 완벽히 하고 온 셈이었다. 또 3일째 되는 날엔 아침에 출발하니까 점심부터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는 혼자가 아니었다. 남편이 밀착 케어를 하고 있었으며 내게도 아이의 소식을 계속 보내주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쓰는 육아 앱은 새로고침만 하면 아이가 언제 밥을 먹었는지, 잠은 언제 얼마나 잤는지 다 알 수 있었다. 사진도 계속 받았다. 한마디로 계속 확인하고 있는데- 아이는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이네, 그래도 대단하다. 요즘 엄마, 아빠라 그런가? 나와 데이트하던 친정 엄마는 마치 낯선 신 풍속도를 접한 구 세대 사람처럼 반응했다. 방금까지 세대를 잊고 신나게 수다 떨던 우리였는데. 순간 벌어진 거리를 인지하고 말했다. 엄마는 그래도 이런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고 느끼는 거지?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아기는 어떻게든 엄마가 없다는 걸 알거든.


 주변의 모두가 ‘아이는 어쩌고?’라고 묻는 상황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만약 이번 서울행에 대해 글을 쓴다면 왜 엄마에게만 아이의 안부를 묻는 건지 쓸 생각이었다. 남편이 타지로 혼자 출장을 가거나 했다면 ‘아이는 어쩌고?’란 질문을 훨씬 덜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육아는 엄마의 몫인가? 그럼 나는 뭐, 어디 가지도 말라는 거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 괜한 전투력이 솟는 기분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날 선 마음은 아이를 보는 순간 모두 사그라들었다. 일단 아이가 너무 예뻤다. 아이가 분리불안이 있을까 봐 걱정했더니, 내가 있었나 봐. 아이를 안고 마구 볼을 비볐다. 아이는 이전처럼 나를 향해 크게 웃어줬다. 우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간 것 같았는데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잠자리에 들 즈음부터 아이는 무조건 내가 안고 있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바닥에만 내려놓으면 낑낑, 칭얼 칭얼을 반복했다. 분명 깊이 잠들어있었는데 어떻게 자기를 자리에 내려놓는 걸 아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한 번은 그냥 크게 울기도 했다.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나는 진땀을 흘리며 아이를 오랜 시간 안고 있어야 했다. 그날은 아이가 잠도 유독 늦게 들고, 자주 깼다. 긴 밤이었다.


 그냥 내가 ‘아기는 어떻게든 엄마가 없다는 걸 안다’는 문장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욱신거리는 팔을 주무르며 새벽에 다시 육아 앱을 들어가 봤다. 내가 집을 비운 날의 흐름을 살펴보니 새로운 게 보였다. 아. 아이가 이날 평소보다 1시간이나 늦게 잤네. 낮잠도 아주 짧게 짧게 자고. 남편은 아이가 평소처럼 종종 웃고 잘 먹으며 잘 지냈다고 했다. 엄마를 따로 찾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사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태도와, 지난 행적을 보니 우리가 몰랐던 아이의 마음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랑 잘 지낸 것도 사실이지만, 어쩌면 나를 그리워한 것도 사실이 아닐까. 왜, 우리도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번갈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너무 기쁜 상황이라고 하여 슬픈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너무 슬프다고 하여 기쁜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기쁜 와중에도 문득 그립거나 슬프거나 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숫자로 표시되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놓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걸 놓치고선 ‘희생하지 않는 부모가 된다’느니, ‘다른 양육자와 평등한 양육자가 되겠다’느니 그런 말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어쨌든 양육자이면서! 아이를 우선 고려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남편이 괜찮다고 했어도, 내가 더 면밀히 살펴야 했는데! 자책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속에서 치는 감정의 파도는 남편이나 다른 사람이 말할 때보다 더 크고 아프게 느껴졌다.


 바로 다른 외부 일정 하나를 취소해 버렸다. 아이 없이 혼자 다니는 건 좀 나중에 하지 뭐. 다짐의 밤이 지나고 다음날, 나는 아이를 평소보다 더 많이 안아주었다. 아이는 내게 폭 안겨 주변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 너는 얼마 전에 세상에 나와 매일이 신기하고 불안하겠구나. 어쩌면 네가 기댈 곳은 나나 아빠뿐이겠구나. 그러면 나는 당분간 너에게 무조건적으로 다 내어주는 사람이 되어도 좋겠다. 그런 생각과 행동이 쿨하지 못하고, 희생에 가까운 것이어도 괜찮겠다. 그래야 내 마음이 훨씬 편하겠다.


나의 평화를 위해서, 네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해볼게.

햇살을 받아 따뜻해진 아이의 뒤통수에 조용히 입술을 가져다 댔다.

작가의 이전글 육아하며 갓생 사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