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원 Aug 22. 2019

브랜드 인지심리학

'장기기억 속에 심고 싶은 브랜드'를 꿈꾸며

김치전 vs 김치전


백반집에서 ‘오늘의 추천 밥상’을 시켜 놓고 반찬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국과 밥이 나오기 전, 밑반찬으로 멸치, 어묵 볶음, 조각 김치전이 나왔습니다. 반찬 3종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백반 메뉴의 서비스로 나오는 저 조각난 김치전은 더 달라고 하면 공짜로 더 주는데, 팬으로 부쳐 바로 내놓는 김치전은 왜 만이천오백원을 받을 수 있는 걸까.


두 김치전 사이에서 한 가지 발견한 차이점은 고객이 김치전을 만나는 접점에서의 ‘경험의 방식’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조각 김치전은 김치전을 가위로 잘라서 ‘반찬’이라는 그릇에 담겨졌고, 일반 김치전은 팬에서 갓 부쳐진 모양 그대로 ‘요리’라는 그릇에 담겨져 나왔던 것입니다. ‘본질’은 같더라도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 즉 프레임이 달랐던 것이죠. 브랜드의 소울과 몸체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저로서는 김치전을 곱씹으며 브랜드의 ‘인지심리학’적 진실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인지심리학은 넓은 의미에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소비자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브랜드의 매출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생각해볼 때,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단순히 감성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뇌가 외부에서 유입되는 정보를 어떤 프레임으로 인지하느냐에 따라 사물과 현상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공짜 반찬의 프레임으로 해석된 김치전은 ‘서비스로 응당 받아야 할 가치’였고, 피자 등의 요리의 프레임으로 해석된 김치전은 ‘만원이 넘는 요리로서의 가치’로 인식된 것이죠.


인구통계학적 특징(Demographic factor)에 근거해 특정 집단을 타겟으로 삼고 일정한 메시지를 던지는 마케팅이 가능했던 과거와는 달리, 타겟 소비자가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파편화된 미디어와 과잉 정보의 시대에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브랜드를 사랑해줄 ‘마음’ 을 갖게 한다는 것은 영화 ‘인셉션’에서 타인의 꿈에 들어가 잠재의식을 조종하는 일 만큼이나 요원해 보입니다. 어제 먹은 점심식사 메뉴가 무엇었는지 기억하기도 힘든 ‘망각 종용의 시대’에 우리 브랜드에 필요한 인지심리학 차원의 전략은 무엇일까요?


# 편애하고, 반대하며, 개입하라 (Love One, Not Everyone.)


모든 브랜드는 그 제품, 서비스만의 기능적 편익과 정서적, 감성적 편익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억과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는 브랜드는 기능적 편익은 (당연하다는 듯) 뒤로 숨기고 정서적으로 소비자와 연대(emotional tie)할 수 있는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이제는 너무도 많이 회자되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바이블이 되어버린 애플의 ’1984’ 광고에는 월등한 성능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다만 조지 오웰이 그린 디스토피아적 소설 ‘1984’를 모티프로 삼아 디스토피아적 테크놀로지의 세계가 아닌 세상을 바꾸려는 꿈을 꾼 사람들, 때론 미치광이 소리를 들을지라도 자기 목소리를 낸 (“think different”) 역사적인 혁명가들을 한명 한명 보여주며 자신들이 누구인지 말합니다. 그리고 이 스토리는 애플의 페르소나가 됩니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를 모티프로 혁명과 혁신을 이야기하는 1984년 애플 컴퓨터 광고 


애플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가치관에 ‘동조’할 수 있는 사람들을 ‘편애’하고, 기존의 체제를 ‘반대’하며 사람들을 애플의 세상에 ‘개입’시켰습니다. 메모리 용량과 성능으로 경쟁하고 커뮤니케이션하던 시대에 컴퓨터 회사가 아닌 애플을 그 누구도 아닌 ‘애플’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은 자신들에게 동조할 수 있는 ‘사람’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넘어 세상을 바꾼 혁명가들과 자신의 페르소나를 동일시하는 애플의 지면 광고 


1980년대가 감성 광고의 시대였기 때문에 애플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게 자리매김했을까요?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에도 ‘사람’에 집중하는 애플의 모습은 여전합니다. 카메라의 업그레이된 성능을 알리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애플은 일반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풍경을 의미있게 담아 자신의 라이프 로그를 쌓아가는 creative minority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카메라 성능 광고가 아닌 사소한 순간도 특별하게 간직하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폰 광고


판매하는 제품은 퍼스널 컴퓨터에서 아이폰으로 바뀌었지만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사랑하고 편애하는 사람들을 계속 애플은 ‘편애’해 왔던 것이지요. 자문해 봐야할 일입니다. 우리 브랜드에게 부정적인 사건이 생겼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설마 그럴리가’ 라는 부사를 문장 앞에 붙여줄지 말입니다. 여러분의 브랜드를 ‘편애’해주는 사람들, 혹은 우리 브랜드가 ‘편애’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익숙한 콘텐츠, 새로운 프레임 (Make familiar Unfamiliar.)


우리 브랜드를 ‘편애’해줄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소품종 다량생산, personalization이 보편화되면서 하루에도 수천, 수만개의 제품과 정보가 쏟아집니다. 인간의 뇌가 새로운 정보를 해석할 때, 장기 기억속에 있는 ‘프레임’에 이를 비춰 이것이 안전한지 위험한지, 선택할지, 말지를 판단하듯, 우리 브랜드를 쉽게 인지시키면서도 새롭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경험하고 보여주는 방식에도 그만의 전술이 필요합니다.


복순도가와 장수막걸리는 모두 ‘막걸리’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복순도가를 즐기는 사람들과 장수막걸리를 즐기는 사람들은 극명히 나뉩니다. 두 브랜드 모두 진심을 다해 쌀막걸리의 전통을 이어가고자하는 브랜드일 것입니다. 다만 다른 것은 제품을 보여주는 ‘프레임’입니다. 다른 막걸리들이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 맛을 첨가해 ‘밤 막걸리’, ‘귤 막걸리’ 를 내놓을 때, 복순도가는 복순도가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주는 뉘앙스와 경험에 집중합니다.


샴페인의 탄산감과 용기 쉐입으로 일반 막걸리와 다른 차원의 경험을 제시하는 복순도가


일단 복순도가는 한모금 마시는 순간 느껴집니다, ‘아 탄산의 청량함이 강하게 느껴진다’. 라고요. 용기의 쉐입도 일반적인 막걸리의 카테고리가 아닌 목이 길게 잘 빠진 샴페인 보틀을 연상하게 합니다. 복순도가는 커뮤니케이션 비주얼에 있어서도 전통주 잔이 아닌 와인잔이 함께 포토라인에 등장하고, 그 옆의 사이드 메뉴로는 김치가 아닌 ‘올리브’가 곁들여집니다.


'모던함', '특별한 날', '고급스러움'의 프레임으로 브랜드를 커뮤니케이션하는 복순도가


막걸리라는 본질에 또다시 ‘막걸리’의 프레임을 입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축제’, ‘특별한 날’, ‘고급스러움’의 이미지를 갖는 ‘샴페인’이라는 프레임을 맛, 용기 쉐입, 포토 스타일, 메뉴 구성 등 모든 경험 요소에 입혀 같은 것도 다르게 느끼게 한 것이죠. 디에디트의 에디터가 복순도가를 ‘조선의 돔페리뇽’이라고 별명을 붙인 것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 브랜드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100가지 옵션을 고민하기에 앞서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를 어떤 ‘프레임’으로 보고 경험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당신을 하나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일 (Make people dive into your world.)


유통업계의 플라스틱 과용을 반대하며 2012년 ‘zero waste supermarket’의 비전으로 시작된 독일의 작은 슈퍼마켓 브랜드 Original Unverpackt의 등장 이후, 미국, 유럽 뿐 아니라 국내에도 이러한 포장을 없애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상점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형 할인점, 백화점, 곡물 파트 매장에서는 Original Unverpackt가 보여준 판매 방식과 유사하게 필요한 만큼의 양만 덜어서 가져갈 수 있는 판매 형태들도 눈에 띄게 보입니다. SNS 스와이핑 한번이면 지구 반대편에서 누가 어떤 컨셉의 브랜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Original Unverpackt가 오리지널리티를 잃었을까요? 어찌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매순간 피드가 업데이트되는 세상에 가장 갖추기 힘들면서도 가장 필요한 자질이 ‘차별성’이 아닌 ‘지속가능성’ 또는 ‘끈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Zero Waste Supermarket'을 비전으로 2012년 시작된 베를린의 Original Unverpackt 슈퍼마켓


Original Unverpackt는 zero waste supermarket을 운영하는 것을 넘어 비전에 대한 믿음을 다양한 ‘지속가능성’이라는 전지구적 테마로 확장해 온라인 매거진을 운영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확장하고 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zero waste supermarket을 열고싶은 사람들을 위해 온라인 강좌를 190 유로에 판매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었습니다.


Zero Waster Store 운영 노하우를 전세계에 전파하는 온라인 강좌 비즈니스 모델로의 확장


어차피 언젠가, 누군가는 우리 브랜드를 카피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외관으로 우리와 경쟁자를 구분하도록 놔두는 것이 아닌, 우리의 ‘가치 체계’와 ‘세계’로 그들을 끌어들이는 매력과 그를 위한 지속가능한 노력이 아닐까요?


소비자를 뭘로 꼬실까가 아닌 우리를 편애하는 어떤 ‘부족’을 만들 것인가. 익숙한 콘텐츠를 어떻게 새로운 프레임으로 경험하게 할 것인가. ‘카피가 쉬운(copyable)’ 브랜드가 아닌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것인가. 이 모두는 매순간 새로운 정보를 주입받고 삭제하는 피곤한 우리의 뇌가 우리 브랜드를 ‘장기기억 속에 저장하고 싶은 브랜드’로 만드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것입니다.


당신이 제시하는 브랜드의 프레임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되기를. 



Brand Inspirer, 김 혜 원 

Founder of brand consultancy, not a but b 

hyewonaloof@gmail.com 


작가의 이전글 낯설게 보면 브랜드에 날이 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