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히 보편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서의 브랜드 이야기
2019년이 밝았습니다. 세상은 더 빠르게 변화하고, 그 속에서 중심을 잡는 일은 더 요원한 일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브랜드들도 어려움을 겪는 일은 매한가지일 겁니다. 지금 우리는 잘 가고 있는걸까. 곧 우리를 따라잡을 경쟁자가 생기지는 않을까. 새로 브랜드를 시작하려는 상황이든 브랜드의 각을 새로 다잡으려 하는 상황이든 모두 고민하는 것이 브랜드의 ‘컨셉’일텐데요. 그 컨셉을 다잡는 데 있어 중요한 한가지가 뭘까.
떠오른 단어는 다름 아닌 ‘좁음’이었습니다.
광활한 지구를 넘어 화성까지 넘보고 있는 ‘넓음’의 시대에 왜 ‘좁음’일까. 브랜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는 보편성을 갖지만, 반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수십만의 팔로워를 갖고 싶다면 단 한명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좁고 깊은’ 의미와 감각을 갖추어야 합니다. 대략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일반적인 가치와 말들이 아닌, 해당 영역에 있어 깊은 공감과 문제의식을 가진 단 한명을 감동시킬 수 있는 좁고 깊은 메시지와 경험 말입니다.
아무리 많이 팔아도 수지가 맞지 않는 게 책일진데, 그것도 금싸라기 도쿄 땅에서 책을 한권만 판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많은 매체에서 관심있게 소개되어 지금은 많이 알려진 일본의 모리오카 서점은 일정 기간동안 단 한권의 책만 판매하는 서점입니다. 서점의 주인인 모리오카 요시유키씨는 도쿄에 있는 커다란 헌책집에서 일하는 동안 ‘도무지 모르고 낯선 책’이 너무도 많아 ‘우리가 알 수 있는 책’ 이란 손에 쥐는 모래알처럼 아주 적기 때문에 하나라도 제대로 경험하자는 동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책 가운데 알 수 있는 책이란 매우 적으니, 매우 적은 책 가운데 책집지기가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책 하나를 두는 곳으로 꾸리면서 그 책에 대한 연상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전시까지 곁들입니다. 더 많이 읽거나 갖추기보다는 우리 눈앞에 있는 책과 삶을 더 찬찬히 보면서 아끼자는 시선이 담겨있습니다.
다수의 책을 많이 팔자가 아닌, 한권의 책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경험을 나누자는 개념으로 서점의 정의를 ‘좁혀’감에 따라 모리오카서점에 들리는 소비층도 단순히 독자만이 아닌 회화나 조각, 도예 작가, 카메라맨, 디자이너 등 다양한 크리에이티브 분야의 사람들이 전시 장소로서 가게에 흥미를 보이게 되며 더 깊이있고 넓은 문화 콘텐츠 공유의 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모리오카 요시유키씨는 이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책을 구경하는 것이 아닌 그 책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좁힘’으로써 ‘넓어진’ 브랜드의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이뮤는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Nendo 같이 정제되고 혁신적인 제품 디자인을 선보이는 스튜디오부터 국내의 스티키몬스터랩처럼 캐릭터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디자인 영역을 펼쳐가는 스튜디오도 있습니다. 많은 디자인 스튜디오 중에서 ‘오이뮤’를 소개하는 이유는 오이뮤가 세상에 선보이는 디자인이 어떤 일관된 ‘스타일’이 있다는 의미를 넘어, 디자인을 하는 이유와 의미 자체에 대한 깊은 공감 때문입니다. 오이뮤에서 처음 선보인 디자인 제품은 다름아닌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던 ‘팔각성냥’이었습니다. 왜 다른 팬시한 소재가 아닌 ‘팔각성냥’이었을까.
TV에서 하나 남은 팔각성냥 공장이 곧 문을 닫을 것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접한 오이뮤의 신소현 대표는 ‘아, 저 공장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이라는 마음으로 무언가에 홀린듯 팔각성냥을 새롭게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사라지는 옛 것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다’는 마음이었다죠. 브랜드의 이름이 OIMU인 것 또한 ‘Oneday I Met You’, 즉 우리 삶에 관계와 인연이 있었던 과거의 가치를 현재와 잇는 일, 잊혀져가는 문화적 가치와 사양화된 2차산업이 회복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함입니다. 팔각성냥에 이어 미니 향로, 선향, 노방 등 과거의 오브제들을 현대적 라이프스타일로 재해석해 출시한 제품들도 눈에 띕니다.
식스티세컨즈가 매트리스와 침구류 브랜드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무릎을 탁 치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60초 안에 잠들게 해준다니. 이보다 더 구체적이고, 좁으면서, 강렬한 브랜드 네임이 어디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이효리의 ‘Just 1 Ten Minute’보다 강렬한 ‘초단위’ 마케팅이죠. 현대인들의 불면증은 날로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배게에 머리만 대도 잠이드는 사람이 부러워지는 세상입니다.
식스티세컨즈라는 브랜드 네임은 ‘좁아서’ 좋은 만큼 그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위험부담도 큰 네임입니다. 60초 안에 재워준다더니 하나도 안 그렇잖아? 라고 느끼면 낭패니까요. 다행히 식스티세컨즈는 그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브랜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먼지까지 신경쓸 정도의 깨끗한 환경의 공장을 찾았고, 예약제로 운영되는 스토어는 직원의 눈치나 다른 고객의 방해 없이 충분히 제품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사용자의 수면 습관이나 취향, 가족 구성원의 변화에 따라 세심하게 맞출 수 있는 레이어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브랜드의 사명 역시 ‘좁아서 멋있’습니다.
“좋은 인생을 보장할 수 있는 근거는 좋은 하루에서 시작한다고 믿고,
좋은 하루는 좋은 잠에서 시작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꼭 식스티세컨즈 스토어에 가서 충분히 ‘좋은 잠’을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기 위한 노력은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을 걷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대중을 모니터나 데이터 상의 숫자 혹은 연령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내 곁의 혹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 당사자 1명의 입장에서
깊고 좁게 파내려가다보면 그 터널에 밝은 불이 하나둘씩 켜지는 경험을 하게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 그 관심의 밀도가 브랜드의 깊이를 더하고, 그를 중심으로 세심하게 디자인된 취향의 각도까지 더해진다면 그 브랜드의 기본기이자 컨셉은 그 누구보다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브랜드의 컨셉을 세공하기에 앞서 얼마나 ‘좁은 각’에서 생각하고 있을까요? 깊어지는 겨울만큼 각자의 브랜드를 보다 좁고 깊게 들여다볼 때입니다.
Brand Inspirer, 김 혜 원
Founder of Brand Consultancy, not a but b
hyewonaloof@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