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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이라는 옷을 입고

대학생에서 아버지까지

by JB

스물일곱 개월 된 아이가 최근 말문이 트였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몇 개의 단어로만 긍정과 부정을 표현하던 아이가

이제는 제법 복잡한 문장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KakaoTalk_20250722_225944766_07.jpg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누리 '너 뭐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누리가 떠올랐다.

누리도 그랬다.

"야옹"이라는 하나의 소리로 배고픔, 외로움, 기쁨, 불만을 모두 표현했다.

높낮이와 길이만으로 나는 누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누리는 내 말을 다 이해했다.

지금 내 아이와 정확히 같은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누리를 키울 때는 몰랐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나는 이미 누군가를 돌보는 연습을 해왔구나.

밥 주고, 화장실 치우고, 아프면 병원 데리고 가고.

물론 아이는 훨씬 더 복잡하고 섬세한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은 누리에게서 배웠다.


열여덟에서 서른여섯이 되는 동안, 나는 여러 벌의 옷을 입었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직장인에서 경영진으로, 그리고 남편과 아버지라는 옷까지.

옷을 바꿀 때마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가장 큰 변화는 대학원을 마치고 삼성에 입사했을 때였다.

9시부터 6시까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서 일한다는 것.

대학원 시절에는 밤낮없이 일했지만 그건 내 마음대로였다.

하지만 회사는 달랐다. 수많은 사람들과 논의하며 복잡하고 큰 프로젝트를 해결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이 자랐다.


2021년 8월, 스타트업의 경영진이 되면서 또 다른 옷을 입게 되었다.

서른두 살이었다. 직원일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의사결정들이 이제는 보였다.

회사 전체의 방향성과 수익성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들.

특히 기회를 포기하는 결정들을 내려야 할 때의 무게감.


가장 큰 변화는 사고방식이었다.

학생 때는 '최고의 경험', '최고의 연구 성과'를 추구했다면,

이제는 자원의 한계 안에서 '최고의 가치'를 생각한다.

돈과 시간의 제약 속에서 현실적으로 이익이 되는 의사결정을.

어쩌면 이것이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일까.


2020년 2월, 나는 남편이라는 옷도 입었다.

그리고 2023년 4월, 아버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더 이상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되었고,

이 일을 멈추는 순간 소중한 일상들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부담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힘들어도 버텨내는 힘이 생겼다.

특히 아이의 웃음을 볼 때면 그랬다.

이 웃음과 지금의 가족생활을 지키는 것, 그것이 내 가장 큰 책임이자 행복이 되었다.


누리가 유일한 가족이었을 때를 떠올린다.

사실 외롭다기보다는 위안이 되었다.

나 혼자일 때 누리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하지만 누리는 내가 마음 쓴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었다.

부담 없이 받기만 하는 사랑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 자체가 마법 같다. 같이 웃고, 같이 밥 먹고, 장난치는 하나하나의 순간들이.

하지만 동시에 이 행복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따라온다.

마음의 짐이지만, 이 행복에 대한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누리에게 배운 돌봄이 이제 아이에게로 이어진다.

높낮이로 마음을 읽어주고, 필요한 것을 챙겨주고, 아플 때 곁에 있어주는 것.

형태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다.


어쩌면 성숙은 자유를 잃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의미를 바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의 자유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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