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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융 Aug 09. 2019

해외 유학 체크리스트

탈조선을 결심하는 분들께

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특히 요즘 같은 시국에 많은 이들이 바라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오죽하면 탈조선이란 말이 유행일까.


나 역시 그랬고, 게다가 언어적 문제도 없었기에 더욱 쉽게 결정을 해서 떠났다.

가기 전에도 수십 번씩 가장 후회가 덜 할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 고민하다 결정하고 떠난 것인데 막상 이 곳에 와보니 미처 계산하지 못한 부분들이 크게 다가왔다.

가기 전에는 석사 전공, 학교, 언어 수준, 예상 인턴 회사 등 유형적인 것에 대한 고민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살다 보니 무형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을 간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탈조선을 결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 언어
- 혼자 놀기 레벨



1) 언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외 체류 결심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언어일 테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당장 의식주 해결이 어려워지니. 엄밀히 말하면 언어를 못해도 사는데 정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를 할 때와 상당히 다른 수준의 경험을 할 것임은 분명하다. 나의 경우 언어는 다행히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더욱 원어민에 가깝게 말하고자 회사에 다니면서도 시험을 꾸준히 준비하기는 했다.


특히 프랑스에서 석사를 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정말 DALF C1 정도의 레벨은 갖추고 오시라고 하고 싶다.

DELF B2여도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지만, 공부하고 일하는 것은 또 다른 레벨이기 때문이다. 같은 반에 B1, B2 정도 레벨의 중국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는 결국 수업을 못 따라잡다가 한 학기 만에 자퇴를 해버렸었다.


사실 공부나 직장이 아니라면 뭐 레벨은 크게 상관없는 것 같다. 의사소통은 바디랭귀지로도 가능하니! 다만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고 세계의 반영인지라 아는 만큼만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중한 시간과 자금을 투자한 유학인데, 하나라도 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현지인들만 아는 곳들이 분명 있을 테니 그들과 함께 경험하는 게 최고이며, 그리고 현지인과 일정 수준 이상의 친분을 쌓으려면 언어 실력은 필수이다.

물론 말은 원어민인데 사교적이지 않은 성향이라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

그리고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구사하지 않더라도 몇십 년간 사는 한인 분들도 많으시니 일정 수준 이상의 언어 실력은 선택하기 나름인 것 같다.

  


2) 혼자 놀기 레벨


만약 이십 대 초반이 아닌 그 이후 지긋한 나이에 유학이나 이민을 고민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사항을 꼭 곰곰이 생각해보시라고 하고 싶다.


- 혼자가 익숙한가

- 혼자서 하루 종일 있어도 괜찮은가

- 혼자서 어디든 놀러 갈 수 있는가


나는 혼자 놀기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늘상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막 파리에 도착했을 땐 얼른 친구를 만들어 취미생활을 같이 향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속한 그룹의 파리 아이들은 그러한 적극성에서는 되려 반감을 가지는 편이어서 그들의 페이스에 맞추어 조심히 차근차근 다가가게 되었다. 잦은 전학으로 다져진 적응력을 바탕으로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기반을 다지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좋아했고 평생 좋아할 것이라고 느꼈는데 프랑스에 오고 나서 느꼈다.

아, 이제는 좋아하지 않는구나.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있고 사실은 원래부터 안 좋아했던 것일 수도 있고.


한국의 대학 새내기 시절, 혹은 신입사원 시절을 기억해 보았을 때 적으면 1개월, 길면 6개월 정도면 마음이 맞는 친구를 무리 없이 찾을 수 있었는데 석사를 하고 있는 학교의 아이들과는 성향이 유독 나와 달랐든지 아니면 보편적인 관계 맺기를 천천히 맺는 것인지 (아니면 세대차이...?) 1년 정도 후에야 충분히 가깝다고 느껴졌었다. 또한 이들과 아무리 친한들 아직은 한국에서 수년간 쌓아온 친구들과의 깊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에 늘 갈증이 난다.


최적화된 인간관계를 리셋하시겠습니까?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떠날 때, 내가 놓고 오는 것은 안정된 수입만이 아니었다. 가장 나에 맞게 최적화해놓은 나의 관계들도 그대로 놓고 온다는 것이었다.


언제라도 불러서 한잔 할 수 있는 친구, 보고 싶은 공연이 생겼을 때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취향이 맞는 친구,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을 때 주저 없이 부를 수 있는 친구 등, 내가 시간을 들여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 그 관계들을 여기까지 들고 올 수는 없었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친구야 만들면 되지! 라고 생각했고 그러한 점을 의심치 않았지만 그 친구들을 사귀고 정말 친구라고 느껴질 때까지의 시간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결정적으로 나와 코드가 맞는 친구는 프랑스에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가장 친한 언니에게 이러한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니, 입밖에 꺼내지 않았던 '나를 보내기 싫었던 1%의  이유'란다. 그 1%가 이렇게 큰 비중일 줄이야!


생각해보니 내가 아이폰을 쓴다는 사실부터가 이러한 상황을 예견한 게 아닐까 싶다. 리셋이 싫어 환경설정과 사진이 그대로 옮겨지는 아이폰을 수년째 쓰고 있는데 말 다했지!


나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회에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내 개성과 취향을 인식시키는데 걸리는 시간은 프랑스에서 유독 길었다. 언어적 차이에 인한 것도 물론 있고, 또 전과는 다른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는데 결론적으론 지금 이미지가 마음에 드냐면 그건 또 아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들이 아시아 여성에게 가지고 있는 선입견까지 더해져서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그 클리셰에 맞추어 해석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젊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여성 혐오가 싫다면 이곳은 그것과 더불어 아시아 인종차별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원래 사진 찍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내가 카메라를 꺼내 들면 '역시 아시안!'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듣는 것이다. 어디나 그렇듯 하는 사람은 농담인데 듣는 사람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제는 가족 같은 친구들도 생겨 내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할 때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나의 마음 조각들을 이렇게 세계에 뿌리고 다니는 게 과연 잘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들 덕에 유럽은 제2의 고향이 되었고, 한번 맺은 귀한 인연의 끈을 계속 이어가고자 보살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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