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준비의 첫 단추라는데
결혼 준비의 첫 단추라는 식장 잡기.
부지런한 친구들은 원하는 날짜를 선점하려 1년 전부터 예약을 시작한다고 했다.
우리는 내외부적 요인에 따라 올해 가을에 하기로 초봄쯤에 결정을 하였고, 7개월가량 남은 시점부터 장소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 우선 야외 결혼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십 년 넘게 다양한 지인들의 결혼식을 다녀보니 그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우리나라 특유의 편리하지만 획일적인 웨딩홀들은 애초에 별로 생각이 없었고, 호텔은 멋지긴 하나 장소만 기억에 남고 주인공들이 기억에 남지 않아서 패스. 신기하게도 정말 가까운 친구 2명도 야외에서 결혼을 했는데 그날들이 너무나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기에 주저 없이 야외 베뉴들로 선택지를 좁혀갔다. ( 다행히(!) 예비 신랑도 같은 의견이었다ㅎㅎ)
1) 야외 베뉴 타입
- 공원/숲 : 용산공원이나 서울숲은 1년에 몇 번 추첨을 통해서 무료(!)로 장소를 제공해준다. 숲 같은 곳에서 하고팠기에 이 두 장소가 가장 멋졌으나, 우리처럼 설렁설렁 느긋히 준비한 사람들은 부지런한 분들에게 얌전히 양보를 하는 수밖에.
- 한옥 : 미니멀하게 한옥에서 진행하는 것도 깔끔해 보였다. 다만 하객이 최대 80명 수준이어서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 배제했다. (이제 와서 보니 코시국 인원 제한을 이딴 식으로 할 걸 미리 알았으면 한옥에서 할 걸 싶기도 하다)
- 잔디정원 : 대다수가 야외 정원식의 베뉴들이었고 수용인원도 많은 편이어 이런 타입들의 베뉴 중 5 곳을 방문해 보았다.
2) 그래서 어딜 가보았냐면
- 한스갤러리
- 더케이호텔
- 스테이지 28
- 헤이즈가든
- 제이니힐스튜디오
최소 하객 150명 수준의 야외 베뉴들을 골라보았고 주말을 틈타 한두 군데씩 방문해보았다.
(1) 한스갤러리
야외 베뉴의 원조격인 한스갤러리는 경험이 많은 만큼 후기도 많았고 디렉팅 업체도 감각 있기로 소문난 알지비지구맛이라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판교에서 성북구까지의 거리란... 주말 12시 부근의 이동은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두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꽉 막히는 도로 위에서 '이미 여기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도착하고 나서는 경험에 맞게 담당님의 체계적인 안내와 투어, 매력적인 구성과 가격으로 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여전히 꽉 막히는 돌아오는 길에서 깔끔히 포기했다, 식장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하기로 ;)
(2) 더케이호텔
더케이호텔은 호텔이지만 야외 베뉴도 두 군데나 있고 한스갤러리와 같은 알지비지구맛이 디렉팅을 한다 하여 방문해보았다. 야외 베뉴가 두 군데인데 그중 잔디밭이 깔린 포가든으로 신청을 했다. 양재 시민의 숲 역에서 가깝고 주차장이 넓고 호텔이라는 장소에서 누릴 수 있는 편리함들이 보였다. 그리고 베뉴 자체도 하객 시선에서 앉아서 웨딩 아치를 바라보면 바로 뒤에 양재천의 높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어우러져 너무 아름다웠다. 하지만 동서남북 사방 중 그 한 면만 유달리 아름다웠고 좌측은 옥색 유리가 빛나는 예스러운 건물, 우측은 주차장이었다는 것! 결혼이라는 의식을 하기에 적합해 보이기보단 유휴공간 정도에 불과해 보였다. 사진은 정말 잘 나올 것 같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어서 참으로 고민이 되었다.
(3) 스테이지28
스테이지28은 원로배우 신영균 님의 실제 가옥을 리모델링하여 웨딩 베뉴로 쓰는 곳이었다.
실제로 본인 손자 결혼식에 집 정원을 내준 이후에 반응이 좋아 계속 베뉴로 쓰인다 했다. 마냥 상업적 목적을 위해 태어난 공간이기보다는 가족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스토리가 있는 장소여서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우리 집 마당(그런 게 있었던 적은 없었지만)에서 하는 느낌으로 프라이빗하게 진행할 수 있고, 집 자체도 공들여 지은 양옥이어서 실내외가 모두 근사했던 곳. 케이터링 역시 하이얏트 호텔에서 온다고 하니 맛과 품질은 보장되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복잡한 올림픽대로에서 바로 진입해야 하기 때문에 위치가 조금 애매하다는 점, 태권브이 뮤지엄이 초입에 위치하고 있어 베뉴에서도 태권브이랑 눈이 마주친다는 점, 무엇보다도 우리 예산을 뛰어넘는 견적으로 고사하게 되었다.
(4) 헤이즈가든
헌릉 IC에서 용서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그 부근 즈음,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었는데 이런 곳에 식장이 있다니 가면서도 신기했다. 비포장도로 산길을 굽이굽이 따라 올라가다 보니 나오는 숲 속의 하얀 집. 딱 상상했던 그 모습 그대로의 공간이었다. 주변에 나무와 우리만 있는 꿈같은 숲 속의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그런 곳. 하지만 그런 경관에 걸맞게 자차가 없으면 올 수 없는 공간이고 셔틀 제공도 안된다고 하여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척들과 차가 없는 상당수의 하객을 고려하여 고사하게 되었다. 소규모로 프라이빗하게 친구들과 진행한다면 정말 멋질 것 같은 공간 이어 두고두고 눈에 밟히는 곳.
(5) 제이니힐스튜디오
야외 스튜디오로 시작하여 최근에 베뉴까지 시작했다는 제이니힐스튜디오. 청계산 자락에 위치해서 숲과 정원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곳 이었고 집에서도 가깝다는 게 크나큰 장점. 널따란 잔디밭과 앵두전구들, 그리고 새하얀 건물도 참 예뻤다. 조건 역시 앞서 미팅한 곳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우리가 원하는 날짜도 때마침 비어있었다. 신생이어서 후기가 없는 대신 오히려 미팅 시에 과거 영상 등을 가장 많이 보여줘서 어떤 식으로 식이 진행되는지 머릿속에 가장 잘 그려지기도 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이어서 후기가 많지 않다는 게 불안하기도 했으나 꼼꼼한 미팅을 통해 오히려 그 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다섯 군데에 모두 항목별 점수를 매겨 예비신랑이랑 입찰 평가하듯이 총점을 내보았다. (변태 직장인들...) 누구 하나 서운한 소리 하지 않도록 철저히 정량적 평가로 진행하였고, 근소한 차이로 제이니힐스튜디오가 더케이호텔을 이겨서 제이니힐에서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3월 무렵 식장 계약을 하고 이제 진짜 결혼하나? 라는 얼떨떨함에 시간이 흘러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