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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노hyono Mar 26. 2020

포스터, 여전히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2)

소셜 미디어를 만나 더 강해지다!

본 시리즈는 미국 그래픽 디자인계 권위자인 스티븐 헬러가 쓴 기사를 번역해 소개하고자 기획했습니다. 기사 번역과 브런치 게재를 허가해주신 스티븐 헬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번역에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회색 단락은 본문 이해를 위해 제가 직접 채워넣은 부연설명이나 추가정보입니다. 원문과 구분하기 위해 인용문 외엔 '-합니다'체로 작성하였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만난 포스터


하지만 사람들이 모를 뿐이지 야심한 밤에 기습 활동하는 운동가가 여기저기 동시다발로 붙이는 포스터 수도 적지 않다. 2014년 거리 예술가 뱅크시Banksy는 두건을 쓴 소녀가 빨간 풍선을 놓치는 모습을 그린 포스터를 디자인 한다. 그리고 신묘하게도 이 포스터는 하필 캐피톨 힐Capitol Hill 지역에 나타났다. 아래 그림은 #시리아와함께해요WithSyria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림을 본 사람들이 해시태그를 타고 포스터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알아내고 온라인에 공유해 퍼뜨릴 수 있도록 한다.

캐피톨 힐Capitol Hill은 워싱턴D.C.의 중심부로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국회의사당이 있는 지역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필자가 신묘하다고 표현한 건 미국의 시리아 침공을 비꼬는 말입니다.


여전히 포스터에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뱅크시 말고도 더 있다. "중요한 생각을 전하며 사회 감수성을 메만지려는 열정적인 작가에게 포스터는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아론 페리주커Aaron Perry-Zucker가 말한다. "여러분이 포스터를 찾아 보려고 TV 채널을 돌리거나 주소창에 URL을 쳐서 검색하지 않잖아요. 그냥 거리를 걷다보면 포스터가 여러분을 찾아오지요."


페리주커는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금을 조성하고 널리 알리려는 작가와 디자이너가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크리에이티브 액션 네트워크Creative Action Network(이하 CAN)의 공동 창립자이다. CAN은 디자이너에게 인쇄된 포스터를 기고받고 수익을 나눠 주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을 도입하는 등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를 오가며 활동한다. 총기 규제, 도서관을 위한 펀딩Library Advocates, LGBTQ+의 결혼(동성혼 포함) 등을 지지하는 공익 캠페인 뿐 아니라, CAN은 멸종 위기에 처한 회색늑대에게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려고 환경전문변호사로 이뤄진 '어스저스티스Earthjustice'라는 팀과 함께 "여기여기 붙어라!JoinThePack"이란 캠페인을 열었다. 포스터와 셔츠는 25~30달러에 팔고 있다.

크라우드소싱은 대중(crowd)와 아웃소싱(outsourcing)의 합성어로, 기업 활동 일부 과정에 대중을 참여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건을 새로 만들 때나 서비스 개선 등의 분야에 대중들을 참여시키면 기업 입장에서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실질적인 의견을 들을 수 있고, 대중들은 피드백을 주고 보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좌: 페미니스트 양말 / 우: 동성혼 및 평등결혼 지지 캠페인 포스터, 크리에이티브 액션 네트워크Creative Action Network
여기여기붙어라!Jointhepack 캠페인 티셔츠, 크리에이티브 액션 네트워크Creative Action Network


"그 누구도 제대로 디자인한 포스터가 지니는 힘과 아름다움을 꺾을 수 없을 것입니다." 10년 넘게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캠페인에 참가하고 있는 뉴욕 소재 회사, 디자인 이그나이츠 체인지Design Ignites Change의 공동창립자인 마크 랜달Mark Randall 말한다. "포스터는 어떤 생각의 핵심 개념만 뽑아 보여주기 때문에 여러분이 포스터를 보면 머릿 속에 콕 박힙니다. 이렇게 머릿 속에 박힌 포스터는 그것이 말하는 이슈를 나타내는 *브랜드 선언문brand definition이 됩니다."

브랜드 선언문은 주로 기업 철학과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함축해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마크 랜달은 포스터가 어떤 이슈에 관한 브랜딩이 된다고 말함으로써 포스터와 브랜딩의 개념을 폭 넓게 정의합니다.


마크 랜달은 현재 메이크 아트 위드 퍼포즈Make Art with Purpose(이하 MAP)와 함께 인종 문제와 사회 정의를 주제로 한 포스터, 벽화, 현수막을 제작하고자 각 지역사회 대표, 예술가, 디자이너로 구성된 모임을 지원하는 전국적인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마크 랜달이 말하길 "그렇게 제작한 포스터, 벽화, 현수막은 그저 홍보에 쓰고 버리는 수단에 그치지 않아요. 우리 시대에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에 관하여 사회적 담론을 계속 이어나가고 지원을 하는 것이 포스터, 벽화, 현수막에 부여된 본질적 목표입니다."

좌: 심장의 색깔은 모두 똑같아요We're All The Same Color at Heart / 우: 포용은 아름답다Tolerance is Beautiul (모두 MAP 프로젝트)


마크 랜달은 오늘날엔 미디어 전략 전반에 걸쳐 포스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포스터는 사람들을 움직여 뚜렷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시기와 타이밍이 잘 맞아 떨어져 그 자체로 상징이 되는 포스터도 있다고도 한다. 예컨대 밀튼 글레이저Milton Glaser가 2001년에 디자인 한 "I Love NY More Than Ever나는 그 무엇보다 뉴욕을 사랑해요" 포스터나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가 2008년에 디자인 한 "Hope희망" 포스터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흥분하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 하십시오Keep Calm and Carry On"라고 애원하는 1차대전 시기 영국 정부가 만든 포스터를 모방한 밈meme도  있다.

(1) 밈(Meme)은 리처드 도킨스Lichard Dawkins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로 사상, 관습, 이념, 종교 등 사람이 사는 방식을 규정하는 문화 요소가 DNA처럼 자기복제적 성질을 띤다는 데 주목하며 그렇게 ‘복제되는 문화 요소’를 의미합니다. 오늘날엔 스마트폰과 이동통신망,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며 일반 대중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이미지를 만들어 배포할 수 있게 되며 여러 분야에서 무수히 많은 밈이 제작되고 전파됩니다. 인기 있는 원본 영상, 사진 등이 등장하면 이를 패러디하거나 재가공해 만들어낸 이미지 혹은 짤방이 여기에 속합니다.
(2) 마지막 문장에서 '애원하는'이란 표현은 전쟁 상황에서 대중에게 가당치도 않은 요구를 명령조로 한 권위적인 영국 정부를 비꼬는 반어법입니다.
좌: I Love NY More Than Ever, 밀튼 글레이저Milton Glazer, 2001 / 우: Hope,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 2008
영국 전쟁 포스터와 밈meme


페이스북, 텀블러, 인스타그램, 개인 블로그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기회를 무수히 많이 얻게 되자 포스터는 생명력을 새로 얻었으며 포스터의 유통망도 더 커졌다. 매사추세츠 예술대학Masschusetts College of Art에서 주관한 <그래픽 디자인으로 해야하는 일: 1965-2005년까지 평화와 사회 정의, 그리고 환경을 위한 국제 포스터The Graphic Imperative: An Exhibition of International Posters for Peace, Social Justice and the Environment>전시의 큐레이터 엘리자베스 레스닉Elizabeth Resnick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은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포스터를 보려면 여러분 집 밖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포스터를 바로 볼 수 있지요." 이어 덧붙인다. "이제는 누구든지 포스터를 개인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포스터와 소통하는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누구든 개인적으로 포스터를 열람할 수 있게 된 만큼 사람들은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포스터를 보고 반응하지요."

<그래픽 디자인으로 해야하는 일Graphic Imperative>전시 웹페이지 썸네일


올해 초, 대법원이 동성혼과 관련해 전례 없는 판결을 내리자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프로필 사진에 무지개 빛 필터로 씌울 수 있도록 했고 이를 통해 동성혼 찬성운동에 연대하는 뜻을 내비칠 수 있도록 했다. 페이스북이 만든 무지개 빛 프로필은 예전 디자이너라면 꿈도 못 꿀 정도로 효과적이고 광범위한 플랫폼으로써 수백만 명이 동성혼에 동참케 한 만큼 그랑퓨리의 에이즈 포스터를 잇는 완벽한 21세기 후계자인 셈이다. 엘리자베스 레스닉은 이렇게 말한다. "사회문제, 이슈, 캠페인에 강력한 공감대과 지지가 필요할 때, 널리 알려진 문제면서도 여전히 더 많은 운동과 실천이 필요할 때 포스터가 만들어지지요."




<포스터, 여전히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마침



차현호

현 에이슬립  BX 디자이너

전 안그라픽스 기획편집자&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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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주), 공업디자인(부)

디자인 분야 전반을 짚어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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