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이 처음이 아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 그래픽 디자인계 권위자인 스티븐 헬러가 쓴 기사를 번역해 소개하고자 기획했습니다. 기사 번역과 브런치 게재를 허가해주신 스티븐 헬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번역에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회색 단락은 본문 이해를 위해 제가 직접 채워 넣은 부연설명이나 추가 정보입니다. 원문과 구분하기 위해 인용문 외엔 '-합니다'체로 작성하였습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처음이 아니다.
1968년 예술과 문화 비평지인 에버그린 리뷰Evergreen Review에서 체 게바라의 초상화가 실린 '체 게바라의 정신The Spirit of Che' 특집을 냈다. 폴 데이비스Paul Davis가 그린 체 게바라 초상화는 워낙 유명하기도 하거니와 이제는 우상이 되어버렸다. 체 게바라 초상은 에버그린 리뷰 잡지 표지에도 실렸으며 뉴욕 지하철 곳곳에 붙은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었다. 체 게바라의 초상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에 반대하던 세력anti-Castro이 보기엔 매우 공격적이었던 터라 뉴욕의 그린위치Greenwich 마을에 소재한 에버그린의 사무소는 이들 반-카스트로 세력에게 폭탄 테러를 당하고 만다. 그러나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1) 폴 데이비스Paul Brooks Davis는 미국 일러스트레이터로 미국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의 위상을 다시 드높인 영향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본문을 번역하며 처음 알게 된 인물로 미국에선 중요한 작가로 알려져 있으나 한국에는 놀라울 정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조만간 폴 데이비스에 관한 기사를 번역해 소개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2) 피델 카스트로는 체 게바라와 함께 1959년 부패한 쿠바 군부정권을 전복하는 데 성공하고, 총리가 되어 국가 개혁을 강력히 단행한 혁명가이자 정치가입니다. 카스트로 정권이 국민 교육과 경제 개혁을 위해 쿠바에 미국인이 소유하고 있던 석유 회사, 전기 회사, 설탕 공장을 몰수하며 쿠바는 미국과 관계가 매우 악화됩니다. 쿠바 내 중산층은 카스트로 정권의 사회주의 정책에 위기를 느끼고 미국으로 망명을 가게 됩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미국에서 세력을 형성해 80년대까지 우익 정치집단의 지원을 받아 반-카스트로anti-castro 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잠깐만.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표현의 자유가 다쳤기 때문이다.
대중매체를 이용하고 싶어 안달이 난 누군가는 그가 원하는 대로 대중매체를 이용하기 위해 폭력에 노출되는 걸 감수해야 할 테다. 2016년은 인터넷 계정만 있으면 그 어느 때보다 손쉽게 대중 매체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 매체 이용자가 엄청 많아진 만큼 왁자지껄 해졌음에도 누구나 사건사고를 보고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폭력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신랄한 풍자 기사를 아니꼽게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해도, 개의치 않고 어떤 문제건 재미있게 비판할 수 있다고 자부하던 프랑스 풍자 주간지인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사무소에서 편집자와 만화가를 포함 총 열두 명이 죽은 대학살 사건은 이번에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이 테러가 신문에 실린 정치풍자 기사만을 겨냥해 계획적으로 이뤄진 만큼 처음으로 정치 풍자가 공격받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풍자 기사, 기자, 만화가는 오래전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곤 했다.
<샤를리 에브도>는 프랑스 주간 풍자 신문으로 기본적으로 우익 정치인, 기업, 유명인, 사회 이슈에 있어 주제를 가리지 않고 성역 없이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슬람뿐 아니라 기독교와 가톨릭도 비판했는데 무함마드를 함부로 묘사해선 안 되는 이슬람교 금기를 어기고 만평에 당당히 풍자 대상으로 삼아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2015년 폭탄테러에 앞서 2011년에 화염병 테러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엔 풍자 신문사가 법으로써 탄압당하거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방법으로 핍박받은 역사가 있다.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는 프랑스 최고의 만화가로 1832년에 공격적인 반정부 만화 <가르강튀아Gargangtua>를 발행했고 이로 인해 6달간 수감된다.
<가르강튀아Gargangtua>의 모티브가 된 소설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La vie de Gargantua et de Pantagruel>로 1830년대로부터 딱 300년 전인 15세기에 프랑스 풍자 문학가인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가 쓴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속 가르강튀아라는 거인 왕과 그의 아들 팡타그뤼엘은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식사를 하면서도 국정에는 무능합니다. 오노레 도미에가 활동한 1830년대 프랑스는 루이 필립 1세가 시민의 지지를 받아 부르봉 왕가를 밀어내고 왕권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루이 필립 1세는 특권층만 신경 쓰는 정책으로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민심을 잃습니다. 이에 오노레 도미에는 루이 필립 왕이 서민과 노동자를 쥐어짜 특권층만 배 불리는 상황을 가르강튀아 왕에 빗대어 풍자하게 됩니다.
정치 검열을 연구했던 학자인 로버트 저스틴 골드스타인Robert Justin Goldstei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815년부터 1880년 사이에 대략 스무 곳 정도 되는 프랑스 풍자만화 신문사가 정부에게 억압받았습니다. 거의 모든 19세기 정치풍자 만화가 금지되었으며, 만화가는 고소되거나 투옥되었습니다.” 1917년에 미국에서 <대중The Masses>이란 잡지에 헨리 글린텐캠프Henri Glintenkamp의 그림 <Physically Fit>이 실렸는데, 이 그림에는 한 해골이 옆에 있는 남성이 들어갈 관짝을 만들기 위해 키를 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로 인해 <대중The Masses>에 글을 기고했던 사람들은 이듬해인 1918년에 “불법적이고 고의적으로 미군 징집을 방해했다”는 죄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기도 했다.
(1) <대중The Masses> 잡지는 1911년부터 1917까지 미국에서 출간된 사회주의 성향 잡지 있니다. 당대 좌파 성향의 문학과 예술을 소개하곤 했습니다.
(2) <Physically Fit>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는 '신체에 딱 맞는' 이란 뜻으로, 해골이 청년에게 '딱 맞는' 관짝을 제작하기 위해 치수를 재고 있는 모습을 뜻합니다. 다른 의미로는 '건강한, 건장한'이란 뜻이 있는데,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건장한, 건강한' 성인 남성의 관짝을 제작하려는 그림으로써 미국이 1차 대전에 참전하며 멀쩡한 사람들을 사지로 내몬다고 비판하려는 뜻을 지닙니다.
20세기 초, 게오르게 그로스George Grosz라는 풍자만화가는 자신의 작품집 <신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Gott mit uns>로 독일군을 신랄하게 비꼰 탓에 세 번이나 풍기문란죄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게오르게 그로스가 **나치 독일에 남았다면 분명 체포되었을 테고, 어쩌면 자신의 풍자만화 때문에 강제 수용소에 갔을지도 모른다.
만평가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 최전방에 나서곤 한다. 오늘날 만평가는 예전보다 더 이념에 사로잡힌 집단에게 테러를 당하기 쉬워졌다. 표현의 자유는 계속 훼손되고 있다. 어제 총격 사건으로 사망한,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의 풍자만화가이자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Stéphane Charbonnier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우리 생각을 표현할 권리가 있듯이, 그들에게도 그들 생각을 표현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살인은 표현의 자유가 해당되지 않는다.
<풍자와 비평, 표현의 자유를 외치다!> 마침
차현호
현 에이슬립 BX 디자이너
전 안그라픽스 기획편집자&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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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주), 공업디자인(부)
디자인 분야 전반을 짚어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