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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별로 궁금해 하지 않을, 그간의 밀린 소식

by 혀노hyono

<디자이너의 보잘 것 있는 에세이>는 제 일상의 기록을 담습니다. 보잘 것 없는 순간도 꾸준히 기록해 돌이켜볼 수 있도록 조금씩 적어가고자 합니다.



그래도 멀쩡하잖아~ 한 잔 해~


오래도 걸렸다.

2024년, 호기롭게 다시 시작하겠다던 내 첫 발은 내딛어지자마자 오징어게임처럼 풀썩 땅이 꺼져버렸다. �

사람 일 정말 모른다는 걸 뼈로 새겼다.


전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 팀에 대한 책임감, 론칭이 코앞이던 프로젝트가 눈 앞에서 사라지는 건 그야말로 사기 당한 기분이었다. 차라리 지갑을 잃어버리는 게 나을 정도였달까.


큰 실패는 시간이 지나면 아주 쓰렸던 만큼 친구들에게 풀어놓기 좋은 썰이 된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 친해진 친구들에게 열심히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다녔더니, 어느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와 같은 구성으로 진화해 있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표정을 보며 내 비극을 희극으로 만들고 나면 어떤 든든함과 용기가 생겼다.

"그래도 괜찮잖아~ 한 잔 해~"라는 밈은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래서 지난 글을 작성하고 3개월이 지난 즈음 다시 글을 써볼까 하고 브런치를 열었던 적이 있다.

무언가 기분이 팍 상해서 창을 닫았는데 지금 읽어보니 발행할 수 없었던 이유가 새삼 떠오른다.

지독한 분노와 상실감이 꽤 흩어졌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기억을 더듬어 회고하자니 금새 그 시절 낱낱의 상황과 감정이 떠올랐다.


이때 자기 자신에게 푸는 썰은 각색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허언증을 앓는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 지금은 한국디자인진흥원이라는 공공기관에 와 있다.

대학생 때 2시간이나 걸려 가본 뒤로 '나와 다신 인연이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곳이다.


스타트업을 다니는 동안에도, 나오면서도 '책임'이란 건 내게 중요한 키워드였다.

'기업 성장과 채용'에 대한 책임에서 '내가 속한 집단과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더랬다.


태연자약하고 무책임한 스타트업과 VC 업계에 치가 떨렸달까. 이마저도 점잖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행복을 물질적 풍요에서 찾기도 한다지만, 그곳은 어디에 아귀가 나타날지 모르는 던전이랄까..

적어도 그 당시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공공의 원칙 아래 투명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고, 사회에 직접 기여하는 공공기관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그냥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명예롭게 일을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철밥통인 건 덤 그 이상.


내 역량이나 한국디자인진흥원이란 특수성과 별개로. 공공기관은 성취욕이 거세된 참 청렴한 직장이란 것을 깨달았다.


행정부는 기관의 운영 방침을 만들고, 기관의 운영 방침은 인사 채용 체계를 만들고, 인사 채용 체계는 기관의 인재 밀도와 문화를 정의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과 행정부가 들어서면 어디선가 큰 돈 혹은 노고를 들여 브랜딩 했을 기관의 미션, 비전은 허례허식이 된다.


공공기관만의 얘기는 아니리라.





사람들은 착하고, 일은 나른할 정도로 한가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직장일지도 모르겠다.


한가로움보다 개인의 성장과 자존감이 더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도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을 널리 알리고 성공시킬 방법을 구상하고, 소통24와 한국디자인진흥원 홈페이지에 중구난방 흩어져 있던 10년치 자료를 긁어모아 노션 랜딩페이지를 만들고 있었으니.


사실 그 사이에 협업과 소통 방식에 쌓인 비효율을 개선해볼 시도를 여러 번 해보았다.

공공기관에서 바텀업은 정말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는 걸 느꼈다.


막대기로 열매를 따서 먹어 본 사람은 눈 앞의 나무열매를 따먹자고 얘기하지만, 막대기를 쥐어본 적도 없는 사람은 열매의 맛은 커녕 '막대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조차 못한다.


그러나 이조차 좋은 배움이라 느낀다.


하나는 대화가 잘 되는 집단에 속하는 게 좋다는 걸 깨달았고, 두 번째는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조금 더 차분히 서로 언어를 조정하는 버퍼링 시간을 기다리는 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나 또한 삶을 살아내는 완성도가 남다른 이에게 '막대기'가 뭔지 모르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얻은 점이다.


그럼에도 첫 번째 배움이 내게 더 값졌다. 내 정체성에 관한 깨달음이니까.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환경 변화의 역치는 분명 다를테다.

중요한 건 내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알고, 내가 맘껏 뛰고 뽐낼 경기장을 구분하는 일이다.


일단 지금 있는 곳이 아니라 생각이 들었으면, 더 볼 것도 없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알맞다.

고 이건희 회장님께서도 "바뀔 거면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고 하시지 않았나.


오늘 실장님께 "이번 달까지 출근하려 합니다. 감사했습니다"라고 전했다.


이번엔 좀더 다르게 움직이려 한다.

우선 내가 원할 법한 환경에 처할 역량을 기르고, 한편으론 내 분수에 알맞은 환경으로 가는 것.


다시 IT 업계로 돌아가려 한다.





그렇지만 이제 디자이너가 아닌 것을 곁들인..

난 여전히 디자인이 좋다.

디자인을 하는 것도, 결과물을 사는 것도, 연구 논문을 찾아 읽는 일도 즐겁다.


근데 앞으로는 좀더 순수한 창작 활동이자 덕질 대상으로서 디자인을 좋아하고 싶다.


그럼 이제 와서 뭘 할 거냐고 할 수 있지만, 이번에도 호기롭게 공언하자마자 또 어떤 불의의 사고가 닥쳐 내 운명이 바뀔지 모를 일이다.


따라서 올해 1분기에는 말을 좀 아끼고 새해의 기운을 잘 갈무리 하려 한다.


그래도 디자인 얘기는 코딱지만큼도 없는 <디자이너의 보잘 것 있는 에세이>는 그냥 그렇게 쓰려 한다. 목적이 돈벌이든 취미든,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디자이너니까.


좀 뻔뻔해졌나 보다. 좋은 것 같다.

우선순위를 세워 나머지는 외면해 버릴 줄 안다는 얘기니까.


반대로 사회초년생 때 모든 게 중요해 보여서 밤을 새워서라도 이 땅 저 땅 파봤기에, 삽질할 용기와 삽질을 안 할 영악함이 생긴 거겠지.


아무튼 체력이 생겼다.

새로움에 도전하는 체력. 도전할 봉우리를 구분하는 정신머리는 당연한 거고.


모쪼록 순수하게 일을 즐길 수 있는 직업으로, 순수하게 디자인을 즐기게 되기를 스스로 응원한다.


글 마침.


2025. 1. 9 목요일

(언제나 그렇듯 부엌 테이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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