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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노hyono Mar 26. 2020

포스터, 여전히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1)

포스터의 역할과 영향력

본 시리즈는 미국 그래픽 디자인계 권위자인 스티븐 헬러가 쓴 기사를 번역해 소개하고자 기획했습니다. 기사 번역과 브런치 게재를 허가해주신 스티븐 헬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번역에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회색 단락은 본문 이해를 위해 제가 직접 채워 넣은 부연설명이나 추가 정보입니다. 원문과 구분하기 위해 인용문 외엔 '-합니다'체로 작성하였습니다.



대중을 사로잡는 포스터


뉴욕 시청 앞 ACT UP 집회, 1988

때는 1987년, 뉴욕에 사는 시민은 출퇴근 길에 거리에 붙은 “침묵은 죽음이다Silence=Death” 포스터를 보게 된다. “침묵은 죽음이다” 포스터는 에이즈 관련 대책을 만들기 위해 정부와 대중의 관심을 촉구하던 여러 단체 중 선구자 격인 ‘액트업ACT UP’에서 만들었다. 그리고 삭막해 보일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침묵은 죽음이다” 포스터는 등장하자마자 큰 효과를 보았다.

액트업은 '권력해방을 위한 에이즈 연대', 곧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의 약자로 만든 이름입니다. 일상 대화에서 'act up'은 '무언가가 말을 듣지 않거나', '괜히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을 얻으려고 떼쓰거나',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는 행위'를 뜻하기에 ACT UP이란 이름은 중의적이며 다분히 저항적인 성격을 띱니다.
침묵은 죽음이다Silence=Death, 그랑퓨리Gran Fury, 1987


2 , 액트업은 그래픽 디자인을  손이 되어줄 그랑퓨리Gran Fury라는 팀을 꾸린다. 그리고 그랑퓨리는  당시 시내버스 옆면에 게재된  쌍의 동성애자 연인과  쌍의 이성애자 커플이 입맞추는 모습을 찍은 포스터를 제작하게 된다. 포스터엔 “키스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탐욕과 무관심이 죽일 Kissing Doesn’t Kill: Greed and Indifference Do.라는 표어가 적혀있다. 그랑퓨리의 예술가와 활동가가 합작한  포스터는 에이즈 문제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정부와 이런 문제에 무관심한 대중'에게 경각심을 주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동성애 연인을 지지했다.

키스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탐욕과 무관심이 죽일 뿐Kissing Doesn’t Kill: Greed and Indifference Do., 그랑퓨리Gran Fury, 1989
당시 그랑퓨리 멤버, 1988


이처럼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기 전에도 이미 공공 포스터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는 벤 샨Ben Shahn의 '수소폭탄 반대 포스터'나 게릴라걸스Guerrilla Girls가 만든 '성 차별 반대 캠페인'이 그랬듯이 포스터엔 적절한 미술 기법과 재치 있는 표현, 상업성을 하나로 녹여냄으로써 대중에게 생각을 전파하고 마음을 사로잡아 온 오랜 역사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이 *초연결hyperconnected 사회가 되어버린 만큼 포스터에 예전 같은 힘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저마다 바라본 사회문제를 알리기 위한 이미지를 제작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만들어 주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대중이 시위 포스터와 선전 포스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초연결hyperconnected 혹은 하이퍼 커넥티드란 2008년 처음 생겨 유행한 용어로, 당시 스마트폰과 와이파이, 3G 이동통신이 등장하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연결된 상황을 일컫습니다. 필자는 포스터가 스마트폰 시대 이전에 통용되던 A사이즈로 만든 일반적인 포스터 형식이 아닌 소셜 미디어에 적합한 형식으로 바뀌었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수소폭탄 실험 중지!Stop H-Bomb Tests, 벤 샨Ben Shahn, 1960
게릴라걸스Guerrilla Girls 캠페인, 1989,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려면 꼭 나체가 되야만 해?)


그렇다고 해서 포스터가 인터넷 시대에 발맞춰 변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상업광고와 옥외 광고판은 보통 언제나 인가 받은 장소에 설치하는데 QR코드와 영상 매체, 얼굴 인식 시스템 같은 기술을 적용하며 여러 21세기 최신 기술에 잘 녹아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꾀죄죄한 선전 포스터는 종이로 인쇄되며, 주로 "불법광고 및 전단지 부착금지!"라는 경고문이 쓰인 건물, 전봇대, 도로 광고판에 경고를 무시하고 붙여진다. 그런 장소가 대부분 상가 소유인 만큼 보통은 사유지를 관리하고자 포스터와 전단을 떼어버리기 때문에 공익 포스터를 보는 사람이 몇 안 될 때도 있다.

포스터poster는 흔히 A사이즈로 인쇄하거나 디자인 한 벽보를 의미하지만, 영어권에선 포스터라는 말을 어떤 생각을 선전하거나 제품을 광고하기 위해 만든 작은 전단부터 커다란 옥외 전광판에 띄운 그림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포함해 사용합니다.


"이젠 그 누구도 포스터에 관심 없어요. 그 포스터를 만든 디자이너 말고는요." 그래픽 디자이너 마테오 볼로냐Matteo Bologna가 말한다. 마테오 볼로냐가 말하길, 포스터는 문제 의식을 알리는 매체이기보다 주로 디자이너의 경력에 덤으로 얹어지는 보기 좋은 포트폴리오 쯤이라 한다.

2009 Design Legends Gala, 무카 디자인Mucca Design(디렉터: 마테오 볼로냐Matteo Bologna)




☞2부에서 계속..


차현호

현 에이슬립  BX 디자이너

전 안그라픽스 기획편집자&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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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주), 공업디자인(부)

디자인 분야 전반을 짚어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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