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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Jun 13. 2022

각자의 '아무튼 노래'를 써보았다

아무튼, 노래 

이슬아 작가의 <아무튼, 노래>는 노래방적 사람과 비노래방적 사람에 대한 구분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노래에 대한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회원 A가 에세이를 써온 관계로 참여한 사람들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각자의 <아무튼, 노래> 에세이로 구성해보았다. (프라이버시 침해 방지를 위해 회원들의 이니셜은 그냥 ABCD로 썼다. 누군지 맞춰보시라~) 

A. 때묻은 노래방 

우린 언제부터 술을 먹어야 노래방을 갔는가. 나는 기억한다. 고1 풍물반 동아리 열댓명이 디귿자쇼파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순서 기다리며 노래를 불렀던 것을.  늘 마지막 노래는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로 시작하는 공일오비의 '이젠 안녕'이었음을. 이제는 보너스 시간이 30분 남아도 힘들어서 나온다. 

우린 언제부터 간주점프를 눌러댔나. 그땐 간주도 흔쾌히 들어줬다. 노래 잘 못 불러도 2절까지 불렀다. 

아가씨를 불러야 노래방을 가겠다는 친구가 있다. 우린 언제부터 여자를 끼고 노래를 불렀나. 그녀들의 선곡에 따라 취한 몸을 흔들어댄다. 

코로나로 근 2년 노래방 안갔다. 코로나 전에도 나이가 들어선지 친구들 성향 때문인지 노래방을 잘 안 갔는데, 이제는 생각조차 안 난다. 나는 술을 먹어야 첫 곡을 부를 수 있는 사람으로 절대 노래방적 인간은 아니었다. 술을 마시면 한때 열심히 불렀던 '말달리자'와 '봄날은 간다'가 떠오른다. 하지만 서태지의 컴백홈을 비롯한 노래들은 이제는 못부를 것 같다. 그 노래를 부르기엔 나이가 너무 들었다.

요즘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OST인 '위스키 언더락'에 꽂혀있다. 

'그날은 생일이었어 지나고 보니 나이를 먹는다는것 나쁜 것만은 아니야'로 시작되는 긴긴 노래가사 중 '다만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가 심장을 후빈다. 

B.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는 출연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노래를 못하는데, 노래방 가는 걸 좋아한다. 친구들과 코노 가는 일이 일상이었고, 요즘 회사에서도 점심 먹고 나와서 직원들이 각각 한 칸씩 차지하고 앉아 30분 동안 노래를 부르다 사무실로 들어오기도 한다. 언젠가 친구와 코노에 가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누군가 밖에서 쳐다봤다. 알고보니 <너의 목소리가 보여>라는 프로그램의 작가인데, 나를 섭외하고 싶다고 했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는 노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실제 목소리는 안들리게 하면서 그 사람이 음치인지 실력자인지 알아맞추는 프로그램인데 나를 음치 파트에 넣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데 이렇게 못부를 수가 없다고. 수치사할 뻔 했다. 친구는 옆에서 그 프로그램에 나가라고 뽐뿌질을 했지만,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노래를 못부르나?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 작가들이 이렇게 섭외를 위해 직접 발로 뛰어다니는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노래방의 역사는 꽤 길다. 고등학교 때 기말고사나 중간고사 기간에 일찍 끝나는 날이면 친구들과 함께 홍대 럭셔리 수 노래방으로 출동했다. 평일 오후에는 손님이 거의 없어 카운터에서 보너스를 많이 넣어줬는데, 어느 날 체감 4시간 정도 노래를 부르고 나온 적이 있었다. 너무 많이 불러 목이 쉴 정도였는데, 나왔더니 카운터 알바가 징글징글하다는 표정으로 "8시간 동안 부른 거 알아요?"했다. ㅋㅋㅋ 니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면서 시간을 넣어줬는데 우리가 무려 8시간 동안 놀았던 거였다. 이렇게 하고 나면 다시는 안올줄 알았나본데, 우리는 다음 시험 기간에 또 갔다. 당시 나의 주 레퍼토리는 왁스의 '황혼의 문턱', 한스밴드의 '오락실' 등이었다. 지금 내 자취방의 TV어플로 매일 무료 2곡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데, 기분이 동하는 날은 꼭 노래 두 곡을 부르고 잔다. 

친구들은 내 노래를 녹음해서 좀 들어보라고 자신들의 고충을 털어놓지만, 나는 그래도 노래가 좋다. 노래 부르는 내가 좋다. <아무튼, 노래>의 NK선생님 에피소드는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 엄청 공감하며 읽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도 내가 잘 알고 연습한 노래만 부른다. 모르는 노래는 못부른다. 음치가 부르는 건 다 똑같아 보이지만, 부르는 사람은 안다, 그 차이를.

C. '다행이다'는 결혼식장에서 부르지 말아요 

우리 형제 중 둘째가 노래를 잘했다. 부모님은 어른들 앞에서 둘째에게 노래를 하라고 시켰는데, 그때 불렀던 노래가 '일송정 푸른 솔에'로 시작하는 '선구자'였다. 나는 딴 집들도 그런 노래를 부르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초등학교도 안간 아이가 성악을 부르는 건 이상한 일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가 노래방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 노래방 가는 걸 좋아하고, 노래부르는 것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슬아의 글을 읽고 나니 나는 딱 이슬아같은 비노래방적 인간이었다. 1절만 부르고 끄고, 사람들이 내가 노래하면 메뉴집 찾아서 노래번호 찾는 그런 사람. 한 때는 직장동료들과 일주일에 두번씩도 노래방에 갔는데, 이제는 다 옛일이 됐다. 코노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나는 결혼식 축가에 대한 기억이 많다.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합창으로 축가를 불러준 일은 자주 있었고, 언젠가는 30대 때 친구 결혼식에 다른 친구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게 되었다. 나와 노래를 불러주는 친구들은 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라 찬송가를 개사(노가바는 내가 함)하여 노래하게 되었다. 점심시간에 영락교회 마당에 모여 연습하곤 했다. 결혼 당일날 축가가 끝난 뒤 식사하는데, 친구네 시댁 사람들이 소근소근 "근데 신부가 교회 다니나봐?" 했다. "아닌데요, 저희만 다니는데요, 친구는 종교 없는데요." 라는 말을 못해준 게 아쉽다. 

사촌동생의 결혼식에서 들은 축가는 내가 역대 들었던 축가 중 가장 불안하고 못부르는 노래였다. 하필 남자애 혼자 나와서 이적의 '다행이다'를 불렀다. 노래방에서 키잡고 불러도 잘 부르기 힘든 노래를, 그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피아노 반주로 부르다니...참사는 예정되어 있던 거나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노래가 나오는 내내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노래가 다 끝나고 나자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모가 긴 한숨을 쉬며 "축가가 끝나서 다행이다."라고 촌철살인의 감상평을 남겼다. 

63빌딩 연회장에서 열렸던 광고인 모임 오빠의 화려한 결혼식도 빼놓을 수 없다. 조폭 딸과 결혼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던 결혼식이었는데, 연단이 높고 스모그가 어마어마하게 분사되었다는 것도 기억에 남지만, 축가가 무려 5곡이나 이어졌던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5곡을 한 사람이 부른 게 아니라 초대가수가 5명이었다. 3곡쯤 되니 사람들이 슬슬 지루해하고, 집중력이 분산되었다. 그때 우리의 이동준 배우('클레멘타인'의 그 배우)가 나오더니 갑자기 '불효자는 웁니다'를 불러제끼기 시작했다. 그때의 문화적 충격이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내가 환갑잔치도 아니고 결혼식에 와서 이런 노래를 듣고 있는 게 현실인가 멍해있는데, 하필 콘센트에 불꽃이 튀어서 화재가 났다. 불은 금방 꺼졌지만, 지금도 그 결혼식을 생각하면 꿈인지 생신지 멍하다.

D. 미친 시숙 

나는 노래방적인 사람이다. 아니, 한때 노래방적인 사람이었다. 노래를 꽤 잘하는 편이고, 노래방에 가면 마이크를 놓지 않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한 때는 인순이와 조PD가 함께 부른 '친구여'를 랩과 노래까지 혼자서 정확하게 다 부른 적도 있었다. 요즘은 그렇게 안 올라가지만 한때 소찬휘, 김현정의 노래도 고음까지 다 올라갔다. 대학 시절 어떤 수업에서 선배가 나를 주인공으로 '아이돌 데뷔시키기'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발표한 적도 있었다. 

그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르고 좋아하던 내가 노래방에서 정 떨어진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첫 직장에서의 일이다. 입사해서 한달이 되었을까? 회식하고 노래방에 갔는데, 이사 하나가 노래를 하면서 여직원들을 그렇게 만져댔다. 나와 신입사원 친구는 둘 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탬버린을 붙들고 절대 놓지 않았다. 탬버린을 치는 동안에는 무대에 나갈 일도 없었고 그 이사가 접근하지 않았으니까. 그때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여직원의 반응이었다. 아무리 얘기해도 고쳐지지 않는 문화라 그런지, 그냥 빨리 당하고 말자는 체념의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회식 끝나고 돌아가며 나는 신입 친구가 다음 날 안나올까, 그 신입친구는 내가 다음날 안나올까 걱정했다. 다행히 둘 다 출근은 했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노래방에 정이 뚝 떨어졌다.

나는 노래가사와 자주 불리는 분위기가 엇박자인 노래들을 좀 알고 있다. 결혼식에 주로 불리는 뮤지컬 넘버들, 예를 들어 지킬과 하이드의 '지금 이순간', 프랑켄슈타인의 '너의 꿈속으로' 등은 노래 자체로는 화려하고 멋들어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죽기 직전에 부르는 노래거나 끌려가면서 부르는 노래다. 결혼식과 전혀 안맞는 내용인 것. 하긴 그런 내용은 90년대, 2000년대 가요에도 많다. 신화의 '너의 결혼식'은 가사를 잘 들어보면 남동생 결혼식에 간 형이 남동생의 신부를 보고 첫눈에 반하는 내용이다. 이 노래를 유투브로 검색해보면 댓글에 '미친 시숙'이라고 적혀 있다. ㅋㅋㅋ

E. 노래는 팝송

나는 노래방을 싫어하고,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도 싫고, 딴 사람이 노래하는 걸 듣는 것도 싫은 사람이다. 내가 노래를 한다는 건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는다는 건데, 그게 싫다. 그래서 공연을 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노래는 어느 쪽이냐 하면 부르는 것 보다는 듣는 걸 좋아하는 쪽이다. 오디오를 일찍 장만하고 음반을 어마어마하게 사모았는데, 대부분 팝송이나 락이다. 수백장이 넘는 음반을 사모으면서 자식에게 물려줘야지 했는데, 물려줄 자식이 없네. 

결혼식 축가는 그냥 들어야 하는 요식행위라고만 생각했는데, 일전에 섬북동 H가 결혼한 날, 아버지가 직접 작사 작곡하여 부르신 "우리 딸이 시집을 간다"를 들으며, 축가를 저렇게 할 수도 있는 거구나 깨달았다. 쇼킹했고, 멋졌다.  



<아무튼, 노래> (이슬아 | 위고)

2022년 6월 11일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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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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