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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상 Aug 17. 2022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존재의 정점’이 가지는 의미를 찾아서

박노해의 <존재의 정점>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에서 박노해는 ‘지구의 정점에는 빛나는 만년설산이 있고, 판소리꾼에게는 득음의 경지가 있듯이, 모든 것에는 절정의 경지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어서 ‘누구의 인정도 무시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온 존재를 걸고 가야만 하는, 시대의 높이, 존재의 정점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시가 Trigger가 되어 당겨진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내가 추구해야 할 존재의 정점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입니다. 백 마디 설명보다는 전문을 우선 소개합니다.


존재의 정점

박노해

지구의 정점에는
빛나는 만년설산이 있다

판소리꾼에게는
저 득음得音의 경지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찬란한 별의 시간이 있다

모든 것에는
절정의 경지가 있다

지금 보이지 않고 측정할 수 없어도
자신만이 알아챌 수 있는,

누구의 인정도 무시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온 존재를 걸고 가야만 하는,

시대의 높이가 있다
존재의 정점이 있다

-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수록 詩 466p



‘존재의 정점’

: 존재의 이유이자 추구해야 할 가치


'존재의 정점'은 '사명(Mission)'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명은 존재의 이유이자 추구해야 할 가치입니다. ‘존재하는 한 추구해야 하는 목표’이지요. 사명은 북극성과 같아서 늘 바라보고 가야 할 가치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회사들은 '어떤 상품(또는 서비스)를 통해 세상에 어떤 형태로 기여하는 것(또는 회사)'로 사명을 이야기합니다.  또 많은 개인들은 '자신의 일을 통해 무언가를 추구하거나 무엇에 기여하는 것(또는 사람)'으로 사명을 이야기하지요. 우리는 북극성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추구할 수는 있습니다. 의도적이든 은연중이든 우리는 스스로 무언가를 추구합니다.


사명, 가치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존재의 정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즉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있는 사람은 늘 자신의 '격格'을 생각합니다. 자신의 분수와 품위가 사명에 맞도록 행동하고 성장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명은 나의 분수와 품위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부족한 것이 있다면 채우도록 자극합니다. 사회적인 영향력이 높을수록 '사명을 아는 것'이 중요할 텐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모르고, 그래서 자신의 '격格'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인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가적 자원을 배분하기 위함입니다. 예산과 정책을 배분하고 향방을 결정합니다. 자원 배분에 있어서 늘 정량적 효율이나 법리가 우선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과 가치 내지는 철학에 따라 정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정치가 존재하고 정치인이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정치인이 존재하는 이유, 존재의 정점입니다.


그렇게 욕을 먹어도 아직도 자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모르고, 자신이 왜 정치를 하는지 대답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존재의 이유에 대해 모르는 정치인은 반지하 앞에 쪼그려 앉아 구경하듯이 쳐다보거나, 비 좀 왔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심정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진실한 마음보다는 진실인 듯 보여주는 사진을 먼저 생각합니다. 존재의 이유를 모르니 그에 맞는 분수와 품위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대의명분과 가치가 없으면 그 일을 계속하기 어렵습니다.


Simon Sinek : Why I Wrote "The Infinite Game" (YouTube)


‘존재의 정점’

: 인생이라는 ‘무한게임’을 계속하게 하는 힘


개인이든 조직이든 확고한 사명은 무엇이든지 계속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 되어줍니다. 가슴을 뛰게 만드는 매력적인 가치가 있다면 그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Golden Circle'로 유명한 사이먼 시넥은 대의명분과 가치를 중심에 둔 사고를 ‘무한게임(Infinite Game) 사고방식’으로 설명합니다.


그의 최근 신간 <Infinite Game>에 따르면, (무한게임과 대비되는) 유한게임은 축구경기와 같습니다. 축구경기처럼 참여자와 규칙,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게임, 점수 내지는 1등과 같이 언제나 달성해야 할 숫자가 있는 게임이 ‘유한게임’이라는 것이지요. 사이먼 시넥은 성장률, 매출, 시장점유율, 주가 등 숫자를 목표로 인식해온 ‘유한게임 사고방식’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으며, 이른바 ‘New Normal’ 시대에 필요한 것은 대의명분과 가치에 집중한 ‘무한게임 사고방식’이라고 주장합니다. 애플의 사명인 ‘Think Different’가 애플을 초월적인 기업으로 만들어 준 것이 대표적입니다. 단기적 승패,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게임 플레이어로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며 그 힘은 가치와 대의명분으로부터 나옵니다.


단기적인 승패로 끝나지 않는 우리 인생이기에 더더욱 각자 ‘존재의 정점’이 필요합니다. 사명, 가치는 삶을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따라서 가끔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내가 추구해야 할 존재의 정점은 무엇일까?’라고 말입니다. 이 질문은 다양한 형태로 변용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내가 존재하는 한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뭘까?, 나는 내 인생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까? 라고요.


다시 박노해의 시로 돌아갑니다. 시인은 존재의 정점이 ‘지금 보이지 않고 측정할  없어도 자신만이 알아챌  있는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혹시 질문에 대한 답이 정리된 문장이 아니라 설명하게 어려운 나만의 감상이어도 을 것 같습니다. 어느 것이든 ‘존재의 정점 찾는 작은 계기가 되어줄 테니까요. 



©️이재상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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