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바꿀 수 있는 용기
3년 전, 2019년 4월에 방영된 ‘KBS 대화의 희열 시즌 2 - 9회 : 유시민 편’을 보다가 뒤통수를 얻어맞는 경험을 했습니다. 펀치를 아주 제대로 날린 사람은 유시민이 아니라 독일인 방송인이자 피아니스트 다니엘 린데만이었습니다.
방송에서 유시민과 패널들은 ‘생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 어렵고 풀리지 않는 질문에 대해 패널들은 각자 자기만의 결론과 그에 이르게 된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다 문득 다니엘 린데만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질문의 답을 잘 못 찾을 때, 어쩌면 질문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라고
질문할 것이 아니라,
‘나는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라고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심쿵’이라는 단어였습니다. 무엇인가에 놀라 가슴이 살짝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잔잔했던, 아니 별 움직임도 없이 고여있었던 마음에 돌 하나 무심코 던져진 느낌이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적지 않은 파장, 짧지 않은 울림, 그래서 더더욱 오래 남는 여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몇 가지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답이 구해지지 않는다면 질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질문을 바꾸면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이는 문제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면서도 해결방안을 쥐어 짜낼 줄만 알았지 질문을 바꿔볼 생각은 잘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질문하기보다는 ‘네, 알겠습니다’가 우선이었고 그게 편했기 때문입니다. 질문은 힘 가진 자의 어법이라는 잘못된 무의식이 발로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흔히 질문으로 평가받기보다는 답으로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렵지만 무언가에 대해 질문을 해도 그 질문에 ‘나’라는 주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 다반사였던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라고 묻는다면 일단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 질문은 ‘나에 대한 배려’는 없이 그저 ‘찾으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지 확인해봅니다. 때로는 좋은 단어, 멋진 문구에 기대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정답이 구해지지 않으니 외부에서 구할 수 있다면,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내 인생의 의미’를 그렇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나는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이 질문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줍니다. 내가 부여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여하고 싶은 나의 희망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굳이 외부에 눈을 돌리지 않고, 나에 대해 생각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나를 되돌아봐, 마음껏 생각해봐도 좋아’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쉽고 편안합니다. 그래서 위로가 됩니다. ‘너 자신을 생각해, 너가 하고 싶은 그것에 집중해봐!’라고 격려해줍니다. 자극해줍니다.
더욱 이 질문이 좋은 이유는 행동을 촉구하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가 또 다른 깊이 있는 생각을 자극한다면, ‘나는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을 촉구합니다. 좋은 질문은 행동을 자극합니다.
새롭게 취업을 준비하거나, 갓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이 자주 묻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입니다. 이런 질문은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뭘까?’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됩니다. 청년들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 질문 또한 당장의 행동보다는 더 깊이 있는 생각을 촉구하는 것에 머무르고 만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당장 답을 내릴 수 없고,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절대로 풀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봐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할 수 있을까요?’ 라고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이 일에 먼저 집중해보자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행동을 독려하는 것입니다. 먼저 행동하고 실행해봐야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질문이 행동을 자극하고, 행동을 통해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에 돌입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질문은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이 어렵고 답이 나오지 않은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구해지지 않는다면 질문 그 자체에 대해 다시 회의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행동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질문을 바꾸는 용기입니다.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용기, 관점을 바꿔보겠다는 용기, 기존의 문법에 도전해보겠다는 용기입니다. 용기를 내서 관점을 바꾸고 행동을 자극하는 질문을 찾아낸다면, 인생을 조금 덜 허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마도 다니엘 린데만에게 ‘심쿵’한 것은 질문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그의 대담한 용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재상 2022